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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Jun 07. 2024

집짓기 30주 차

드디어 언베일

145일 차 2024년 5월 27일 월, 14도/23도

1. 비계발판 청소 및 정리
2. 1층, 지하층 화장실 후드캡 설치
방통 작업 전 내부 정리 및 청소 / 벽돌타일에 맞춰 난간 재도장

이른 아침, 조소장님과의 티타임으로 시작한 한 주.

 지난 주말, 조소장님에게 요즘 드는 생각과 우려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었다. 운이 좋아 훌륭한 분들과 함께 작업에 대한 고마움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리라.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 반복되는 수정작업이 괜찮은 지였다. 소프트웨어 기반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 수정과 개선은 제품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당연한 과정이다. 다만, 하드웨어의 수정작업은 소프트웨어와 달리 그 흔적이 남고 때론 처음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기에, 그 과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방법은 없는지, 모두의 시간과 비용이 적절히 쓰이고 있는지 그런 관점에서 '괜찮음'이 궁금했다.


현장이 돌아가는 걸 보며, 여럿이 함께 일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체득되고 자리 잡은 좋은 팁이 IT현장에서 권장하는 일하는 방식(매일 아침 작업범위 싱크업)과 유사함을 발견하거나 오래 함께 일하는 데 필요한 태도를 배우기도 한다. 거꾸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시도와 도구가 건설현장에도 접목되면 효율성이 높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진척관리, 리뷰/회고, 백로그 관리 등). 이런 생각에 커피를 마시다 말고 갑작스러운 애자일 방법론 얘기까지 흘러갔다. (이건 좀 멀리 갔군;)


여하튼, 그리 심각하지 않게 털어놓은 얘기임에도 출근 전 이른 아침에 현장을 찾아와 서로의 생각을 맞추는 시간을 만들어준 조소장님에게서 전체 프로젝트의 지휘자로서의 자세를 또 배웠다. 신뢰와 경청, 그리고 실행.



퇴근길 벽돌타일 색에 가깝게 따뜻해진 큐블럭 난간 발견하고 나니 좀 안심이 된다. 사소해 보이는 작업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작은 산을 잘 넘었다. '완료'의 기준이 '완벽'일 수는 없다. 중요하고 지켜야 할 선이 어디까지인지 스스로 기준을 잘 마련할 필요가 있다.


146일 차 2024년 5월 28일 화, 14도/26도

1. 방통라인 목공작업
2. 유리블럭 시공 부분 벽돌타일 부착
3. 2층 물 끊기 선 실리콘 처리

명일 : 시스템비계 철거 / 단열재 깔기 / 메쉬망 깔기

2층 외벽 물끊기 선을 따라 실리콘 처리 / 외벽 오염 부위 수정 시공
유리블럭 시공할 창호 주변 벽돌타일 부착

가설재가 철거가 연기되어 높은 곳에서 해야 할 작업들의 마무리는 수월해졌겠다. 현장에서는 먼지가 덜 날리도록 미리 청소도 해두셨다고 한다. 이번 주 가장 큰 이벤트가 건물을 감싸고 있는 시스템 비계 철거와 방통작업이라 작업 내용도 간단하고 별다른 작업이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바쁜 일정이라 현장을 볼 새도 없이 시간이 더디게 지나고 있다.


147일 차 2024년 5월 29일 수, 15도/27도

1. 메쉬망 깔기 / 단열재 깔기
2. 단열재 누름용 폼시공 / 단열재 화스너 고정
3. 금속 선홈통 설치 / 금속도장 / 1층 지하 세이프 도어 문틀 설치
6. 시스템 비계 철거 / 반출
7. 정화조 인입 부분 안전난간설치

명일 : 보일러 엑셀 깔기 / 차양막 깔기 / 외부청소 및 쓰레기 반출

7시,
드디어 베일을 걷기 시작
한층 한층 가림막이 걷히는 모습, 여기까지 직관 후 출근
방통 준비 : 라인 시공 >  단열재 깔기 > 균열방지 철망 깔기
세이프도어 문틀 설치 / 선홈통 설치 및 도장(우)
퇴근길,
처음 마주하는 '나날이 좋은집'
시스템 비계 철거 및 반출 전, 후
퇴근길 첫 만남, '반가워, 나날이 좋을 나의 집'

일찍 일어나게 만든 '나날이 좋은 집'의 등장.

공사를 시작한 지 212일 만에 드디어 장막을 걷고 3D 렌더링 이미지가 현실이 되었다.

