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내내 나를 사로잡은 한 가지 감정은 앞으로 내 인생에 사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고작 한 번의 길지 않은 연애와 한 번의 짧았던 인연을 보내고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난 연애에 적합한 인간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
오 개월간 이어진 M과의 연애는 매일 곤두박질치던 자존감과 자기혐오(나는 최악의 애인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속에서 파국을 맞았다. 당시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얼굴이 늘 죽상으로 구겨져 있었고 데이트 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모자람을 탓하며 정신적인 자학을 하고 싶은 순간마다 애꿎은 상대방에게서 못마땅한 점을 찾아 비판하는 아주 몹쓸 짓을 일삼았다. 삶의 기쁨도, 기쁨을 찾으려는 의지도 없이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들에 시비를 거는 사람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관계의 기본적인 자격 요건도 갖추지 못했었다.
그 후로 얼마 간 나는 다시 스스로를 견뎌내기 위한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취직을 했고, 나를 즐겁게 하는 일과 사람들에 집중했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차오르던 시기에 A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하룻밤 상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젠틀하고 다정했던 그는 아늑한 옥탑방으로 나를 자주 초대했다. A가 기르던 강아지와 그의 옥탑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이 사람과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연애와 파트너(혹은 FWB) 사이에서 애매하게 이어지는 관계에 물음표를 던지자 이전까지 자연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진지한 사이로 발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던 그의 마음(그리고 그와 다르지 않았던 나의 마음)을 확인한 뒤 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적합한 조건은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균형잡힌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 되고, 또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대책없이 데이팅 앱에 매달렸다. 삶의 지론을 운명론으로 삼아온 관성 때문인지 나는 실낱 같은 희망일지언정 그걸 마음에서 놓지 않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자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믿었다. 후회 없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런 상대가 나타난다면 나의 마음을 기꺼이 열어보이리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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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소개글에 적힌 짧은 한 줄 때문이었다.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이라는, 다소 비관적이면서 한 줌의 유머가 섞인 문구를 그는 자신의 프로필 대문에 걸어두었다. 그 첫 문장 밑에는 흔한 키, 몸무게, 나이, 성향도 쓰여 있지 않았다. 다만 정치와 페미니즘, 김사월에 관심있다는 구체적인 정보가 덧붙여져 있었다. 비슷한 취향이 반가워 그의 사진을 오른쪽으로 밀었고 뜻밖에도 매칭이 되었다는 표시가 화면에 떴다. 아주 단편적인 신상정보만 올려둔 나로서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간단히 인사를 하며 나도 김사월을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어제 하루 온라인으로 짧은 대화가 이어졌고, 오늘 저녁에 만나서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멀지 않은 거리라서 내가 그의 동네에 가겠다고 했다. 그는 냉방이 잘 되는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저녁 여덟 시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지만 장마가 지난 7월 하순의 공기는 여전히 더웠다. 이 많은 열기가 과연 내일 다시 해가 뜨기 전까지 식을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더운 하루였다. 건식 사우나에서 선풍기를 쐬는 것처럼 눅눅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탔다. 완전히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었지만 길을 정확히 확인하고 싶어서 중간중간 멈춰서 지도를 봤다. 큰 길을 몇 번 건너야 해서 신호를 자주 기다렸다. 앞바퀴를 멈출 때마다 초조함이 들었다.
데이팅 앱으로 연결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처음은 아니지만 나는 매번 어쩔 수 없이 긴장을 한다. 아무리 많은 메시지를 주고 받았어도 실제로 누군가와 면대면으로 마주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마치 거대한 그림의 일부분을 확대해서 보는 것처럼 온라인의 상대와 현실의 인간 사이에는 언제나 굉장한 간극이 있었다. 사실 선택적으로 노출한 이미지와 총합으로서 존재하는 실체가 비슷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하지만 결국 오늘처럼 약속을 잡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게 만드는 데에는 순전한 호기심말고도 다른 마음이 끼어들게 된다. ‘혹시’라든가 ‘어쩌면’ 같은 가늘고 안쓰러운 감정들. 집에서 나오기 전 제일 아끼는 팬티를 골라 입을 때의 감정 같은 것들.
지하철역 출구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힘껏 페달을 밟고 왔기 때문이었다. 산만한 일요일 저녁의 대학가였지만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눈앞의 그는 사진과 닮은 얼굴,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실물이 더 좋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들뜬 나머지 그의 안내를 따라 맥주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생각보다 키가 큰 편이셔서 놀랐다’는 실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나에 비해 말수가 적었는데, 처음 만난 상대가 과묵하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 ‘당신의 첫인상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었고, 아주 드물게 ‘원래 좀체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거나 ‘너무나 설레어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희박한 케이스는 여지껏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기왕 만났는데 얘기나 좀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원하고 모던해 보이는 펍에 들어섰다.
지하에서는 잔잔한 분위기의 재즈팝이 흘러나왔다. 냉방이 훌륭했고 손님도 많지 않아 적당히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곳이었다. 각자 마실 것을 주문하고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렇게 일하는 얘기, 취업이나 진로 얘기, 학교 다닐 때 무엇을 전공했고, 고향은 어디인지, 군 복무를 어디서 했고, 어느 곳을 여행해 보았는지까지 서로의 인생을 주마간산으로 훑는 말들이 오갔다. 어색했다. 대화의 꼬리가 물고 물리기보다 힘겹게 붙어있는 것 같았다. 어느 한쪽이 대단히 노력하고 있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 자리가 별로라는 걸 티내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지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적당히 묻고 적당히 답하고 적당히 듣는 것. 그 노력의 주체가 그였는지, 시시할 정도로 매력을 보여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지친 나였는지, 그냥 쌍방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나는 두어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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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즐거웠어요. 그에게 억지로 청한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며 생각했다. 너무 예의바른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고. 교양 있는 대다수의 우리는 초면에 던지는 직설화법이 무례이기 쉽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실 본심은 너무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툭 까놓고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질문들. 재미가 없으신가요? 제가 별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왜 연애가 장래희망이신가요? 정말로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그런데 이런 걸 상대에게 묻지 못하는 건 단지 예의만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 매달리거나 왕성한 관심을 보이는 건 좀 구질구질해서 거부감을 낳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그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일인 것이다. 나는 이만큼이나 괜찮은 사람인데 그걸 잘 모르는 당신한테 이렇게까지 약해져야 하나? 이런 의문이 자존심과 함께 빠득빠득 고개를 치민다. 마음의 벽을 기꺼이 허물어 보고 싶어 사람을 만나놓고 먼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리어 굳건한 철벽을 짓는 아이러니다.
나는 어른이 된 걸까.
지켜야 할 예의와 자존심을 아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라면 나는 지금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연애가 어른들의 장래희망이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참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늘 연애를 꿈꾸지만 사실 그들에게 연애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나중으로, 다음으로 미뤄지는 희망이다. 비슷한 어른들이 서로를 만나며, 기대하고 실망하고 설레고 상심한다. 어른은 더욱 어른이 되고, 연애는 어린 시절의 꿈처럼 점점 멀어진다.
돌아오는 길에 집집마다 에어컨 실외기가 웅웅거린다. 아마도 하루종일 쉬지 않고 돌아갔을 기계들의 탄식이 남일 같지 않았다.
이름이 어느 영화배우와 같았던 그에게 조금 덜 어른스러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다음 날 한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저는 한번 더 만났으면 좋겠네요. 기대가 없어도 괜찮다. 상처가 돌아와도 그럭저럭 털어버리면 된다. 꿈을 계속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 어제보다 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 2018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