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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Apr 04. 2021

2021년 4월 4일 일요일

뭔가 시작하기에 애매한 날

새벽 6시 21분, 여기는 뉴질랜드. 


오늘부터 한국과의 시차는 3시간으로 줄었고, 절기로는 한로(寒露), 가을이다.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였는데, 생각해보니 마음 깊은 곳에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00도 하고, 00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5시 9분, 부활절 연휴라 가족, 이웃들과 함께 보내기로 한 스케쥴들이 하루 종일 가득하다. 그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1) 내일 런칭해야하는 프로젝트 2) 다음주 크라이스처치에서 진행하는 행사 3) 1분기 파이낸스 등 중요한 일들도 머릿속에 '팝'하고 떠오른다. 


새벽향기가 살짝 풍기는 컴컴한 아침에 이불을 박차고 화장실에 들렸다. 다시 나오는 길에 '아,침대로 다시가서 누울까?' 하는 마음을 빠르게 돌려, 옷장에서 어제 입었던 바지와 양말을 그대로 입고는 부엌으로 내려왔다. 

어제 소다수에 넣어 마시려고 따놓은 레몬밤허브에 따뜻한 물을 부어 차주전자를 채운다. '차는 쪼매난 컵에 부어마셔야 제맛이지!' 작은 찻잔도 함께 꺼내다가 오피스룸으로 가져왔다.


다시 새벽 6시 21분, 시골에 살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자연의 흐름들을 배울 수 있다. 그중에 하나가 '새들은 잠을 자나? 언제 일어나나?' 하는 것인데, 여기서 새들은 언제나 어김없이 동이 틀때 모두 깨어나는 듯하다. 동이 트고 해가 집에 드리우면 집 주변에 숲과 새도 함께 깨어난다. '아, 조용한 아침은 틀렸군.' 이라고 생각될 만큼 새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지금도 새들이 한꺼번에 깨어나 지저귀다가 잠잠해졌다를 반복한다. (집 베란다에서 녹음한 새소리 ASMR)


나는 뉴질랜드 시골에 살고 있다. 행정지역으로는 Upperhutt 이라고 하는 수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위성도시 같은 곳인데, 우리집은 거기서 다시 10분 더. 고개를 넘어 작고 아름다운 동산들을 지나 아주 오래전에 지어졌다는 동네 중심인 교회에서 3.51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우리집 주소는 351 인데, 이 시골길의 모든 집들은 교회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집주소를 배정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내 짝꿍 Yoseph Ayele, 마오리 창업가 Shay Wright 와 연구원인 Te Taiawatea, 마오리 뮤지션 Matiu Te huki 이렇게 다섯이 한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침실이 여섯개나 되는 커다란 이 집은 '바위처럼 단단한 집'이라 하여 'Te Whare Toka (Rock House)'라고 이름지었다. 


이 동네에는 우리 집뿐만 아니라 Red door, Evolution, Nest, Garden house, Woodcote, Farm house 등 기능과 개성이 있는 집과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는데, 모두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Mangaroa 강 주변에 자리 하고 있다. 여기서 자연과 사람 사이 'Good habit  Good habitat' 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는, 스스로를 Mangaroa Collective 라고 부르며, 느슨하고도 끈끈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집 앞 동산에서 바라보는 동네 전경


2019년에는 뉴질랜드에서 3개월을 보냈고, 작년에는 일년 내내 뉴질랜드에서 보냈고, 올해는 평생 뉴질랜드에서 자리잡고 살기로 결심했다. 스무살 이후로 한곳에서 6개월 이상 보내본 적이 없는 '단거리 주자'로 지난 15년을 살다, 하늘길이 막혀 이제는 '장거리 주자'로 살아가게 된 나는 un-learning 과 re-learning 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정착하지 않아서 하지 못했던 '수영장 회원권' '도서관 카드만들기' '동네친구 만들기' 같은 누구에게는 아주 평범한 일상도 평생 여행만 하며 살던 사람에게는 다시 배워야하는 것들이다.


4월 4일 일요일, 뉴질랜드에서는 긴 연휴의 후반부, 한국에서는 월요일을 준비하는 날인 오늘. 뭔가 불행을 가져올 것 같은 숫자 4가 두번이나 들어간 날, 하지만 괴짜인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는 숫자로 늘 뽑던 4 이기도 한 애매한 숫자. 한국과 뉴질랜드를 두고 일과 삶을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애매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오늘부터 매일 조금씩 글을 써서 퍼블리싱해보기로 한다. 나의 애매함을 뚜렷함으로 바꿔가는 작업으로의 글쓰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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