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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 Knowledge Mar 11. 2016

Take Knowledge 제작기 #2

뻔한 멜로디 interframe ver.

2014년 5월,  멀쩡히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때려치우고  
제대한 친구와 함께 힙합으로 일 한번 내보자며 
부모님께 손을 벌려 봉천동에 작업실 겸 집을 얻었다.

초반 잠깐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처음으로 만들어 올린 '눈, 코, 입' 영상이 
페이스북 페이지 일소라에 소개되고 2만 5천에 가까운 따봉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 앞에 찬란한 미래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것이 부모님과 약속한 6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가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

작업은 생각 같지 않았고 수입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불공정한 음원 수익 분배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는 당시 스트리밍 서비스에 등록할 음원도 만들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음원 수익 분배 문제가 원망스러웠다.
규칙은 전개될 내용의 틀을 규정하는 법이고
우리의 작업을 방해한 것은 그 '틀'에 대한 둘의 이견이었으니까.

눈, 코, 입을 작업할 때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다.
나는 대부분의 힙합 음악에서 주제로 쓰는 돈, Wack, Swag, 여자 따위의 것들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고 그걸 굳이 나까지 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물론 친구도 그런 기존의 힙합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지원받는 6개월 안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당시 방영된 쇼미 더 머니를 통해 매주  한 번씩 보던 
과거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랩스타가 되는 모습에 비해 초라한 우리 모습 같은 것에 쫓기다 보니
눈, 코, 입은 내가 고집을 피워 내 의도대로  마무리했으나 한 곡 한 곡을 눈, 코, 입 만들듯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데 영향을 끼칠 수 있을만한 주제를 택해 
단순히 소재를 이용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게 깊이 공부하고 세심하게 단어를 선택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잘 듣지 않을 것 같은 우울하고 무거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그 노력과 시간으로 남들처럼 가벼운 주제에 듣기 좋은 음악을 많이, 빨리 만들어내서
당장 씬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얻는 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하려는 음악을 
더 많은 이들이 듣게 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친구의 의견이 정답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면 똑같이 부릴 내 쓸데없는 고집이 당시 갈등을 키웠다.

결국 꽤 오랜 시간을 서로 헛심 쓰다 소모했고
작업실에 들어온 지 5개월  즈음되었을 무렵 이 가사를 적었다.

만약 장르 씬이 지금처럼 메이저를 못 간 2군들 집합소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제대로 음원 수익이 분배되며
시간과 정성을 듬뿍 들여 만든 슬로우 푸드 같은 음원을 미식가처럼 천천히 맛보는 미식가 같은 

장르 씬 팬들의 지원만으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우리는 서로 갈등할 시간에 조금 더 가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음악을 들을 때면 지금도 그게 너무 아쉽다.


뻔한 멜로디 by Interframe


Verse1] 

힘들어하는 친굴  위로하고 싶었지만 
맘에도 없는 사랑 얘기만 적다 펜을 내려놨지.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 
차라리 취미로 랩 하던 때가 더 낫다고. 

그땐 할 말이 있으면 하면 됐는데 
이게 직업처럼 느껴지니 Fan도 없는 내 주제에 
우습지만 검열을 하게 돼 혼자. 

십 년 전의 난 이런 날 어떻게 볼까? 

슬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 
시간은 쓸데없이 공평해. 아버진 더 늙었어. 
꿈은 못 버리겠는데 
지친 아버지마저 내 꿈을 지키려 짐 꾸려서 
출국하시는 모습은 더는 보기 싫어. 

이런 상황에 내게 무슨 선택권이 있어? 

무제한 듣기가 5900원이라는 광고와 
가볍게 듣기 좋은 노래뿐인 음원 차트 앞에서 

Hook] 

뻔한 사랑 얘기 중 하나  노래하게 될 줄은 난 몰랐어 
뻔한 멜로디 뻔하지, 말이 뻔한 사랑 노래 

빙빙빙 돌고 도는 세상 사람들은 이어폰을 껴 
힘들고 지칠 때 위로를 얻곤 하지 노래를 들으며 
난 누가 위로해주나 그렇게 바라 
겨우 사랑이야기라니.. 

사랑 이야기라니 하하하 

Verse2] 

그래 난 고집불통 
안전하게 살란 말 안 믿었어 

울 엄마 아빠의 등골 
내 삶이 윤택해질수록 더 휘었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겠다며 집 떠나온 내가 하고 싶은 건 
좋은 음악 만드는  것뿐이라 생각하며 
공부한답시고 유행가를 틀어놨지. 

대체 왜 요즘 노래엔 구석진 골목길, 노을빛이 없을까? 
대체 왜 우리 또래는 성공에  목매는 게 당연한 듯 컸을까? 

무심코 달력을 보니 또 월세 내는 날. 

전화를 걸어 애써 밝은  척해봐. 

"아빠 내일 월세 내는 날이네요. 
네 아들 열심히 할게요. 또 사랑해요." 

Hook] 

뻔한 사랑 얘기 중 하나  노래하게 될 줄은 난 몰랐어 
뻔한 멜로디 뻔하지, 말이 뻔한 사랑 노래 

빙빙빙 돌고 도는 세상 사람들은 이어폰을 껴 
힘들고 지칠 때 위로를 얻곤 하지 노래를 들으며 
난 누가 위로해주나 그렇게 바라 
겨우 사랑이야기라니.. 

사랑 이야기라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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