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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ker Apr 17. 2019

세키로

세계 3대 칼싸움 게임은 귀무자2와 세가 시노비와 세키로이다

전투를 둘러싼 장치들

세키로의 전투는 어려워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설명드렸듯 사실 별로 어렵지 않아요. 이 게임의 전투가 가진 난이도는, '사실 크게 어려운건 아닌데 대단히 어려운 척 함으로써, 이를 파훼해냈을 때 유저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한 기믹'에 가깝습니다. 원래 플레이어가 게임과 맺는 관계라는게 좀 그렇잖아요. 실존하지 않는 어려움을 부여하고 이걸 넘어서도록 안보이게 도와줌으로써 해냈을 때 '크으 내가 이걸 해내다니?!'하는 만족감을 주는 것. 세키로가 딱 그런 게임이죠. 물론 세키로만의 감각에 적응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좀 필요하다는걸 부인하진 않겠지만, 그건 아느냐 모르느냐에 가깝지 반사신경이 따라주느냐 아니냐의 문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얘기죠.


난이도의 얘기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나오는게 긴장감의 문제입니다. 난이도가 낮으면 긴장감이 떨어져요. 난이도가 높으면 긴장감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적절한 긴장감을 느낀 후 이완하기 위해서 게임을 하죠. 긴장감이 낮으면, 이완 시의 만족도도 떨어집니다. (숫자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파밍/성장 게임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궤를 가지고 있으니 여기서 다루는 대상은 아닙니다.) 낮은 난이도를 가졌으면서도 긴장감은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는 실수할 경우 패널티를 확실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지는 않게 주는 법을 선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퍼머데스 라는 글에 적당히 적어놓았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키로는 제가 선호하는 그런 방법론에 꽤 맞아떨어지는 편이에요. 몹들의 패턴은 단순하고, 여기에 대응하는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잡몹에게라도 2~3대를 연속으로 맞으면 내 체력은 나락으로 갑니다. 최대 체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지금 제 캐릭터조차 그렇습니다. 2-3마리의 잡몹과 동시에 대결하는건 여전히 매우 기피되며, 보스에겐 한 순간의 실수로 원샷킬을 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비극이 너무 플레이어를 나락으로 떨구지 않도록 'die twice' 하는거지만요. 그럼에도 플레이어가 실패하면? 패널티를 줍니다. 경험치와 돈이 일정 부분 소멸하고,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 (실제로 세이브를 하는 포인트는 아닙니다만 느낌이 비슷하니 그렇게 부를게요) 로부터 지금 위치까지의 잡몹들도 모두 스폰됩니다. 그러나 경험치는 구간 별로 소멸에 상한선 있고, 돈은 모으는데 그렇게 큰 수고가 드는 편은 아닙니다. 앞서 소개드린 글에서 디비전의 다크존이 지닌 것과 유사한 스타일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세키로의 전투에 익숙해지는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과정은 꽤 즐겁고, 'Die Twice'라는 안전 장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단 익숙해지고나면 비교적 할만한 난이도를 갖게 되는데, 그렇더라도 긴장감은 확실히 유지됩니다. 한 턴이라도 실수해서 연타를 맞으면 곧장 위태로운 지경이 되거든요. 전체적으로 긴장감은 유지하되 안전장치는 가지고 있는 꽤 준수한 디자인이죠.


