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독립하고 처음으로 자리를 틀었던 자취방을 3년 만에 떠났다. 지긋지긋하지만 정들었던 원룸을 원래의 모습으로 하나둘 되돌리며 지난 시간들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이곳에 들어올 때 내가 가졌던 꿈, 마주한 현실의 벽, 그러다 깨달은 나의 한계, 지나간 인연들을 먼지와 함께 차례로 쓸어내렸다. 대학원에 들어가며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살아온 공간에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왕 살 곳을 옮기는 만큼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더 나은 집을 구하고 싶었고, 이런저런 조건들을 타협하며(혹은 외면하며) 투룸을 계약했다. 여기엔 한번 마음이 꽂히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는 내 성격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일까. 잔금을 치르고 열쇠를 받은 날, 입주할 집을 방문하고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평범한 옵션도 붙박이장도 하나 없이 휑하게 방치되어 있는 열평 남짓한 낡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러나 지금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너무 하얀 도화지를 두고 당장 무엇부터 그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망연한 기분이었다. 보름 뒤에 학기가 시작될 예정이었고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으로 이 집을 내가 바라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열흘 간 안간힘을 썼다. 페인트칠과 더불어 대청소를 했고, 인색하고 무관심한 임대인과 기싸움을 하며 낡은 시설들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생활에 꼭 필요한 가전과 가구들을 가급적 저렴하게 그러나 성의 있게 들여놓기 위해 잘 쓰지 않던 당근마켓과 오늘의집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일주일 쯤 지났을 때 폐허 같던 공간이 그나마 사람 사는 집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쪽잠을 자면서 장판과 유리창을 닦고 잡다하게 모아온 짐을 정리하며 내가 지금 신혼집을 차리는 건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모든 과정은 나만의 고군분투였다.
오늘은 이사한 집을 보러 엄마가 올라왔다. 엄마는 '집이 많이 좋아졌네' 하며 내내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이런 곳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몹시 밟혔을 것이다. 이런 곳에 들어와 고생을 하는 것도 경험이라는 말도 이해는 되었지만, 그 말에 서린 부모로서의 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리 좋은 경험이더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신 구옥에 살지 않을 거라 농담을 했는데, 사실 그건 진심에 더 가까웠다. 이사는 너무 고된 일이고, 내 집이 아닌 곳을 전전해야 하는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애달프다.
그래도 이사를 마무리하며 처음으로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한파로 얼어붙은 보일러 온수관을 끙끙대며 녹이고, 우풍이 들어오는 문틈 사이마다 실리콘과 문풍지를 바르면서도 이제 나는 이 공간을 내 '방'이 아닌 '내가 사는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음을 떠올릴 때였다. 5평이 안 되던 원룸은 몸을 누인 침대와 반만 펼친 빨래건조대로 가득 차는 곳이었다. 대낮에도 형광등 불빛을 켜야 했고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옆집의 대화 소리에 늘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낮은 천정과 사방에서 조여오는 듯한 벽에 조금씩 숨이 막힐 때쯤 나는 이곳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조금 더 편안하고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얻었음에 감사하다. 이를테면 오늘 밤 옥상에서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옷방에서 잠옷을 갈아입은 뒤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둔 채 샤워를 하고 침실에 눕는 모든 움직임의 순간이 뿌듯했다.
새로운 공간에서 더 부지런하고 덜 외롭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