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ke Knowledge Mar 29. 2023

[KFA는 승부조작범 사면 결정을 철회하라]

'재미도 없는 K리그 왜 봐요?' 어디서든 인천 유나이티드 팬임을 밝히면 듣게 되는, 의문을 가장한 조롱이다. 이제는 발끈하기도 귀찮아서 ( 보통 이 포인트에서 발끈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해서 ) '잠이 많아서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하는 해축을 못 봐요. 직관 가기도 편하고 직접 가서 보면 분위기도 좋아서 그냥 K리그 봐요' 하고 말지만 나는 정말 왜, 그런 조롱을 당하면서까지 매 라운드 경기를 챙겨보고, 자칫하면 과격한 훌리건 취급 당하기 쉽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K리그 팬인 티를 낼 만큼 K리그를 좋아할까.


우선 재밌다. 축구에 재미를 부여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감독 입맛에 딱 맞게 조련된 팀을 가진 아르센 뱅거가 두명이어서, 양 팀이 모두 90분내내 아름다운 0:0 축구를 지속하면 그건 틀림없이 모두에게 재밌는 축구일까? 글쎄, 분명 누군가는 '왜 골이 안 터져? 지루해' 할 것 이다. 그만큼 축구에서 재미란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나는, TV 채널을 돌리다 해외 축구 경기를 중계 해주는 방송사가 있어서 잠깐 보고 있으면 그게 별로 재미가 없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데 경기 수준이야 물론 K리그보다 높지.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선수도 없고, 경기를 치르고 있는 두 팀간의 역사 같은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쉽사리 몰입이 되지 않는다. 아마 프리미어리그만 챙겨 보고 어쩌다 K리그 중계 잠깐 보다 말고는 '아 역시 K리그는 재미 없어'하고 마는 이들의 마음도 같은 것일테지.


그래서 '재미없다'는 편견만 걷어내면 K리그는 좋아하기 더 쉽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듯 축구도 직관이 주는 에너지가 다른데,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직관 하기 위해선 휴가를 쓰고, 몇 일의 시간과 몇 백 혹은 몇 천만원의 돈을 소비해야 하지만 주로 주말에 경기가 열리는 K리그 경기장은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만 타고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티켓값과 식비까지 모두 포함해도 10만원 내외의 비용만 지출하면 직접 볼 수 있다. 그 낮은 진입 장벽만 넘어서, 경기장의 에너지를 직접 몇 번 느끼다 보면 그 사이 좋아하는 선수도 생기고, 이 리그에 쌓인 역사에 대해 아는 바도 생기며 점점 빠져들기 마련이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 K리그를 좋아하는 각자의 이유가 덧대어지는데, 나 같은 경우는 축구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치열함을 사랑한다. 경기를 준비하는 코칭 스태프의 치열함,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치열함, 혹은 경기에 나가고 있지 못하지만, 한 번이라도 기회를 잡기 위해 조용히, 그리고 착실히 준비하고 있는 후보 선수들의 치열함. 그리고 그런 선수들을 목 놓아 응원하는 서포터즈들의 치열함.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으면 내 삶의 치열함을 되짚어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 열심히 살고, 경기장을 찾아 일주일간 열심히 경기를 준비한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자극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K리그가 내 삶에 끼치는 건강한 영향력이 선순환되는 지금이 나는 너무 좋다.


하지만 K리그 경기가 조작되고 있다면, 나를 비론하여 K리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 리그를 사랑하는 각자의 이유가 오롯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절대. 오직 축구 경기를 통해 한 탕 해보려는 세력들과, 그런 이들이 콩고물 흔들며 한 유혹에 넘어간 이들의 그 비루한 욕망 외에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 질 것 이다. 그딴 프로축구가 존재 의의가 있나? 그렇기 때문에 '대한 축구 협회'라면 승부 조작을 엄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의심조차 들지 않게 리그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16강 진출 성과'를 핑계로 'K리그 승부 조작범들을 사면'해준 KFA의 결정을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지? 대체 왜 K리그에 훈풍이 불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벤투호의 모든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해 이룬 성과를 핑계로 승부 조작범들의 죄를 사해주며 축구 팬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그것도 '대한 축구 협회'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왜 이런 짓을 한건지 짐작은 간다. 아마 평생 축구 밥을 먹어온 협회 구성원들의 눈에, 평생 축구만 해왔지만 승부 조작징계로 인해 더는 축구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 아는 형 동생, 동료들이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겠지. 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도 내 사람이라면 나만은 지켜주고 싶어하는 그런 의리. 개인적으로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그들이 안쓰럽다면 개인적으로 당신들이 버는 돈 중 몇 백, 몇 천 그들에게 보태주면 될 일 아닌가? 대체 왜 대한 축구 협회의 구성원이라는 자리의 힘을 빌어 승부조작범들을 축구판으로 복귀시키려 드는 것인가.


