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식당에 가면 영어로 주문하지 않는다. 아들에게 사교육을 안 시킨다고 자부하지만, 아하하하. 결국 아들이 아닌 내가 튀르키예에서 학원을 다닌다. 아들을 학교로 보내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동네 터키 어학원.요즘 이렇게 열심히 다니는 학원이지만, 같은 시떼(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일본인 주재원 부인은 내게 왜 영어만 해도 살만한데, 도대체 왜 배우냐고 묻기도 한다.
실상 이스탄불에 살아보니 영어만 해도 살만한데, 숫자 정도만 터키어로 알고, 휴대폰의 구# 번역 앱을 꼭 챙겨서 영어로 번역된 것이 올바른지 확인하고 다시 터키어로 바꾸면 사실 큰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하다. 참고로 영어를 못하면 답답한 점이 이것이다. 휴대폰의 구# 번역 앱을 사용할 경우, 한국어-터키어 번역은 오류가 심각하게 많은데, 영어-터키어 번역은 거의 완벽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오류가 있어 수업시간에 숙제를 검사받다가 원어민 터키어 선생님께 수정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영어만 해도 대충 잘 살 수 있다. 물론 휴대폰 구# 번역 앱을 사용하면 말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아닌 나로서 사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면 불현듯, 그렇다. 영어를 못하는 터키인들이 많은 곳에 가면 번역 앱을 누르고 휴대폰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적고 터키인에게 보여주니 답답함이 생긴다.
특히 시떼에 청소하시는 아저씨나 정원 관리를 하시는 아저씨, 경비 아저씨, 시떼 앞 커피집 아저씨 등 생활에 관련 있는 분께 인사를 하면 그 다음 질문을 간혹 하시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니 대답을 못하고, 괜히 못하면 미안하고 아하하하. 그렇다. 이 성격이 문제인 것이다. 아하하하. 이 오지랖이 문제다. 그래서 인사는 잘하니 그 다음 말을 그들과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한다. 그들과 잠깐 나누는 인사가 아닌 진짜 대화를 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집 앞 커피집 아저씨와 긴 대화를 하면, 무슨 동시통역사처럼 영어 하시는 손님 한 명이 나타나 내 말을 터키어로 바꾸고, 커피집 아저씨가 말하면 손님이 다시 듣고 영어로 바꾸어주는, 영어 잘하는 고마운 터키인 손님이 꼭 등장한다.
또한, 내가 다른 주재원 아내들과 달리 빠르게 터키어를 배우게 한 결정타는 이스탄불 적응 초기, 이삿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남편의 코로나 확진이었다. 전날 저녁 마른 기침을 하던 그는, 회사 출근을 하고 회사의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곤 '양성'이 나오자 2주간 집에 오지 않았다. 그는 회사 앞에서 2주간 격리를 하고 텅텅 비어 소리가 울리던 우리 집에서 나와 아들 단 둘, 이삿짐도 없고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집이라 누구에게 무얼 부탁하기도 미안한, 그야말로 나는 멘붕 상태였다. 터키어도 모르는 데다 배달이라도 시켜서 음식을 주문하고 싶어도 전화도 못 걸고, 앱으로 과일이든 채소든 시켜야 하는데 뭔지 읽지도 못하고, 아들은 겁을 먹고 울고, 모르면 고생이다가 정말 진심이었다.
답답하고 절실하면 배우고 싶어진다.
지금 제법 터키어를 하는 나에게 왜 터키어를 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결국 그 어려움의 순간에 아들과 살아내야 한다는 의지가 나를 지금에 이르게 하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누가 말해도 내가 엄마였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남편이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 없는, 자식을 둔 엄마이기에 나는 배우고 싶었다.
솔직히 이 매거진의 글은 터키어의 정확도보다 너도 하는데, 나도 가서 터키어로 말할 수 있겠다를 독자가 느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다. 운전도 못하고 곰돌이인 나도 한다.
동네 커피 아저씨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남편 없이 살림 없는 집에서 2주 살아보니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이러고 그가 집으로 돌아온 후, 처절하게 시작한 터키어이지만 이스탄불에 일 년을 살아보니, 나의 어설픈 터키어 한 마디에그들은 말한다.
'너 터키어 말하네.'
(Türkçe konuş 투르크체 코누슈)
'멋지다.'(güzel 귀젤)
내가 영어로 말했는데 네가 터키어로 말해서 기분이 좋다는 대답을 듣는다. 영어로 물은 웨이터(garson;갈손)에게 음식이 아주 좋다(çok güzel; 촉 귀젤)는 말을 터키어로 대답하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웨이터 아저씨, 터키어를 공부해서 고맙다며 차이도 공짜로 주셨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려고 한다. 이스탄불 엄마의 생존 터키어, 절대 정확도를 기대하지 마시길.
우리가 처음 팝송을 배우고 한국어로 들리던 대로 적고 따라 부르는 수준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터키어만이 등장할 것이다. 영어 단어 뜻도 모른 채 소리 나는 대로 팝송을 따라 부르는 중학생이던 그때의 나처럼, 근본 없는 터키어의 세계로 당신을 안내하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제법 터키어로 말하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나의 터키어가 너무 이상하다고 욕하지 마시길 바라며, 제발(lütfen ;루트펜,루펜).
덧붙임)
터키어의 발음에 대한 한글표기는 최대한 실제 발음과 유사하게 적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같은 단어도 꽤 다르게 들립니다. 또한 튀르키예의 땅이 넓으니 방언도 있을 것입니다. 위의 부탁의 의미인 ' lütfen'도 표기와 달리 실제 터키인의 발음에선 't(트)'는 거의 들리지 않고 '루판', '루펜'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반영하여 한국어 발음과 병기하여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저도 터키어로 말하고 사는데 지금 읽고 계신 분도 금방 하십니다. 여행 오셔서 터키어를 사용하며 차이(çay)도 공짜로 드시고 가세요. 이스탄불 관광지에 일하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영어 하십니다. 그런데 대답을 터키어로 말하면 대부분 참 좋아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매거진의 글이 주재원 그리고 그 가족분들에게는 용기와 웃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