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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택시는 기본요금 거리를 싫어할까?

거리때문이 아니었다.

by 유앤나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택시 기사님들은 왜 짧은 거리를 가는 손님을 반기지 않을까.

요금은 거리와 시간에 따라 정해지고, 이동은 이동일 뿐인데,

왜 기본 요금 거리엔 늘 타는 사람이 약간의 미안함을 느껴야 할까.


그 궁금증은 이따금 생겼다가 이내 사라지곤 했는데

지난주 짧은 거리를 가는 택시 안에서 문득 생각나 여쭤봤다.


말을 꺼내자 기사님은 마치 누군가가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쉽게 답해주었다.


“돈 때문이 아니에요.

짧은 거리 손님을 태우고 나면, 그다음 손님을 금방 못 만날 수도 있거든요.

시간이 비는 게 문제예요. 우리가 파는 건 거리보다 ‘시간’이에요.”


그렇구나, 거리가 아니라 시간이었구나.

얼마나 멀리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라는 의미를 더 품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 ‘시간’이라는 단위는

손님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얼마나 비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짧은 거리 손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거리 이후의 시간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거리가 아니라
시간을 팔고, 시간을 사고,
시간을 주고받는 일.
그러니까... 꼭 택시가 아닐지라도.




그러면서 여의도에서 대기하면서 장거리 손님만 태우는 다른 택시 얘기나

시내에서 먼 거리를 가는 손님을 태우고 외진 곳으로 가면,

나올 때는 한참을 빈 차로 달려야 한다는 얘기도 들려주며 덧붙이셨다.


“근데 뭐, 왕도는 없어요.

그냥 부지런히 하는 게 최고예요.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택시 일이거든요.

그래도 부지런히 하면, 계속 손님이 타니까.”


맞아요- 하고 작게 호응하면서

아마 어떤 일들은 실은 꽤 많은 일들이

예측이 아니라 시도로 가야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움직이는 행동.

가능성을 믿어서가 아니라 ‘다시 시도하는 자신’을 믿는 마음으로.


도착하고 나서도 이런 저런 말씀을 더 하시더니, 기사님이 물어보셨다.

“근데 뭐 하시는 분이에요?”

습관처럼 “회사 다녀요”라고 했다가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글도 써요.”


그분은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글 쓰시는 분이었군요. 어쩐지 다르더라.

글쓰려면 다른 사람의 삶을 자꾸 들어야 하잖아요. 많이 들으세요. 많이 듣고 쓰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안에 아주 작은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버거운 책임이 아니라,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종류의 의무감.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흘러가 버릴 이야기에 잠시 머물러주는 사람.

그 말을 잊지 않겠다며 기억의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그리고 우리는 ‘들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듣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회는

결국 말의 무게도, 존재의 가치도 희미해지는 사회가 될테니까.


글을 쓴다는 건

‘내가 한 말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들은 말을 남겨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남지 않을 수도 있는 목소리를

잠시라도 내 안에 보관하고, 이어주는 일.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나는 계속 글을 꾹 눌러 써 내려가고 싶다.




20201023_221200.jpg 어떤 일은 결과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그 일을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이 불확실하기에 어려운 것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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