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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Jul 05. 2022

적은 돈이라도 나에게 쓸 수 있는 용기

Part5. 다시 나에게 친절해지는 시간

 언젠가부터 사진 속에서 내 얼굴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흔히 하는 모바일 메신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메인 사진은 항상 내 얼굴 대신 아이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였다. 이건 비단 내 얘기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의 메신저만 살펴보면 대부분이 메인 사진을 아이들로 꾸며놓았다.



 많은 엄마가 그렇듯 나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나보다는 아이와 남편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식사를 준비할 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남편 입맛에 맞는 반찬을 위주로 하게 되고, 장을 볼 때도 아이와 남편이 좋아하는 식재료와 간식을 구매했다. 어쩌다 내 옷 하나 사려고 쇼핑몰을 가면 여성복이 아닌 아동복 코너로 먼저 달려갔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모습과 기가 막히게 닮아 있다. 바로 우리들의 엄마다. 남편과 자식이 늘 먼저였던 엄마는 스스로 희생의 아이콘이 되어 자신보다 남편을 그리고 자식을 우선으로 여기며 사셨다. 이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god 1집에 수록된 ‘어머님께’라는 곡은 멤버 박준형의 실제 이야기라고 뒤늦게 고백한 바 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가사는 사실 짜장면이 아니라 잡채였다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 새벽부터 일을 나가셨다고 한다. 일터에서 어머니는 점심에 나오는 음식을 종종 싸 오셨는데 그중 하나가 잡채였다고 한다. 자식을 먹이기 위해 아들에게 자신은 잡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던 박준형의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무한하구나를 느꼈다.



 그런데 자식을 키우는 엄마라고 해서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게 진짜 없을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큰고모로부터 얻게 되었다. 큰고모는 국제결혼을 한 뒤 미국에서 살고 계신다. 일흔이 넘으셨는데도 정말 젊게 사신다. 얼굴도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이시는데 고모만의 동안 비결이 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고모는 아주 가끔씩 한국에 오신다. 몇 해 전 오랜만에 본 고모는 여전히 젊고, 화려했다. 향수를 뿌리셨는지 고모에게선 좋은 향기가 났고, 화장품이며 심지어 머리를 마는 고데기도 챙겨오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 오실 때면 어김없이 성형외과를 들른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모는 적게는 5살 많게는 10살까지 어려 보이게 변신하셨다.



 이런 고모를 보면서 솔직히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네 엄마들과는 너무 달라서 말이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이 멋있기까지 했다. 고모의 생활 방식과 소비습관도 한국의 여느 엄마들과는 달랐다. 원하는 게 있으면 아끼지 않고 구매하셨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행동으로 옮기셨는데 나는 이점을 엄마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들도 갖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엄마로부터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자신의 본능을 앞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나도 보고, 배웠다. 아니,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습득한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로 살아가는 날들이 점점 쌓일수록 가끔은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의 요즘 엄마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광고회사 대홍기획은 출산 후 육아휴직을 거쳐 복직까지 약 2년의 시간을 보내는 여성의 소비력을 분석한 리포트를 내놨다. 리포트에 따르면 27~39세(여성 직장인 중 2년 내에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복직한 여성 100명) 여성이 출산 후 2년간 소비한 금액이 임신·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월 소비액이 2배 더 높다고 한다. 이들의 출산 후 소비패턴을 살펴보면 쇼핑의 변화를 알 수 있는데 출산 후 8~10개월까지는 아기를 위한 쇼핑을 주로 했지만, 출산 후 11개월 이상부터 서서히 자신을 위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4개월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위한 소비에 집중했다. 아이가 돌을 넘기기 시작할 때쯤 나를 위한 소비에 집중하는 엄마들은 일각에서는 평범한 워킹맘이 아니라 ‘큰손’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나는 ‘큰손’처럼 플렉스(젊은 층을 중심으로 부나 귀중품을 과시) 하지는 못하더라도 어쨌거나 엄마인 나를 위한 소비는 환영하는 바이다. 육아는 긴 마라톤과도 같기 때문이다. 육아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아이와 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하는 투자는 일상의 활력과 자존감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육아로 고립된 생활을 했을 때 세상과 연결해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책에 빠져 꾸준히 읽고 싶었지만, 아이가 어리니 도서관 한번 가는 것도 내겐 큰 일이었다. 그때 큰 결심을 내리게 됐다. 한 달에 한 권씩 나를 위해 책을 사기로 말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매월 한 권이니 일 년이면 나름 큰돈이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나는 나를 위해 돈을 쓰기로 했고, 그 덕분에 내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책은 척박했던 내 삶에 심폐소생을 해주었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했다.





