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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글 Nov 12. 2021

미래에도 여전히 사람이 산다

엄마와 키오스크

얼마 전, 기사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매장에 찾아간 어머니가 무인 단말기 주문 시스템이 너무 어려워 주문을 포기하고 왔다는 어느 누리꾼의 경험담이었다. “딸, 나 끝났나 봐”라는 어머니의 말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경험을 댓글로 남겼다.


문득 전입신고를 하려고 동사무소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이전 집의 다음 입주자가 전입신고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마음이 급했다. 한 시간 반이 지나도 내 차례가 오지 않아 조금 짜증이 났다. 동사무소에 유독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그때가 ‘경기도민 재난 지원금’ 신청 기간이었다. 생년월일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요일이 다르고 특정 기간 전까지는 온라인 신청만 가능한 모양이었다. 어르신들은 온라인 신청 방법에 대해 직원에게 반복적으로 설명을 들었고, 직원은 “정 어려우시면 자녀나 손자분에게 도움받아 진행하시라”는 안내를 했다. 알겠다고 하시며 가는 분도 계셨지만 나가시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걸음을 옮기다 말고 몇 번이고 절차에 대해 되묻는 분도 계셨다. 그 머뭇거리는 눈빛과 발걸음이 우연히 읽은 기사와 겹쳐 보였다.  


생각해 보면, 아직 노인이라고 하기엔 젊은 우리 부모님도 자주 겪는 일이다. 어느 날, 엄마는 나와 같이 먹던 밀크티가 먹고 싶어서 혼자 가게를 찾았다고 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데 복잡한 절차도 헷갈리고 뒷사람의 눈치도 보여 급하게 아무거나 눌렀고, 먹고 싶은 메뉴가 아니라 결국 가격이 더 나가는 다른 메뉴를 골랐다. 아빠는 메신저 앱을 설치할 줄 몰라 대리점까지 찾아가서 직원에게 앱을 깔아달라고 한 적도 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의 내 가족 그리고 훗날 나의 일이 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면서 그만큼 속도가 빨라지고 편리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의 순기능을 누리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손쉬운 기술이 누군가에겐 전혀 다른 세상의 법처럼 낯설고 복잡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술은 경제 활동을 하는, 즉 사회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다. 그렇다 보니 혜택을 받는 것 또한 그들일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와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는 소외될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긴 세월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왔으나 빨라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 자기만 뒤처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크게 느끼기도 한다. 2026년,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 예정이다. 그만큼 많은 노인이 기술로부터 소외되는 건 아닐지 돌아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물론 노인들도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효과를 누린다. “살려달라”라는 독거노인의 구조 요청에 반응한 인공지능 스피커 덕분에 구조대가 출동해 목숨을 구한 노인의 사례도 여러 건이다. 이렇듯 어떤 기술이든 명과 암이 존재한다. 변해가는 시대에 발맞춰가는 배움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에 익숙지 못한 이들도 기술을 잘 익힐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기다려주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변화를 강요하는 건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기술 발전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 빈틈을 메울 ‘사람’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의 교육도 필요하겠지만, ‘나라면, 내 가족이라면’ 이런 생각으로 조금 더 기다려주고, 한 발짝 다가서 도움을 준다면 기술 발전의 빈틈을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에겐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다.


​​2021.3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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