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끝 Nov 06. 2022

살아낸다, 살아간다, 그리고, 산다

 계절 동안 바삐 준비해 왔던 행사를 무사히 치렀다.  해내야만 하는 자리인 만큼 적잖은 부담감을 짊어져야만 했다. 오죽하면,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는 걸까에 대한 의문을 떨쳐내지 못한   계을 보냈다. 일주일 가운데 다섯 번의 하루를 보내는 동안 지속해서 쌓인 의문 덩어리가 커다란 돌의 무게로 치환되었고,  무게가 몹시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었다. 빠져나오고 싶었다. 가볍게 여겨지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 있어선  되는 일이 벌어졌고, 마주하게 되었다.  모습을 접하면서도 아무 손도   없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목도했다.


여느 때처럼 안타까운 희생을 수단과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더럽고 지저분한 인간군상의 민낯도 보게 됐다. 그들이 견뎌야 했던 무거움에 비하면, 내가 마주하고 느꼈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했던 볼멘소리는 사치이며, 욕심이고, 떼를 쓰는 일에 불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청춘이 갑자기 짊어져야만 했던 무게의 아픔을 이해하고 슬퍼하며, 내게 주어진 하루와 삶을 부단히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마주하는 하루를 좀 더 소중히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선 훌쩍 제주로 떠났다. 특별한 이유나 배경은 없었고,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태어난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햇살 속에서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소중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큰 위로와 위안, 그리고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 온기를 가득 받는 시간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누군가에게 이 같은 따듯함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관계에서 상호작용 없이 혼자만 위로와 위안을 받는 것 같아서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늘 되뇌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게 슬펐다. 나는 언제쯤이면 누군가에게 따듯한 기운을 전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본질적으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다. 살아간다. 그리고, 오늘도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