첫 소풍처럼 들뜬 기분, 애완동물을 처음 맞이했을 때처럼 설레고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비계 철거까지는 한 시간이면 다 될 거 같다고 하는데, 일정이 있어 가림막 제거까지만 지켜보았다.


퇴근 후 노을이 비치기 시작하는 새 건물을 공원에 앉아 오래 지켜보았다.

어떤 생각이나 감상도 없이 그냥 바라보았다. 무념무상 너무 아무 생각이 없는 거 아닌가 싶어, 스스로에게 묻는다. '소감이 어때?' 동시에 오래된 영화 '까미유 끌로델(1988)'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한 지 모르겠지만) 끌로델이 대리석을 깎아 조각한 '발'을 보며 어린 소녀가 묻는. "이(대리석) 안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마치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처럼 등장한 풍경이자, 한편으로는 여기에 이런 집이 들어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겠지 싶은 생각.


오늘 한적한 골목길에는 종일 소란한 감탄과 이야기들이 흘러다닌 모양이다. 공원에 앉아 있으니 이웃분이 오셔서 축하의 인사를 전해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마감과 내부 공사가 남았지만, 여기까지 별일 없이 온 게 감사하고 이렇게 멋진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 기쁘다.

어느새 어두워진 공원 벤치에서 또 한참을 본다. 좋네.

깜박하고 '현황측량' 신청을 오늘에서야 했다. 6월 10일로 예상일정이 잡혀 혹시라도 취소 건이 생기면 연락해 달라 LX 용산마포지사를 통해 요청해 두었다.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신청을 하면 LX고객센터로부터 연락이 오고 측량요금을 결제한 후 해당 지역 지사에서 일정이 잡고 연락해 주는 방식이다.)


148일 차 2024년 5월 30일 목, 16도/25도

1. 난방배관 엑셀 깔기
2. 차양막 깔기
3. 외부 청소 쓰레기반출
4. 배수판 깔기
5. 대문 문틀 설치
6. 정화조 기초 되메우기
7. 안전 난간대 설치

명일 : 무근몰탈 타설 / 토요일 - 방통 몰탈 양생

미닫이문 손잡이 (나날 조소장님 디자인)
난방 배관 엑셀깔기
바닥 차양막 깔기
건물 외부 청소 및 쓰레기 반출
지하, 1층, 옥상 배수판 설치
대문틀 설치 / 정화조 기초 되메우기 / 안전 난간대 설치

가설재를 철거하고 나서 예정되었거나 대기 중인 작업준비가 빠르게 돌아간다. 외부는 수도, 하수시설 등 마무리에 필요한 정리와 청소 작업이, 내부는 바닥 마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공정에 따라 템포가 느렸다가, 빨랐다가 리듬이 느껴진다.


149일 차 2024년 5월 31일 금, 17도/25도

1. 난방 분배기 설치
2. 방통 몰탈 타설
작업 준비 및 몰탈 / 면 고르기 (3번에 걸친 타설 및 면 고르기)
바닥 통미장 타설
방은 물론 보일러실, 다용도실 옥탑까지 모든 바닥 타설

명일 : 방통몰탈 양생

차주계획

월 : 주변 마감라인 정리. 마감선 레벨 확인, 내장 자재반입
화-목 : 벽체 떠붙임 석고보드 시공
금-토 : 천정내장 마감 시공

요즘 날씨가 참 좋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보는 게 이렇게 특별한 일상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일상에서 소중한 것들은 이렇게 결핍이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게 늘 아쉬운데,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귀한 것인지 알아채려 좀 더 애쓸 뿐이지.


운동 시간이 임박해져서 차를 가지고 동네를 급히 이동하던 중, 갑자기 도로에 나타나(내 입장에서는 뛰어든) 전력을 다해 길을 가로지르는 고양이를 보았다. 놀람은 잠시, 온 힘을 다해 작은 몸을 접었다, 폈다 반복하며 순식간에 도로를 건너는 모습이 눈에 박힌다. 잠깐 정지된 것 같은 이미지 위로 처음 보는 사이즈의 적재 칸으로 트럭과 금요일 퇴근길을 오가는 사람들까지, 복잡한 풍경이 하나로 얽히면서 갑자기 뭉클해진다.

살아남는 것, 죽지 않는 것,
그보다 절박하고 중요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순간순간이 새롭고 감사한 요즘이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의 편안한 일상도 함께 기원해 본다. 우리의 작고 소중한 이웃들을 잘 보살핍시다.

