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부스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스러기 Jan 29. 2021

지나간 연애와 시기상조 아닌 광고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앉았다. 때 지난 일기들을 자주 올리던 곳에 시차가 거의 없는 이야기를 끄적이는 것이 어색하지만, 맥주를 몇 캔 마시고 그냥 침대에 눕기 아쉬워 브런치를 켜 보았다. 사실 그동안 몇 번인가 서랍에 넣어둔 글들을 혼자 열어 읽다가 괜히 문장을 고쳤다가 다시 닫아놓곤 했다. 대부분이 얼마 전 끝난 연애에 대한 글이었다. 헤어졌던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 틈틈이 쓴 일기 덕분에 만남의 시작부터 엔딩까지 참 많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어떤 기억은 너무 미주알고주알 써둔 바람에 다시 보기 조금 낯뜨겁기까지 했다. 쓸데없고 수요 없는 사생활을 공개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마침표가 찍힌 관계의 이야기를 추억하듯 조금씩 꺼내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늘 그랬듯 한동안 혼자 고민을 했고, 서랍 속 글들을 지워버렸다. 휘갈기듯 써내려 간 날것의 사실과 감정을, 그것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나간 일기라는 명목으로 전시할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그 이야기들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써볼까 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 시도는 결국 내가 찍고 남겨둔 사진과 문장들을 헤집으며 하루종일 지난 연애를 청승맞게 추억하는 것으로 끝이 나버렸다.


사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아주 바빠졌다. 쉽지 않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일상에서 여유를 찾는 일에 인색해졌다. 그래서 가끔은 만약 내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 사람과 이전보다 더 잘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에게 감정적으로 자주 의지했고, 그의 마음이 떠날 것을 항상 염려했고, 그 원인은 끝내 나에게 있으리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실제로 차였다. 놀랍게도 이런 '자기실현적' 이별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은 자존감의 문제임을 쓰리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도돌이표처럼 같은 선택을 반복한 것이었다.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알 수가 없어 한숨만 푹푹 쉬다가 2020년이 갔다. 그리고 새해에는 연애 따위 눈길도 주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과 뜻밖에 밀려오는 외로움 사이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찾아가며 또 한 달을 흘려보냈다.




얼마 전,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 광고를 하나 시작했다. 광고주는 국내외에서 유명한 게이 데이팅 앱, 잭디였다. 퀴어 당사자로서 나 역시 사용 경험이 있는, 생각해보면 (몇 안 되는) 지나간 연애의 대부분을 성사시켜준 서비스였다. 2년 전쯤 마지막 연애를 시작하며 앱을 삭제한 뒤 지금까지 잊고 지내왔는데,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에 협찬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것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가장 먼저 '와, 광고 들어와서 잘 됐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으로 잭디가 마케팅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영상의 댓글창을 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광고주와 채널 운영자의 협업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응원의 코멘트들 밑으로 날선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달려 있었다. 성소수자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공개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웃팅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었다. 실망, 경솔함, 구독 취소, 앱 탈퇴, 손절 같은 거친 말들 속에서 익숙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클로짓) 게이들이 크든 작든 숙명처럼 지고 살아가는 '오픈'에 대한 부담감이기도 했다. 나 또한 그런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경악 아닌 경악이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어떻게 드러낼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는 그들이 다른 서비스를 찾아 나서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논리는 이런 식의 대외적 광고가 한국의 사회적 인식 수준을 고려할 때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은 자주 변명처럼 쓰인다. 그것이 언제나 틀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설령 옳은 경우에도 시기상조는 결코 효과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 문제의 본질을 손쉽게 외면하는 핑계가 될 뿐이다. 공격적인 광고주로서 잭디가 강조하듯이, 진정으로 중요한 과제는 성소수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서비스를 음지에 숨기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해당 유튜버는 이번 광고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에 의연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서로가 추구하는 뜻이 맞아 협찬을 시작하였고 자신은 그만둘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는 이 모든 기획을 결의한 이들을 소심하게, 그러나 열렬히 지지하는 마음으로 광고 영상마다 열심히 좋아요를 눌렀고, 잭디를 다시 설치했다. 당분간 내 인생에 데이팅 앱은 없다고 외친 새해 결심이 무색하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삭막한 일상을 조금 즐겁게 한다. 그 상대가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앱을 선택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마웠고 잘 부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