'광마클럽'에 로그인해보니 모든 글이 사라져있다.
나는 그를 보며 신기해한 적도, 짜증이 난 적도, 측은해한 적도 있다. 그를 보며, 정확히는 담배를 피는 그의 뒷 모습을 보면 운 적도 있는 것 같다. 햇살이 따뜻하던 11시 경이었던 것 같은데, 따뜻하고 평온했던 날씨로 기억하는데, 그의 가녀린 몸은 유난히 희어멀건해 보였다.
어제 그가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네이버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루 종일 달렸다. 오마이뉴스에서 지난 1월 그와 인터뷰한 기사가 보였다. 올해 새 책도 냈었다고 한다.
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우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 시 <내가 쓸 자서전에는> 부분
게시판에 그와의 개인적인 추억을 공유하는 글들이 간간히 보였다. 나도 오래 된 메일함을 뒤적여봤다. 아마 우울증 4년 차쯤 됐던 시절. 그의 메일 제목은 한결같이 '마광수가'였다. 주고 받은 적은 몇 번 없지만, '수업을 또 들어줘서 고맙다'든지, 레포트를 '기대한다'는 말이 있었다. 내용이 3줄 이상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지만, 답을 안 한 경우는 없었다. 많은 교수들은 메일을 보내도 읽지조차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마클럽'은 그의 개인 홈페이지였다. 이 곳은 그가 글과 그림을 올리는 곳, 혹은 그가 영감을 받는 이미지들을 올리는 곳, 그의 팬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는 곳이었다. 성적이 중요했던 나는 당시 '광마'의 성향을 참고하기 위해 그 홈페이지를 종종 드나들었다. 그 곳은 유쾌한 곳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위안을 주는 곳이었다. 특히 나는 그의 그림을 보고 매우 놀랐는데, 이중섭의 그것처럼 너무도 순수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보고 나서 가슴이 저미는 느낌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런 그가 겪어야했던 무자비한 공포.
“몸이 많이 아파요. 아니, 마음이 많이 아파요. 화병이에요. 아니, 울화병이에요. 울화병. 울화병이 뭔지 알아요? 그래요, 쉬운 말로 우울증이라고 합디다. 가슴이 답답해 죽겠어요.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어요. 동료(교수)들이 무섭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래요.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 지금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무서워요. 정말 무서워요. 그러니 이 다음에 만나면 안될까요. 내가 마음을 추스리고 나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하고 싶은 말, 내 맘속에 꾹꾹 눌러놓았던 고통들 모두 다 털어놓을게요.”
- 2002년 기사, '교수재임용 탈락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마광수'
그 낡은 디자인의 홈페이지 게시판 - 돋움 글씨체, 그리고 종종 그가 올리던 그의 성향의 그림들. 한 줄을 넘지 않던 그의 댓글들이 갑자히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정말 수 년간, 단 0.1초의 떠올려 본 적 없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해질 수 있구나. 적잖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꽤 많이 방문했을 터인 그 홈페이지는, 역시 그처럼 바싹 마른 느낌이 났다. 부고를 접하고 다시 찾은 '광마클럽'에, 내 로그인 정보는 아직 유효했지만, 로그인 이후에 보이는 화면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 마광수 ‘자살자를 위하여’
최근 몇 달 간 '나의' 죽음이 아닌 '타인의'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