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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Dec 13. 202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의 사연

조금 더 아름다워도 될 것 같아, 이 여행도 나의 일상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 는 어디에 있을까? 화려한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뉴욕, 샹젤리제의 낭만이 펼쳐지는 파리, 고풍스러운 정취를 풍겨오는 런던의 거리나 아름다운 해변의 끝자락 어디쯤 있을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곳은 의외로 포르투다. 한번쯤 들어봤을법 하지만 특별히 무엇으로 유명하지 않은 마을은 분위기를 떠올려 보는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곰씹을수록 오묘해진다. 그곳에서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게다가 생각해보면 꽤 낯선 조화가 아니던가.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적인 표현과 맥도날드라는 일상적인 장소의 어우러짐은. 


무엇으로 유명하지 않은 마을에 유명한 맥도날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그다운 모습으로.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서 지도를 펼치며 어디로 떠날까, 떠날 장소를 찾아왔던 것에 익숙해 왔던 터라면 포르투에서는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포르투에서 떠나야 할 곳은 장소가 아닌 거리로, 그 거리가 연결하는, 곧 마을 전체가 되기 때문이다. 



2천여 년 동안 도시가 변해오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올드타운은 포르투 역사 지구(The historic centre of Porto)로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흘러가며 수천 년의 역사를 삶으로 기록하고 있는 마을은 포르투로 불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푸른색 유화 물감이 군데군데 번지며 그려진 풍경은 포르투의 뜨거운 햇빛에 바래고 강변의 바람에 쓸려왔다. 어제의 시간을 오늘의 색깔로 덮어온 풍경은 고유한 정취를 풍겨낸다. 오래된 그림에서 현실로 걸어 나오면 더욱 생생하다. 강가에 담가졌다 나온 듯 청명한 초록빛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완만한 다리 위를 부드럽게 지나는 트램, 불어오는 바람결대로 나부끼는 빨래는 서로의 풍경이고 하나의 장면이 된다. 



이러한 포르투에서 어느 곳을 가야 할까. 만약 포르투에서 꼭 가야 할 장소를 찾는다면, 아마도 걸음이 느려지는 구간이다. 그렇게 멈춰서는 곳은 지도에 없고, 기억에만 남을 명소를 만난다.



걸음을 멈추는 이유가 다르면 머무는 모습도 달라진다. 흥얼거리는 노래나 기대앉는 계단과 거꾸로 펼쳐지는 풍경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포르투에 머무르며, 이따금 서로의 배경이 되어준다. 



언젠가 다시 온다고 해도 지금의 장소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날의 공기에 감돌 온기와 곁에 있을 사람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이 달라진다면, 머물게 될 곳도 달라질 테니까. 



그렇게 갈 곳은 없고 머물 곳은 전부가 되는, 

시대의 아름다움이 다른 시대의 배경이 되어가는, 

포르투에 그곳이 있다.



걷기 좋은 동네에서도 가장 자주 지나게 되는 곳이 리베르다지 광장(Praça da Liberdade)이다. 포르투의 중심지에 위치하며, 역사적 의미가 담긴 광장은 15세기 중반에 생겨났다. 유럽의 시민 혁명이 일어나는 1800년대 포르투에서는 헌법 제정에 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무려 3여 년간의 내전을 거친 끝에 비로소 포르투갈은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포르투 자유 광장 @Diego Delso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 중앙에는 헌법 책을 들고 있는 페드루 4세의 동상이 세워졌고 오늘날엔 '자유 광장'으로 불린다.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고유한 존재로 의미가 되는 자유를 상기하며 걷다 보면 광장의 건너편에 도착한다.



언뜻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보이는 곳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로 불리는 곳이다. 임페리얼 맥도날드. 그 이름처럼 우아한 상아색의 외관과 어울리는 테라스가 거리까지 드리워졌다. 간판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인데 맥도날드 특유의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이뤄진 간판과 다르게 임페리얼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청동 독수리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게다가 맥도날드 이름보다 더 크고 높게 걸려있어 웅장함마저 자아낸다. 


@alux.com


전통의 격조를 품은 레스토랑에 입장하는 기분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밝히는 공간의 전체 벽면이 전통 문양으로 장식이 되어있다. 정면으로 바라보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비춰내는 다채로운 조명은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라는 찬사를 기꺼이 수긍하게 한다.



맥도날드 임페리얼. 이곳은 본래 1930년대 카페 임페리얼 (Cafe Imperial)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카페 문화가 새롭게 떠오르던 시기에 생겨나 새로운 만남과 교류를 위한 공간의 상징이 되었다. 카페는 아르데코 양식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어우러진 공간의 곳곳 장식 미술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우아함이 감돈다. 눈에 띄지 않을 벽면과 계단의 뒤쪽까지 정성스럽게 장식이 새겨져 있어, 공간에 머무는 동안 환대를 받고 있다고 느껴진다.


