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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글 Sep 23. 2019

기형도 시인 학교

다시 시를 쓰는 시간

기형도 시인 학교 첫 수업을 갔다.

신청자가 많았다고 하던데, 다행히 갈 수 있게 되었지. 집에서 2시간 거리를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일요일에다가 생각보다 차가 안 밀려서 한 시간 반쯤 걸렸던 것 같다.

경기도 광명, 내겐 멀고 낯선 곳이지만 기형도 문학관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는 말에 단번에 신청했었다.



김소연 시인님이 강사이다. <수학자의 아침>이란 시집으로 알고 있던 시인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생각보다 내 또래보다는 나이대가 좀 있으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어쨌든 공통점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것, 그걸로 왠지 크게 낯설지는 않은 느낌이 들었다. 뭐든 처음은 어색하겠지만 말이다.



대학 문창과 수업 이후로, 이런 시간은 처음이라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다. 오늘은 첫날이라 합평할 시가 없어서, 강의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시에 좋고 나쁨은 없으며, 우리는 비평을 하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라, 함께 시를 음미해보는 자리인 것을 내내 상기시켜 주셨다.



그리고 약간 충격적이었던 건,

무언가를 보고 영감을 받을 때 그것이 시의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내가 시를 쓸 때 느꼈던 답답함과 맞닿아있었다.

나는 결론을 정해 놓고 시를 썼었다. 머릿속으로 모든 구성을 짠 다음, 내가 도달할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길을 잃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없다고 하셨다. 어떤 사물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떠올렸다면 그것이 시의 마지막이 아닌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참 그 예가 더 뼈를 때렸다.

강아지가 산책을 할 때 여기저기 가고 싶고 냄새도 맡고 싶은데 주인이 오직 목적지를 정해놓고, 강아지의 산책 루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갈 길만 간다면 참된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거였다.



헉!

너무 정확한 비유라 할 말을 잃음



내가 영감을 받은 것이 결론이 된다면, 그걸로 그냥 끝이라고 하지만 시는 그런 게 아닌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어져 나가는 것. 이 쪽도 가보고 저 쪽도 가보는 것. 시작은 했지만 사실 끝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용기가 생겼달까.

꼭 마무리를 짓지 못하더라도, 일단 시작을 해보는 용기. 오직 결론만 향해 달려 나가다 보면 그 결론만 남고 과정은 사라지는 그런 과오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시는 일기가 아니라는 것

일기장에 쓰는 것은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만, 시는 표현하는 것이다.



폐쇄적인 글쓰기에 익숙한 나지만, 결코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순간을 공유하는 것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

찰나의 느낌이든 이미지든 그 무엇이 되었든.



매주 한 편씩 시를 써 가는데

아주 오랜만의 기분 좋은 압박 같은 것을 느꼈다.



늘 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면서 두근거린다.



너무 일에 치여 사는 것 같아서,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 필요했다. 고민 없이 이 강의를 신청한 나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매주 일요일은 두근거릴 일이 생겼다.

비록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왕복 4시간의 거리를 가야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시간들이다.

일이 먼저가 아닌 내가 먼저인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위안이 된다.



그리고 나는 기형도 시인을 정말로 좋아한다.

매주 기형도 시인을 만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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