운동 선수가 과거 학폭 가해자였다는 게 밝혀지거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후에 '운동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하는 것도 조롱받는 세상이다. 그런데 승부조작범들은 심지어 축구 업계 종사자의 신분으로 축구를 더럽히려 한 이들이다. 축구 업계 종사자로서 승부 조작에 가담하여 축구판을 말아 먹을 뻔 했지만 축구로 보답할 수 있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애초에 긍지를 저버리는 선택을 한 건 그들이다. 다른 일로 밥 벌어 먹고 살겠다면 그것까지 훼방 놓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축구판에는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물론 협회도 이 결정이 비난받아 마땅한 짓이란 걸 알기에 화제성이 큰 국가 대표 경기 시작전에 기습 발표하고 적당히 묻어버리려고 한 것이겠지만, 이딴 결정을 발표한 것만 봐도 자신들이 한 짓이 어떤 의미인지 진정으로 알지는 못 하는 것 같으니 잠시만 다른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300억 이상을 배임/횡령해도 권고 형량은 5~8년이며, 범행 수법이 불량해 형량이 가중된다고 해도 7~11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100만 달러, 우리 돈 13억 정도만 횡령해도 최대 24년형을 구형할 수 있고 텍사스 주에서는 30만 달러, 우리 돈 4억 정도 이상만 횡령해도 최대 99년형까지 구형할 수 있다. 미국은 왜 이렇게 배임/횡령에 엄격할까? 아마도 그것을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경제 체제인 자본 주의 시스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엄벌해야만 우리나라처럼, '한 탕 크게 해서 잘 숨겨놓고 몇 년 살고 나온 다음 남은 여생 편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회삿돈에 손 대서 주주와, 회사와,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이들이 매년 6만명이나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테니까.


다시 축구 얘기로 돌아와보자. 대한 축구 협회의 이번 사면 결정이 번복되지 않는다면, 이건 K리그 종사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심판이나 선수들 전체를 '잠재적 승부 조작범'으로 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승부 조작에 가담해도 몇 년 지나고 월드컵 결과 좋으면 협회에서 막 사면시켜줘서 축구밥 먹게 해주던데 어차피 짧은 선수 생활 욕 먹을 각오하고 크게 한 탕이나 해볼까' 하는 사람이 과연 한명도 나오지 않을까. 또한 그런 선수나 심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 터 K리그에 자체에 대한 애정을 잃는 팬들이 정말 한 명도 나오지 않을까. 당신들이 고작 당신들의 동정심을 근거로 '대한 축구 협회'의 이름을 달고 한 짓이 이런 것이다. K리그 시스템 전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벤투호의 구성원들이, 특히 영향력이 큰 선수들 중 누군가가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댓가가 이런 식으로 쓰여 치욕스럽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러나 대한 축구 협회의 기습 발표 전략은 유효하여 지난 두 번의 평가전 결과와 김민재의 인터뷰에 비해 이 문제는 크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운동 선수가 엄격한 선후배간의 위계 질서를 무시하고 그런 발언을 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을 만큼 K리그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꾸준히 언급해주면 좋겠다. 이건 K리그를 보지 않고 국가 대표 경기만 보는 이들이 접해도 충분히 분노할 일이다. 그런 이들까지 이 사건을 인지하게 된다면, 그래서 사면 결정 철회하라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준다면 누군가는 큰 용기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바꿀 수 있다. 바꿔야 한다.


KFA는 내가 사랑하는 K리그를 망치는 승부조작범 사면 결정을 철회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정치'가 사고 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