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조각 17.
오늘도 같은 꿈이다.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나를 내가 바라보는 꿈. 그리고 이 꿈은 가끔 나를 집어삼킨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손을 짚으면 축축한 베개가 만져진다. 며칠 째 나를 수렁으로 빠뜨린다.
눈을 감아도 눈을 뜬 것처럼 내 방안이 보인다.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는 상상을 한다. 아, 꿈이구나. 손을 움직이는 상상을 했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고 시선만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래도 오늘은 텅 빈 방 안이다. 가끔 마주하는 무서운 존재가 없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저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아, 깨어난 줄 알았는데 꿈속의 꿈이다. 또다시 내 방안이 보이지만 손을 움직일 수 없다. 이제 정말 깨어나야지.
눈을 다시 떠보았다. 내 방안이 보였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발을 디뎠다. 아니, 딛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허공이다. 여전히 난 깼지만 깨어나지 못한 채 내 방안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야 심각함을 느끼고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 힘을 줘본다. 깨어나야 한다고 몸부림을 친다. 꿈속의 나는 소리도 지르고 몸도 흔드는데 현실의 나는 고요할 거란 생각에 갑자기 식은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꿈속에 갇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차오를 때쯤, 순간 머리가 번쩍이며 꿈에서 깨어났다. 이제 정말 현실이란 걸 확인하고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언제 다시 잠이 들었지?’ 생각하는 찰나, 또 내 방안이다. 아무래도 친절하지만 지독한 가위에 눌린 것 같다. 어차피 깨어나도 꿈속의 꿈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꿈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라? 유체이탈인가? 못 돌아가면 죽는다던데.‘ 그런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갔다. 내가 보던 책과 잠들기 전 마셨던 찻잔이 보인다. 꿈 속이지만 익숙한 것들. 그렇게 나는 집안을 돌아다녔다. 다시 내 방안에 들어서니 인상을 쓰고 누워있는 내가 보였다. 부드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누웠다.
암흑이던 눈앞에 하얀빛이 생겨났다. 어릴 때 내가 보였다. 갑작스럽게 조우한 어린 시절의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작더미 속에 숨어있다. 그러다가 뛰쳐나가서는 할머니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해맑게, 정말 너무나도 해맑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현실에서 성인이 되어버린 난, 갑작스럽게 울음이 터졌다. 아무 걱정 없이 웃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함에 눈물이 났다. 어쩌다 난 이렇게 돼버렸을까... 꿈에서 엉엉 울었다. 정말 엉엉.
갑작스럽게 눈앞에 눈부신 바다가 가득 차올랐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나는 맘 놓고 울었다. 엉엉.
축축함에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 째 이런 꿈을 꿨다. 힘에 겨워서 잠을 포기했다. 우는 일은... 이제 충분한데,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꿈에서 조차 우는 내가 되어버렸다. 단잠에 빠지고 싶다.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정말 그만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