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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GIPUB May 22. 2018

[조울증 이야기 #2]

2. 발병

 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조울증을 앓았고 지금 38세이다. 두 딸과 막내아들의 아빠이고 지금도 조울증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지 않는 이상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호전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밝히기 어렵고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병 조울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 속에서 고생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조울증을 앓는 친구들과 그의 가족들이 위로받았음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이가 좀 많으시고 굉장히 무서운 여자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학기 초엔 같은 학년 중에 우리 반 학생들이 기가 죽어 있었다. 난 중학교에 들어와서 내가 공부에 뒤쳐져 있다고 느꼈고 공부에 열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니 성적도 중상위 권으로 들게 되었고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워낙 무서우시다 보니 반 아이들끼리 더 끈끈하게 뭉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엔 반에서 한 두 명 정도 친하게 지냈지만 중 1 때엔 5~6명 정도 항상 같이 뭉쳐 다니는 그룹이 생겨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1학년 2학기가 되어 난 조금씩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되었고 내 성격도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외향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내가 조금 장난을 치면 반 분위기가 좋아지기도 했다. 과학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에서 제일 변화가 많았던 학생으로 나를 꼽으셨는데 그 말을 듣고 왠지 눈물이 났다. ‘그래, 이게 내 본모습이야. 이제야 내 본모습을 찾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말이 될 때쯤 난 말 수도 많고 친구들에게 장난도 잘 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얻어 그때의 내 모습이 너무 좋았다.


 이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내 모습이 바뀌었다. 말 수가 적어지고 친구들 사이에 잘 끼지도 못하고 다시 초등학생 때 내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바로 앞집에 살던 친구가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나를 놀리기도 했다. 난 그 친구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가 나를 놀리니 이해가지가 않았다. 아마 반에서 내가 조용하고 다른 친구들과도 못 어울리고 하니 놀려도 괜찮은 애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그 친구와 서먹하게 지낼 즈음 하교 길에 그 친구가 뜬금없이 자기 집 마당에 농구 골대가 생겼다면서 놀러 오라고 했다. 난 속으로 얘가 갑자기 내게 왜 이러지? 생각했지만 대충 알겠다고 대답해줬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몇몇 여자 애들이 울면서 반을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난 여자 애들끼리 패싸움이 났다고 생각하고 궁금해서 반으로 들어가 무슨 일이냐고 반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난 충격을 받았다. 내게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한 친구가 바로 전날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아 친구와 문제지를 사러 가는 길에 신호가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뛰어가다가 택시가 이 친구를 치었다고 했다. 외관으로는 다쳐보인데가 없어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 날 우리 반 전체는 울음바다였다. 뭐가 구경이 났다고 다른 반 아이들은 창문 너머로 우리 반 친구들을 구경하고 있어 정말 화가 났다. 수업을 하러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도 수업 도중 울며 나가셨고 우리도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2학년이 되어 1학년 때 있었던 내 활발한 성격은 없어지고 예전 조용한 아이로 돌아와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죽음으로 난 더 우울해졌다. 수업 시간에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하였고 뭔가 어두운 것이 나를 덮은 것 같이 답답했다. 학기 말 고사를 치르려고 시험지를 읽는데 한 문제를 읽고 또 읽어도 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으로 읽을 수는 있는데 머리 속의 뇌가 멈춰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은 점점 시험 마칠 시간이 되어 가는데 난 아직도 1~5문항에서 끙끙 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거의 모든 문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마친 뒤 집에도 가기 싫을 정도로 우울해졌던 걸로 기억된다. 나중에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반 뒤에서 2등을 했다. 거의 모든 문제를 찍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여름 방학을 맞아 필리핀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우울한 가운데 덥고 습한 나라를 가니 나의 우울함은 한층 더 심해졌다. 이때에 내가 어머니께 자주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렸을 때 호주에서 한국에 와서 6개월밖에 안되었는데 생일이 빠르다고 초등학교를 입학시킨 점과 이사한 것 때문에 초등학교를 2군데 다닌 점이었다. 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한 것이 어머니의 잘못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필리핀 여행 중에 단체로 버스를 타고 관강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울어 버스 내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수영을 하다가도 마음이 너무 답답해져 잠수를 하곤 크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우울함이 조금 나아졌다. 조금씩 짝하고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내 안에서 표현 못할 에너지가 자꾸 올라왔다. 이 에너지를 어찌할지 몰라 집 밖에서 뛰어다니기도 하고 농구공을 가지고 드리블하며 심지어 밤에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정을 넘어 가는데도 누워서 여러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고 뇌가 평소보다 훨씬 빨리 도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이런 장난을 쳐야지~ 하며 혼자 잠자리에 누워서 낄낄 거리며 웃기도 했다. 나의 이상한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챈 사람은 같이 사는 친할머니셨다. 친할머니께서 아버지에게 내가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니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병원 갈 정도로 이상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하셨지만 집에서 하는 나의 행동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부모님께서도 느끼셨기 때문에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으셨다. 아버지의 대학교 후배분이 세브란스 정신과 의사가 되셔서 그분께 진료를 받았다. 난생처음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이었고 주위에 처음 보는 정신과 환자들 행동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께 난 괜찮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겉으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상담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시고 나도 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괜히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조울증 초기 증상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 앞으로의 인생 가운데 밀접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단어 ‘조울증’을 처음 듣게 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조울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환자에 따라서 기분이 하루에도 좋고 나쁘기를 반복하는 경우와 기분이 좋은 상태와 우울한 상태를 몇 달간의 주기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때에 난 다른 사람들보다는 바이오 리듬의 간격이 더 긴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조울증은 그렇게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 처방해주신 약을 먹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이 들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난 차에서 잠이 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 체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 앞에서 행동했지만 부모님은 분명 내가 잠든 사이에 많은 걱정을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학교는 당분간 쉬기로 했고 그동안 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첫 진료를 받을 당시 조증 가운데 있었기에 잠이 많이 부족해서 약에 수면제가 들어 있었던 거 같다. 약을 먹으며 집에서 쉬니 살이 금방 찌기 시작했다. 학교를 한 달간 쉰 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강하게 학교에 가고 싶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승낙하셨다.




