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이 계절 속에선 삶과 사람, 사랑이 가득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주고받은 말글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 속은 그렇게 빼곡하게 채워졌지만, 이 같은 억겁의 흔적을 끄집어내어 승화시킨 뒤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을 때, 대응 논리를 갖추어 자신 있게 반박할 자신이 없다. 내가 시틋한 데다, 부족한 것은 물론, 절박함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씀으로써 살아감을 절감한다. 여태껏 그래왔다. 그런데 최근엔 무얼 쓰려고 할 때마다 '구태여'란 부사가 툭하고 나타난다. 글 쓰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들에서, 이유와 명분을 찾으려 하는 강박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서다. 벗겨내야 하는 걸 안다. 그래야만 쓸 수 있다. 글엔 늘 무게감이 동반되지만, 내가 쓰는 것들에 대한 배경까지 일일이 무게를 달아야 할 이유는 없다. 스스로를 옥죄었다. 가두었다. 매몰됐다. 이런 것들을 깨뜨려야 한다. 그래야만 바지런히 쓰는 것이 즐거워지고, 나를 숨 쉬게 만드는 존재라는 걸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난 그럴 수 있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쓴다. 그리고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