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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Dec 24. 2018

각국의 헌법을 통해 바라보다

한국, 일본, 미국, 독일의 헌법

좋은 책을 읽고 사람들과 많은 토론을 나누는 등의 행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을 손에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좋게 말하면 '관점'이고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편견'이다. 이 특정한 프리즘 - 중립적인 표현을 써보자 -은 유익할 때도 있지만, 프리즘을 얻기 이전처럼 세상을 바라보기는 매우 어려워지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도 한다. 2018년에 획득한 프리즘 중 가장 매력적인 틀은 '협력의 방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특히 익숙할 정도로 잘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통해 뉴스의 정치면이나 세계면을 바라보면 이전보다는 좀 더 신선한 관점으로 현안을 바라볼 수 있다. 획득한 프리즘을 자유자재로 쓰는 하나의 방식은, 관련하여 계속해 글을 써 보는 것일지니.


국가를 거대한 협력의 단위로 이해한다면, 그 협력에는 기초가 되는 룰Rule이 필요한 건 자명하다. 그 룰은 저마다의 철학을 지닌 채 시민 전체를 포괄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무수한 시스템은 애초에 이러한 룰에 전제하여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시민에게 제공된다. 이러한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규범을 헌법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의 헌법 

어떤 나라의 헌법을 읽으면 어떤 철학에 기반하여 모둠살이를 운영하는지, 시민과의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형성하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을 예로 들어보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외운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1항과 2항은 아래와 같다.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선언이지만, 개정되기 이전 유신헌법의 1조 2항은 위와는 조금 다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그저 대의 민주주의를 풀어쓴 것처럼 보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차이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헌법 조문의 미묘한 차이는, 국가에게 부여된 철학을 바꾸기도 한다. 지금의 조항으로 바뀌었기에,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와 국민투표 외에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언론을 통해 대표자를 문책할 수도 있고, 나아가 대표자를 탄핵할 수도 있다. 
※ 대한민국 헌법에 관련하여 예전에 쓴 졸문 링크를 달아본다.



일본의 헌법

옆 나라 일본의 헌법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1조부터 8조까지는 천황에 관련된 내용의 나열로, 현대 민주국가로서의 첫 조항은 9조부터 시작한다. 9조의 1항과 2항은 아래와 같다.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 제1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외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첫 조항부터 전쟁과 전력戰力의 포기를 선언하는 헌법이기에, 이 조문은 일본국 헌법을 평화 헌법이라 부르게 된 유래가 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자위대만을 가진 채 일본군을 가지지 못하게 된 이유이며, 현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의 개헌 목표의 중요 쟁점이 되기도 한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이 2차 대전 당시 일제로부터 피해를 본 국가들은 일본의 이러한 개헌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상식으로는, 군대는 국가의 기본 요건처럼 취급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의 사례는 확실히 특이할 법하다. 특히나 북한처럼 일본에 적대적인 국가가 주변에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적대국이 근저에 있으면서도, 군대를 소유하지 않을 수 있는 이러한 놀라운 균형은 바로 미국의 국방력 외주화 덕택이다.


미국은 21세기 제국의 책무인 마냥, 자유시장을 수호하기 위해 글로벌 기축통화를 공급하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이다. 전 세계에 파병된 미군은 일종의 국방력 외주화인데, 극단적으로는 본다면 모든 미국 우방국들은 군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미국의 국방력은 강대하고 넓게 퍼져있다. 이는 세게 경제가 안정적으로 수호된다면 가장 이득을 보는 국가가 미국이기에, 가능한 메커니즘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무료 안보 제공'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고립주의를 택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게, 일본의 평화헌법 개헌을 환영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헌법

그렇다면 미국의 철학은 어떨까. 연방 국가인 미국은 각 주의 헌법과 별개로, 본문 7개와 수정조항 27개로 이루어진 연방정부 헌법이 존재한다. 앞의 7조 항은 상하원, 연방의회, 대통령 등의 국가권력에 대해 규정하는 내용이다. 그 이후 나오는 수정조항에서 미국 시민에 대한 권리를 다룬다. 수정헌법 1조와 2조는 다음과 같다.

제1조.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제2조.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무기 소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 두 조항은, 가장 유명한 조항이자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헌법 조문이기도 하다. 이는, 강대한 국가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저항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광대한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거대한 권력, 그 힘을 제대로 분산하기 위한 다양한 방편이 쓰인다. 삼권을 분리하고, 다시 입법부를 상하원으로 쪼개고, 상원은 2년마다 1/3을 교체하고 하원은 새로 선출하는 등등 말이다. 권력을 분할하고 상호 감시토록 해도, 여전히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강력한 국가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국가에 저항하기 위한 시민 개개인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를 수정헌법 1,2조에 담은 것이다. 정보와 무기. 이 조항 덕택에 미국은, 증오 발언마저도 가장 자유롭게 허용되는 나라임과 동시에 총기 난사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기를 포기하기 위한 국가적 합의가 도출되기 어려운 국가이다. 

우리로서는 놀라운 일이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은 총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100% 신뢰하지 못한다. 국가가 영원히 선하지 않을 경우 저항할 수 있는 유이한 무기 중 하나를 잃는다는, 미국인의 사고방식 기저에는 바로 이 수정헌법이 대표하는 국가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독일의 헌법

정확히 말하면 독일은 헌법이 없다. 독일 기본법은 서독에서 제정되어 동독과 통일하며 헌법을 새로 제정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여전히 서독의 기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에 정확히는 여전히 임시헌법이다. 독일 기본법의 1항은 다음과 같다.

①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② 그러므로 독일 국민은 이 불가침ㆍ불가양의 인권을 세계의 모든 인류 공동체,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 인정한다.
③ 다음에 열거하는 기본권은 직접 적용되는 법으로서 입법권ㆍ행정권ㆍ사법권을 구속한다.

세계 최초로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기본법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반성과 교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독일은 수도인 베를린 한복판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박물관과 공원을 가진 국가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의 문화가 뿌리 깊었던 독일에서 가장 뚜렷한 성장을 보이는 정당은 바로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AfD)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 무제한 수용 선언 이후 AfD 지속적으로 지지율이 상승하여, 2017년 9월 총선에서 원내 3당(득표율 13%)이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선언한 헌법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비단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난민 이슈와 결부될 때 프랑스,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극우정당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영국은 EU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국가를 거대한 모둠살이의 일종으로 볼 때, 헌법은 가장 기초적인 규범이자 지표가 된다. 자유와 인권, 상호 규제와 건전한 협력을 기치로 삼던 헌법을 토대로 지금의 선진국들은 빠른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렇게 훌륭하기에 많은 난민들 - 혹은 멕시코인들 -이 선진국으로 향한다. 온전히 이룩해 놓은 시스템에 타인이 무임승차한다는 국민 정서는, 각 국가가 고립주의로 향하도록 종용한다. 여러 나라의 극우 정당이 득세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충분히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태를 각 국가별 헌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다면, 여러 의문이 들게 된다.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국가보다 더 큰 공동체의 실현은 얼마나 가능한지, 인권은 국가를 넘어 전 세계를 향해 더듬이를 뻗을 수 있는지 등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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