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영과 함께 하는 2018 해외음악 연말결산>에 다녀오다
누군가 농담 삼아 나를 가리켜 '텍스트성애자'라고 부른 적이 있다. 유튜브가 대세인 시대, 아무래도 칭찬은 아니었겠으나 나는 텍스트를 좋아한다. 읽고 쟁여두는 버릇이 있을 뿐 아니라,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미숙하지만 직접 쓰는 것도 즐거워한다.
한심스러울 정도로 도태된 면도 있다. 종이로 된 책을 선호하다 보니 e-Book엔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또 다른 예시도 있는데, 팝 앨범을 구매하면 꼭 해설지가 있길 기대하는 것이다. 해외 앨범이 국내 라이선스 음반으로 제작되는 비율이 줄어들면서 갈수록 음반에 해설지가 사라지는 건, 내겐 소소한 비극이다.
초등학생이던 1998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6촌 형 덕택에 음악 잡지 <Sub>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패닉과 푸른하늘만이 최고의 가수라 여기던 내게 모르는 아티스트가 한가득인 <Sub>는 엄청난 보고였다. Oasis나 Suede와 같은 브릿팝 아티스트, Nirvana, 장필순과 백현진과 같은 한국 인디가수들 역시 <Sub>를 통해 알게 되었다.
워크맨에는 녹음된 브릿팝과 인디 음악이 가득해진 것도 그때였다. 어린 나이에 가요 톱텐에 나오는 노래는 유치하다 치부하며, 때 이른 홍대병에 물든 것도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치기 어린 태도가 <Sub> 때문이라면, 음악 평론 글에 대한 선망은 오롯이 성문영 기자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Hot Music>에서 편집부 기자를 하다 <Sub>의 편집장이 된 그의 글은 유려하면서 냉소적인 면이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뭉클한 느낌도 있어 사람을 끌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Sub>가 폐간된 후에도 팬질은 계속되었다. 그가 쓴 해설지 때문에 용돈을 털어 음반을 사 모으고, 그가 진행하는 쌈지넷 인터넷 라디오 <세상은 듣지 않는다>를 찾아들었다.
청소년기에 우상 하나쯤 있다고들 하던데, 나는 락스타보다 음악 평론가인 그를 더 흠모했던 것 같다.
2014년부터 문래동 재미공작소에서 팝 칼럼니스트 성문영 - 요즘은 대부분 이렇게 부른다 - 과 함께 음감회를 매 연말마다 진행하고 있다. 한때 팬이었다는 고백이 무색하게 꽤 늦게서야 소식을 알았고, 그 이후 매년 꾸준히 참석을 하고 있다. 주변에 가끔 동행을 묻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늘 홀로 참석하고 있다. 덕택에 나름 나만의 작은 연말 제의祭儀, 비슷한 것이 되어버렸다.
가격은 일만 이천 원, 신청할 때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팝 앨범과 싱글을 각각 세 개씩 적어야 한다. 처음 들었을 땐 앨범 3개 정도야 우습다 여겼는데, 해가 지날수록 선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한 해에 앨범째 음악을 듣는 빈도가 얼마나 줄었는지, 새로운 앨범을 찾아 듣지 않은 건 언제부터인지. 음악의 취향이 어느새 한쪽으로 쏠린다는 것 자못 서글프다. 일상이 바빠진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아 들을 정도의 열정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자님이 교통 상황으로 조금 늦게 되어 참석자들은 잠시 기다려야 했다. 재미공작소는 참석자들이 각자 선정한 팝송의 뮤직비디오들을 스크린에 틀어주었는데, 그 시간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들을 함께 공유하고, 자그마한 공간에 앉아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 것. 다들 조용히 음악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기자님은 살짝 지각을 하였고, 연신 사과를 하며 음감회 준비를 했다. 조금 빠르게 진행하겠다며 마이크를 켠 그는, 차례차례 자신의 선곡 10곡을 설명해 나갔다. 선정 이유와 자신의 감상을 말하는 그의 문장엔, 냉소와 자조의 유머가 군데군데 묻어났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따스한 느낌의 평을 청해 들으며 내가 왜 그의 글을 좋아했는지, 덕택에 무슨 음악을 인상 깊게 쟁여두고 지금껏 살았는지 드문드문 회상할 수 있었다.
1시간 반이 조금 지나는 시간 동안, 10곡의 노래와 설명이 흘러 지나갔다. 내가 미리 알고 있던 노래는 그중 단 2곡에 불과했다.
다섯 번째 노래를 틀었을 때였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자 이 곳에 왔을까. 무엇을 기대하며 홀로 겨울 저녁에 문래까지 온 걸까.' 단지 어릴 적 우상, 혹은 전문가의 취향을 듣기 위해서라기엔 수고가 너무 컸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그가 선정한 10곡 모두가 꼭 내 취향에 다 맞지는 않는 것이다. 매년 5-6개 정도의 곡을 얻고자 온다면 수율이 떨어지지 않는가. 어느새 나는, 협소한 나의 스펙트럼을 벗어난 음악들에 쉽사리 귀를 열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남에게 건네는 건 쑥스러울 것이다. 친구나 연인에게 음악 한 곡, 영화 한 편, 엽서 한 장을 고심해 전달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리라. 나는 그때마다 어릴 적 <Sub>의 문장들을 떠올리곤 한다. 날카롭지만 따스한, 과격하지만 적절한. 소중한 사람에게 내 취향을 공유할 때는, 가능하다면 과거 성문영 기자의 글귀들이 주던 그 특정한 느낌도 같이 전달하고 싶다고. 어렴풋이 그런, 쉽지 않은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연말마다 이 곳에 오면 그 기분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매번 올 때마다 어색해하면서, 연달아 이 곳을 찾는 이유다. 작은 나의 연말 행사가 되었다.
그의 올해 선곡 중 가장 좋았던 2곡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