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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May 29. 2022

돌밥 돌밥 진짜 돌아버리겠네

Part2. 딱 1년만 혼자 키우겠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코로나 확진을 받은 지 하루 만에 내 몸에도 이상 신호가 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열이 나기 시작했다. 비상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마스크를 두 겹이나 꼈고, 손 소독제도 열심히 발랐건만, 때는 이미 늦었음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코로나 확진을 받기 전까지 우리는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뒹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만 코로나에 안 걸린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임에도 남은 막내가 걱정돼 나는 계속해서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밤이 되자 내 몸은 불덩이가 되었고, 오한에 밤새 오돌오돌 떨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없이 앓았다. 엄마가 급히 와주신 덕분에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나는 마음 놓고 밤새 아플 수 있었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는 것에 잠시 엄마라는 자리가 원망스러웠다. 열과 오한으로 한잠도 못 잔 채 나는 아침이 밝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내 앞에는 무려 25명의 대기 환자가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진료실에서 나오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검사 후 절반은 남고, 절반은 병원 문을 나섰는데 남은 사람은 당연히 코로나 확진자였다.



 “최다희씨는 양성이네요. 잠시 기다리세요.”

예상대로 나는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그리고 남은 이들과 함께 한참을 다시 대기한 후 의사와 면담을 하고, 처방 약을 받은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열과 오한이 지속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내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며칠은 엄마의 도움을 받았지만, 엄마의 건강도 걱정되었기에 내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다 싶을 때 엄마는 집으로 가셨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이 코로나에 확진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말이다. 일단 아픈 내 몸을 챙기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그보다 더 급박한 것이 때마다 돌아오는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낳은 최고의 신조어 ‘돌밥’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에게 한 끼를 차려 먹이고 한숨 좀 돌리라치면 돌아서면 다음 끼니가 기다리고 있는 그래서 ‘돌아서면 밥때’를 말하는 이 ‘돌밥’은 코로나 시국에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였다. 코로나 확진자였던 나에게도 ‘돌밥’에 예외는 없었다. 몸은 힘든데 아이들의 끼니는 챙겨야 했기에 며칠은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때웠다. 그런데 아무리 맛있는 배달음식이라도 자주 먹으면 질리는 법.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육아 커뮤니티에는 이미 코로나로 인해 엄마들의 하소연이 넘쳐났는데 특히 나와 같이 ‘돌밥’에 지친 엄마들의 글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집에서 점심이라도 받아 오고 싶어요.’, ‘언제까지 돌밥해야 하나요? 너무 지쳐요.’라며 마치 내 마음을 그래도 옮겨 놓은 듯한 글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과연 가정보육과 ‘돌밥’에 끝이라는 게 있을까? 싶은 마음에 답답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하소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아이의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돌밥’이라는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얼굴은 전혀 모르지만, 처한 상황은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들끼리 돕고 나선 것이다. 그때부터 육아 커뮤니티에는 ‘밥’과 관련된 정보가 올라왔다. ‘00반찬가게는 마른반찬이 맛있어요.’, ‘이 집은 국을 잘해요.’라며 동네 맛있는 반찬가게를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에서 파는 가성비 좋은 밀키트 제품의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어떤 엄마는 집에 있는 재료로 간편식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나는 이 간편식 조리법 정보에 특히나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이 올려주는 레시피를 틈틈이 메모를 해두었다가 냉장고에 사둔 야채를 탈탈 털어 아이들을 위해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 그 메뉴는 주로 주먹밥과 밥 전, 밥 머핀이었으며 다진 야채, 달걀, 가스레인지 혹은 오븐만 있으면 단시간에 훌륭한 한 끼 식사를 완성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이들의 반응 역시 좋았다.

“너무 맛있어, 엄마 최고야!”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내게 해준 말은 아픈 내 몸도 낫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시간과 정성을 쏟은 음식보다 더 잘 먹어줘서 왠지 모를 허탈감마저도 들었다. 간단한 재료로도 최상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간편식 조리법’은 코로나 확진자인 내게 ‘돌밥’을 이겨내는데 큰 몫을 했다.



간편식 조리법으로 만든 밥전







 이유식도 마찬가지였다. 막내는 코로나가 가장 심각했던 때인 2021년 1월에 태어났다. 하필 첫째와 둘째의 가정보육이 잦았던 때라 막내에게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은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거기에 남편이 해외파병으로 부재하자 나는 아슬아슬한 육체와 정신상태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날보다 분유를 선택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첫째, 둘째에게 해줬던 것처럼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이자는 신념 하에 막내의 이유식도 꾸역꾸역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자 더는 내 손으로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 무렵 동생네 아이인 쌍둥이 조카들이 이유식을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인다는 게 애초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동생네는 시판용 이유식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돌밥’에 힘들어하던 내게 시판용 이유식을 권했다. 주문한 이유식이 도착하고, 아이에게 먹이는 순간 내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시판용 이유식은 아이의 개월 수에 맞춰 단계별로 잘 나올 뿐 아니라 재료도 대부분 유기농이며 신선도와 용량까지도 적당했다. 무엇보다 육수를 사용해서인지 집에서 만든 이유식보다 맛도 훨씬 좋았다. 이유식 한 통을 순식간에 비워내는 막내를 보자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신념도 무너트리게 되었다. 시판용 이유식은 나의 몸과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유식을 사 먹인다고 해서, 음식을 조리하는데 시간이 적게 들어간다고 해서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몸이 조금 편해지자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밥’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로서, 코로나 확진자로서 ‘돌밥’의 큰 산을 넘기 위해 이렇게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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