전투

전투를 둘러싼 장치들은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되어있고, 전투 자체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저는 종종 액션 게임이 리듬 액션 게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낍니다. 내려오는 노트를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노트를 입력하는 리듬 액션 게임은, 적의 패턴을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최적화된 대응을 입력하는 액션 게임과 같은 감각을 제공해요. 둘 사이의 차이라면, 리듬 액션 게임은 노트를 보여주지만 액션 게임은 노트의 의미를 직접 파악해야한다는거죠. 상대의 패턴에 히팅 포인트가 어디인지, 어떤 타이밍에 어떤 궤적을 거쳐 어디에 도착하는지,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넘긴 후 반격을 어떻게 할지 등등을 본인이 직접 알아내야합니다. 그 감각이 무척 즐거워요. 특히나 어느정도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라면, 패턴을 확인하고 거기에 대응한 후 반격을 날리기까지의 과정을 점차 최적화해나가는게 즐겁습니다. 횡베기인 줄 알았는데 하단 베기였고, 그걸 패링하기보다는 간파한 후, 점프 직후 발차기로 체간을 쌓기보다 일문자 이연으로 반격하는게 상대에게 쌓이는 체간은 비슷하지만 내게 쌓인 체간이 해소되어서 더 좋다는걸 파악해나가는 과정. 그건 마치 mmorpg에서 처음 접하는 레이드 보스몹을, 공략도 몰라서 직접 만들어가야하는 기분과 비슷합니다. 세키로의 몹들이 사용하는 패턴은 그렇게 많지 않고, 분기하는 경우도 비교적 드뭅니다. 패턴을 파악하는 과정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의미죠. 아울러 타이밍에 관련된 이슈도, 터무니없이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순수하게 타이밍만 보면 소위 '발도맨'이라 불리우는 사무라이가 예리한 반응을 요구하지만, 대신 이 적은 사용하는 패턴이 매우 단순해서 오히려 대응이 더 쉽습니다. 반격기로 대부분의 경우 일문자 이연이 너무 유용하다는건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크리티컬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편, 세키로의 전투는 액션 게임류 치고는 비교적 자유로운 전략의 선택폭을 갖습니다. 체간을 쌓아서 적을 잡을 것인지 체력을 줄여서 적을 잡을 것인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체간을 모두 쌓거나 체력을 모두 고갈시키면 내가 승리하는거죠. 어떤 방향으로 공략할지는 내 취향 나름입니다. 초근거리에서 서로 칼을 맞대고 (정말로 맞닿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챙챙거리는걸 좋아한다면 패링 위주의 인파이팅을, 회피가 편하다면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아웃복서 스타일로 빙빙 돌며 기회를 노리다가 틈이 보일 때마다 파고들어 한 두 대씩 때리고 다시 밖으로 빠지는 식이죠. 적은 나와의 거리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른 패턴을 사용합니다. 반대로 플레이어 쪽에서는 자기가 상대하기 편하다고 느끼는 패턴을 골라서 대응할 수 있는 셈이에요. 물론 몇몇 보스몹의 경우 매우 뚜렷하게 '이렇게 잡으세요'라는 식으로 스타일의 고정을 강요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다양한 스타일의 전투가 존재함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볼 수도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전투에 '전략적 선택'이라는 양상을 만들어줍니다. 전투라는건, 특히 액션 게임에서의 전투란 매우 코어한 플레이 요소, 즉 아주 직접적인 조작을 요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전략이 끼어들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그런게 있을 수는 있죠. 그러나 보통은 단일한 전략적 행동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근데 사실 그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전략이 언제나 같다면 개별적인 적의 행동에 대해 내가 취해야 할 행동도 어느정도는 정해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세키로는 여기에 여지를 두고 있습니다. 그게 두드러지는 부분이 '체력이 줄어들면 체간의 회복 속도도 줄어드는' 장치입니다. 체력을 먼저 둘이든 체간을 먼저 줄이든 전투의 중후반에 들어서면 둘 다 노려봄직한 요소가 됩니다. 처음에는 체력이든 체간이든 노리고 덤벼야하지만, 중후반이 되어서는 둘 중 어떤걸 노려서 공략할지의 선택폭이 더 커지는 셈이죠. 뭐 반대로 말하자면 뭘 해도 상관없지 않냐가 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모든 전략에 수반되는 모든 행동을 다 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다른 액션 게임들이 클리어를 위해 단일한 길만을 두고 있고 그 길에 놓인 장애물 하나하나를 뛰어넘지 못하면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고 할 때, 세키로는 몇 가지 우회로를 준비해줍니다. 그리고 자기가 갈 수 있는 길을 택해서 가도록 해주죠. 꽤 친절한 게임입니다.


의구심이 좀 남는 부분이라면 칼을 제외한 다른 다양한 아이템들입니다. 적의 눈을 가리는 잿덩어리, 화공을 증폭해주는 기름, 그 외 다양한 소모성 아이템 또는 버프 아이템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들의 쓸모가 저는 약간 애매하더군요. 쓰자니 아이템을 쓰기 위한 기회를 잡는 것도 기회비용을 요구합니다. 안쓰더라도 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는 부분이구요. 좋게 보자면 칼 이외의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고, 나쁘게 보자면 필수적이진 않아서 포지션이 좀 어정쩡하다는 느낌이네요.


잠입 시스템과 인살

원래 세키로는 천주의 후속작으로 개발되다가 중간에 한 번 방향이 크게 바뀌어 지금의 게임이 되었다고 합니다. 천주는 그닥 유명한 게임은 아닙니다만 제가 꽤 좋아했던 닌자 잠입 액션 게임이고, 그 바탕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은 탓인지 세키로에서는 인살이라는 암살 시스템이 있습니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기습하면 모든 잡몹이 무조건 한방, 중간 보스의 경우 전체 전투 구간의 1/2 또는 1/3을 그대로 스킵하게 해줍니다. '눈치채지 못하게'라는건 당연히 잠입 시스템을 수반하고 있고요.