카페는 당대 예술가들과 협업을 했는데,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특히나 공을 들인 부분으로 포르투갈 예술가 히까르도 레옹 (Ricardo Leone)의 작품이다. 커피콩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모습부터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커피로 이루어가는 문화를 담아냈다. 카페 벽면에 새겨진 조각은 엔리끄 모레이라 (Henrique Moreira)의 작품으로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형상한 것이다.



영감과 대화를 위한 공간이자 작품으로 존재하던 카페는 시간이 흐르며 외관처럼 기능 또한 쇠퇴해 갔다. 그러자 카페는 오늘날의 이야기를 새겨넣기로 한다. 그들은 다시 새로운 메시지를 썼다. ‘공간의 정체성을 지키며 활발한 만남을 회복하는 것.’ 그렇게 카페 임페리얼의 도전과 오늘날 가장 다양한 메시지를 교류하는 맥도날드의 만남은 '임페리얼 맥도날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다.


@alux.com

맥도날드라기에는 임페리얼이었다. 빛바랜 벽돌이 따스하게 온기를 품어내고 시대의 장면에 조명을 밝히는 곳은, 음식을 즐기며 사유하고 대화를 나누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 고유한 분위기는, 맥도날드가 아닌 임페리얼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햄버거를 파는 곳'이 아니라 '임페리얼이 파는 햄버거'가 되자 사람들 또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먹는 중이 아니라 이 공간과 시간에 머무는 여행자로.


nightsi.de @Willi


그렇게 주어가 달라지자 어울리는 것도 달라졌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여행지에서도 일상에서도. 나와 도통 어울리지 않는 것. 사실은 해보고 싶지만 새삼스럽거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떤 악기를 배우고 싶다거나 춤을 춰보고 싶다거나, 발레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떻게 한 사람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모든 일과 어우러질 수 있으며 그것은 모두의 고유한 매력이 될 것임을. 



잊어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점차 잊어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를 설명할 때 속한 장소와 하는 일로써 말하지는 않았던가. 나의 소속과 업무를 중심에 놓는다면, 그것들이 사라질 때 나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변해갈 때 나 또한 흔들릴 것이었다. 내가 중심이 된다면, 무엇을 하는지 달라져도 흔들림 없이, 그 목적어를 바꿔가면 될 일이다. 



햄버거를 파는 장소답지 않다거나 맥도날드치고는 너무도 화려하다는 시선에도 임페리얼은 담담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라는 찬사를 받으며, 커피와 수프 그리고 페이스트리를 곁들여내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카페의 역할을 온전히 해내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 내가 된다면 달라질까. 역할이 아니라 존재가 된다면, 고유한 꿈으로 일상에 조명을 켠다면, 세상도 밝힐 수 있을까. 조금씩 즐거운 기억이 생기게 될지 모른다. 햄버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공간을 즐기기 위해,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또는 머물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오늘날 카페의 모습이 다채롭게 빛나듯이.


카페에서 걸어 나와 다시 포르투로 들어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래봤자 맥도날드라는 평과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의견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아무튼 가볼 만한 곳'으로 절충되고 있다. 그래서다. 사실 이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까지 와서 맥도날드에 올 수 있어서다. 대개 여행지에서 맥도날드를 가면 '왜 거기까지 가서'라는 시선이 붙기 마련이다. 



더 좋은 곳이 많다거나, 특색이 있는 곳을 가야 한다거나, 거기에만 있는 곳을 가야 한다거나. 그래서 때로는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말을 애써 삼키기도 하지 않던가. 이 시선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서 나올 때 더 깊은 자책을 하게 되지 않던가. 남다른 여행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향해. 



내가 가고 싶은 여정에 맥도날드가 있어야 한다면 기꺼이 들려야 한다. 맥도날드가 아니라 맥도날드에 가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나의 이유를 알고 있다면. 그렇게 나의 여정을 걷는다면 비로소 남다른 여행이 될 테니까.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나의 별점으로 꽤 높은 여행의 후기를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멈춰서는 곳이 곧 머무르는 곳이 되는 포르투, 그곳에 오래된 카페가 있다. 공간의 정체성을 지키며 활발한 만남을 회복하기 위해 새롭게 단장을 하고서. 매장의 맥카페에서 주문한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 페이스트리 나타(Pastis de nata)는 샹들리에 아래에서 더욱 윤기가 흘러넘쳤다.



아름다움; 모양이나 색깔, 소리 따위가 마음에 들어 만족스럽고 좋은 느낌. 

아름다움이 무엇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면, 무엇과 닮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되는 것이라면, 포르투에 아름다운 맥도날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그다운 모습으로. 그곳에서 여행자는 이 도시에 온 이유를 새롭게 찾게 될지도 모른다. 


파란색 물감이 번져가는 포르투


오늘의 풍경은 고유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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