이소장님 퇴근길의 무지개 / 반대편 나의 퇴근길, 유난히 예쁜 노을

방통 후 면 고르는 작업을 세 번 정도 시간을 두고 한다고 이소장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현장 작업은 늦게까지 진행되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가 되어서야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2-3일 정도 양생이 필요하므로 월요일까지 현장은 출입금지.


2024년 6월 1일 토, 18도/25도, 양생휴무

올림픽공원 나들이. 재즈공연을 보러 갔지만 멋진 락공연이 기억에 남은 하루. feat. 잔나비


2024년 6월 2일 일, 16도/26도

1. 욕실 도기 선정을 위한 쇼룸 방문  w/조소장님
2. 콘센트 및 조명 확정
아메리칸 스탠다드 바스하우스 (삼성동) / 컴팩트 매력인 STANLY
욕실 상판 선정을 위해 찾은 LX 지인 쇼룸

지난해 이맘때, 조소장님과 함께 방문했던 아메리칸 스탠다드 쇼룸을 다시 찾았다. 그날도 날씨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은 청명한 하늘과 녹음이 더 빛나는 날이다.


매장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오늘은 변기 제품만 집중해서 확인하고 모델을 정했다. 공간이 좁은 3층에 넣을 작은 모델로 스탠리(STANLY)를 정하고 물때가 잘 끼지 않게 코팅 처리가 되어 관리가 좋다는 AQUA 세라믹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모델로 결정했다 (AQUA는 세라믹 코팅처리라 비용을 추가하면 어떤 모델이든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 기술이고 국내에 들여와서 평택공장에서 처리한다는 설명)


관리가 쉽게 비데 일체형 모델을 골랐는데 한켠에 진열된 익숙한 디자인의 원피스형 변기가 너무 예뻐서 한참을 만지작 거렸다. 비데 없이 들일까도 고민했지만 완성도가 높아선지 비데일체형과 큰 가격차가 있지는 않아서 구경으로 만족.


근처에 있는 LX 지인 매장에서 욕실 디자인과 상판용 인조대리석을 고른 다음, 근처 카페에서 콘센트와 조명 등 오늘 결정해야 할 것들을 정했다. 차주에 주문할 수 있도록 콘센트를 마지막으로 확정하고, 매립등도 공간에 따라 확산형과 COP(집중형)을 지정했다. 기본적으로 기능적인 공간은 확산형에 색온도(Kelvin, K)가 약간 높은 쪽(4000K)으로, 아늑한 분위기가 필요한 공간은 COP에 3000K 정도의 낮은 색온도로 정했다. (촛불이 2000K, 자연광은 6000K) 그러고 나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조명들을 배치해 보니, 아뿔싸! 조명을 설치할 곳보다 가지고 있는 조명이 더 많다;;; 게다가 매립조명을 하면서 여러 개를 한 번에 제어하다 보니 단독 조명을 제어할 스위치가 그리 많지 않아 앞으로 조명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 보여 어떻게 배치할 지 고민이 필요하다.


욕실 상판은 이케아 제작에 한계가 있어 외부 업체를 추가로 알아보기로 했고, 거울장을 아직 정하지 않았고, 오늘은 조명 숙제까지 추가되었다. 마감이 될수록 건축주가 할 일이 많아진다. 게다가 자재도 공급해야 해서 미리 챙겼음에도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




부록. 행복을 기르는 새


친구가 새로운 그림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퇴근 후 주문한 책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한 장면에 오래 멈췄다. 이런 집이면 좋겠다. 나의 공간이.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아" 하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행복을 기르는 새 / 지은이 야나, 2027-05-27
"니가 좋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는 힘이 나네" 바로 답이 온다.
"이렇게 계속하는 걸 보면 나도 힘이 나는 걸" 마음을 전해본다.

긴 시간 우리는 비슷한 방향을 향해 간다 생각했지만, 어느새 미간을 좁혀야 할 정도로 저 멀리에 서 있는 서로를 본다. 그래도 안다. 모두 각자의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그래서 뒤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조금 두리번거리다 그 녀석이 시야에 잡힐 때면, 안심이 된다.


집이라는 매개로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는 나처럼, 그림책 작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해나갈 거라 믿는 친구의 소식이 때마침 반갑다. 게다가 내가 보내고 싶은 일상과 닮은 그림은 고마운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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