세키로의 잠입 시스템은 아쉬운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잠입 게임에서 잠입은 게임의 문법과 맥락 하에서 다루어집니다. 실제로 경계 중인 인간의 감각과 조직 체계를 속이는건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그걸 리얼하게 만들면 너무 어려워서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적의 침입을 전혀 모르던 본진에서 아군 경계병의 시체가 발견된다면? 하다못해 경계병이 있던 자리에 병사는 사라지고 혈흔이 남았다면? 당연히 본진 전체에 비상을 걸고 모든 대원들을 경계 대기시켜야 마땅합니다. 실제로는 그러면 이후의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지죠. 그렇기에 게임에서의 잠입은 적당한 관용, 게임적 허용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 관용과 허용에도 불구하고 잠입이 재밌으려면, 꼼꼼한 일관성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천주를 좋아했던건 그런 부분들이 꽤 컸어요. 사실 적의 눈에 내 캐릭터가 들어오지 않을 리 없는데, 밤에 어두운 그늘에서 내가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못본걸로 인정해준다거나. 마루 밑에서는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거기에 수반되는 소리를 못들은걸로 해준다거나 말이죠. 이런 일관성이 지켜질 때 잠입의 대상이 되는 공간은 유저들에게 명확한 논리적 구조를 전달하게 되고, 그 논리적 구조 속에서 플레이어는 자기가 침투할 동선을 짜고, 실행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거죠. 그 일관성이 최대한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좋겠지만 (스플린터 셀은 그런 부분에서 아주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이진 않더라도 일관적이지만 하면 재미는 있습니다.


세키로의 잠입은 아쉽게도 그런 일관성이 다소 부족해보입니다. 분명 보일 것 같은 각도와 거리인데 안보이는 척 해주거나, 반대로 확실히 안보일만한 거리인데도 노련하게 내 모습을 파악하고 노란 삼각형 (메탈기어 시리즈의 노란 느낌표에 해당합니다) 을 띄워요. 이러면 플레이어는 공간을 기반으로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캐릭터의 모습을 고의적으로 잠시 노출하고, 적의 반응을 살피고, 그 반응을 통해 보이는지 안보이는지를 확인하는, trial and error의 과정을 반복해야만하죠. 물론 일관성이 아예 없는게 아니라 당연히 기본기는 있지만, 그럼에도 '온전한 잠입 게임'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대신 잠입은 다른 관점에서 꽤 기여합니다. '공간의 파악'이라는 측면인데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관성의 부족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 계획을 세우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공간에서 모든 적을 상대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하기에, 이 코너에서 적이 나를 보는지 안보는지, 저 처마에 매달렸을 때 나를 알아차리는지 아닌지를 반복해서 확인해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은 공간 자체를 아주 자세히 관찰하고 경험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적의 위치와 순찰 동선을 파악해야하는건 물론이고요. 여기에 효과를 더하는게 어지간한 잡몹과 만나더라도 일대다의 전투는 부담스럽다는 점입니다. 혼자 돌아다니는 몹은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인살하고, 둘이 함께 다니는 경우 하나는 인살로 깔끔하게 처리한 후 일대일로 정면대결하는게 편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살이 가능한, 즉 상대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접근하기 위한 동선을 확실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간을 더욱 자세히 살피고 익히게 되고요.


저는 사실 상당한 길치라서, 길이 비비 꼬인 걸 매우 힘들어합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평면 위주의 공간 & 지도가 없으면 엄청 헤매고 아주 짜증스럽게 느껴요. 세키로는 꽤 입체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여러 숏컷들과 맞물려 꽤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지도는 아예 없죠. 그럼에도 제가 별 무리없이 이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인살과 맞물려서 공간 전체를 샅샅이 뒤져야만 리스크를 제어하고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컸습니다. 일대다가 부담스러우므로 잠입 & 인살을 시도하게 되고, 그걸 위해서 전체 공간을 자세하게 살피고 여기저기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숙지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정리

전체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되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드는 기본 매커니즘. 여기에 공략의 재미를 만끽하되 너무 길거나 어렵지 않은 해법들을 준비하고 있는 전투 시스템 자체. 맵의 구성은 좀 짜증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걸 충분히 숙지하도록 돕는 잠입 & 인살 시스템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원래 칼싸움 게임을 엄청 좋아해서 이것저것 많이 건드려보는편인데,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칼싸움 게임은 귀무자2와 세가의 시노비였습니다. 이번에 세키로를 하면서 셋을 묶어서 3대 칼싸움 게임으로 하기로 했어요. 세키로를 플레이하는건 매우 만족스럽고 충만한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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