내가 조울증이라고 판명받았던 1994년 즈음엔 대중적으로 조울증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나 또한 의사 선생님을 통해 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 듣는 병이었고 그리 심각한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울증 환자보다 조울증 환자의 자살률이 더 높다고 한다. 조증일 때에는 한없이 기분이 좋고 아이디어가 넘치며 에너제틱하다가 갑자기 우울 모드로 들어가게 되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매우 크다. 약 복용으로 조울증을 일으키는 호르몬 분비 조절이 가능하지만 많은 조울증 환자들이 범하는 실수는 조증일 때 자신이 정상이라고 판단해 약을 스스로 먹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4가지 분류의 조울증 환자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체 삶을 사는 부류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감정 기복이 심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류다. 조울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 예술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조증이 올라오면 남들에게 없는 파워와 표현력이 생기고 우울할 때 또한 풍부해진 감성으로 인해 예술성 있고 생산적인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다. 과거 인류사에 천재라고 불렸던 인물들을 현대 정신과 의사들이 바라보았을 때 조울증 환자였다라고 많이 추측한다고 한다. 두 번째 부류는 조울증 판명을 받았지만 자신의 병이 완쾌되었다고 판단하던가 약 복용하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싫어서 복용하지 않는 부류다. 나 역시 이러한 경험이 있는데 경험자로써 약 복용하지 않는 조울증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약 복용을 멈춰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에게 약 처방을 해준 의사다. 세 번째 부류는 조울증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자들이다.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뵙고 짧지만 상담 시간을 갖고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신뢰하고 복용하는 자들이다. 약 복용으로 입맛이 돌아 체중이 늘 수도 있고 두뇌가 예전처럼 잘 돌아가지 않게 느낄 수도 있고 수면 시간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이 약을 먹지 않아 더 심한 조울증이라는 파도에 휩싸이는 것보다 낫다. 마지막 네 번째 부류는 본인이 원해서든 가족에 의해서든 병원에 입원한 친구들이다. 자신이 원해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는 첫 입원이 아닌 유경험자일 가능성이 높다. 첫 입원은 거의 강제 입원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자의로 입원을 했을 경우엔 본인이 원할 때 퇴원이 가능하지만 타의로 입원한 경우는 의사의 결정으로 인해 퇴원하게 된다.

이렇게 길게 4가지 분류의 조울증 환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조울증 환자들 중 자살률이 높은 부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난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말하기 참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위험한 부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이다. 자살이라는 것이 가족들과 주위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큰 아픔임을 잘 안다. 쉽게 이야기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가 조울증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할 때 우리가 생각지 못한 큰 아픔을 겪을 수도 있기에 말하는 것이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이 아직은 꺼려지는 부분이 많지만 이 글을 읽으며 본인 또는 지인이 조울증 증세가 의심된다면 꼭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울증이라고 판명을 받으면 충격과 앞으로의 걱정이 밀려올 수 있다. 하지만 조울증을 의심만 하고 상담받는 것을 미룰 경우 자신 또는 지인의 병을 키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오랫동안 조울증이 걸린 이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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