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의 나를 매만지다

늘 어딘가에 존재하던 아쉬움을 떨쳐내다

by 푸른끝

아쉬움은 늘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고, 마치 그을린 것처럼 가슴 한편에 고이 남아 있다. 산다는 건 그 아쉬움을 평생 안고 지내는 것과도 같다. 하여 그 무엇이 축적되어 버리거나,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부단히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런데도 늘 줄지 않는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때 많이도 좋아하던 당신에게 내가 다르게 행동하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자꾸 되뇌는 것들, 당시에 다른 결정을 내렸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각각의 유기적인 모양을 취한 채, 어떠한 감각으로 이따금씩 예민하게 다가오고는 한다. 항상 안고 있어도, 낯섦이 담겨 있다. 늘 안고 살아야만 하는 자아가 잊어보려 한 나머지 만들어낸, 또 다른 산출물인 셈이다. 그리하여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을 들추어내는 일은, 안고 있어야 함과 낯섦 사이, 그 어딘가의 교착 상태를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둘의 상관관계를 잘도 아는 만큼, 덜어낼 수도 있단 것도 모를 리 없다. 다만 그걸 오롯이 받아들이고, 없던 일로 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건지 조금 늦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어제 읽은 <자기미움>의 구절이 떠올랐다. 자책감과 죄책감은 이미 존재한 과거와 현실을 허락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작가는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락하지 못하니 자기부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자책감과 죄책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기부정에 대한 유일하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대응은 '전적인 수용'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서 수용은 포기하거나 절망하거나 무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으로, 이미 존재한 과거와 현실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받아들이고, 그 존재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지난 시간의 나를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의 나는 숨 쉬며 살았고, 늘 글 쓰려하였으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진심을 담아 결정을 내렸다. 그랬던 과거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허락하지 못하는 자기부정이 아닌, 과거의 나를 아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기긍정을 해야 머릿속 아쉬움을 고이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늘 숨 쉬며, 글 쓸 것이고,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으며, 내일을 살게 될 나를 아끼는 마음을 들이자. 먼 훗날, 시간이 흘러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았을 때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지난 시간의 나를 매만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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