 그 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카페로 달려갔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가장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아이들이 하원 할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일상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고, 숨통이 트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좋은 기분은 고스란히 아이와 남편에게도 전달이 되었으니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의 값은 내겐 전혀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간혹 ‘이 돈을 모으면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사줄 수 있을 텐데….’라며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적은 돈이라도 내게 투자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자 더는 내게 쓰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남편 역시 그런 나를 온 마음으로 지지해주었다.








 최근 한 화장품 회사에서 엄마를 타켓으로 한 광고를 선보였다. 나는 그 광고를 본 뒤, 잔상이 오래 남을 정도로 진한 여운을 느꼈다. 광고 내용은 이렇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밤새 어린 둘째를 돌보느라 잠을 뒤척인다. 제대로 못 잔 엄마는 피곤한 상태로 아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아침부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거울 앞에서 간편한 스틱형식으로 된 이 화장품을 얼굴에 쓱쓱 바르고 집을 나선다. 아이의 등원을 무사히 마친 엄마는 그제야 활짝 웃어 보이는데 이때 화면에 나타난 문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지갑을 열기에 제법 안성맞춤이었다.


‘누구 쉽게 아름답게’


화장품 회사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엄마들에게 어떤 화장품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는 듯 했고, 그런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까지 주고 있었다. 이는 곧 매출로 이어졌고, 현재 누적판매 횟수만 1000만을 돌파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유명 화장품이 되었다.




출처 가히 유튜브 채널  [KAHI TV CF] 가히 멀티밤 광고 영상 엄마편




 엄마들은 늘 바쁘다. 특히 아침이 그렇다. 그 덕에 대충 씻고 아이의 로션을 내 것처럼 안 발라본 엄마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바쁠 때는 아이 로션을 나눠 바르는 통에 아이를 낳고 한동안 화장품 살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화장품 광고를 본 뒤, 무언가에 이끌린 듯 구매하게 되었고 이 스틱형 화장품을 바르는 날이면 이상하리만큼 근거 없는 자신감에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드라마틱한 효과야 있든 없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저 나를 위해 화장품을 구매했다는 것만으로도 다 괜찮았다.



 나는 가끔 꽃을 산다. 이것도 나를 위해서다. 어느 찬기가 가시지 않던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길가에 세워진 꽃 트럭 아저씨를 만났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평소 좋아하던 프리지아 한 단을 샀다. 싱크대 위 선반에 놓고 보면 설거지할 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였다. 그런데 꽃이 너무 빨리 시드는 게 늘 아쉬웠다. 다시 꽃 트럭 아저씨를 만났을 때 그 얘길 했더니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비법이 있다고 하셨다. 내 귀를 솔깃하게 한 비법은 다름 아닌 설탕이었는데 물에 설탕을 조금 섞으면 꽃이 다 핀 뒤에도 오래 두고 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반신반의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꽃병에 물을 담고, 실험하는 마음으로 설탕 반 스푼을 넣었다. 신기하게도 아저씨의 말처럼 진짜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예쁘게 핀 프리지아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꽃을 피우고 그 싱싱함을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설탕이 마치 나에게 투자하는 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하면서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이상한 나를 마주하게 되었고, 때론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듯한 느낌에 시들시들해진 꽃처럼 보낸 시간이 많았다. 이런 기분은 아이들에게도 썩 좋은 영향을 주진 못했는데 그때 내게 투자한 소소한 금액의 돈내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삶이라는 꽃을 피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로 인해 달콤한 육아기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친절해지기 위해 지금도 돈 쓸 용기를 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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