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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Mar 18. 2019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장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어떻게 사람이 화를 안내며 살아?"

사람이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운전 중에 무례하게 운전하는 상대방에게 쌍욕을 하거나 짜증 내는 것은 상식이고, 

직장에서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화를 내고, 부하직원들은 모여서 상사를 뒤에서 욕한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서로의 실수에 대해 화를 내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망하고 욕하곤 한다. 

티브이를 보면서 정치인들을 보며 분노하고, 어떤 사람들은 연속극을 보며 극 중 배역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명확히 말씀하셨다. 

형제에게 노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잡혀갈 것이다. 형제에게 미련하다고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다. 


아니, 화 좀 낸다고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하나님 살아계신 거 믿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천국 가는 것 아니었나?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에게 노하고 사람에게 욕하고, 평가하는 자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사람이 사람에게 노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정의하신 까닭이다. 

하나님은 분노를 살인으로 규정하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을 죽인다는 것. 

하나님이 외아들을 보내 희생할 정도로 사랑하신 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분명 지옥에 가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죽인다'는 것이 타인의 신체의 숨통을 끊는 것이라고 사람은 정의했다면,

예수님은 '죽인다'의 의미를 사람이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까지 확대해 다시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데, 누군가에게 분노한다는 것은 사랑과는 정반대의 개념인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계명과 정 반대로 주행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하나님과 성령의 뜻을 떠난 그의 마음이 이미 지옥불 속에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누군가에게 분노하지 않기는 이 세상에서 쉽지 않다.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세상"인 까닭이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와서 나의 당연한 권리를 뺏어가고, 수시로 나를 속이려고 호심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가득하다. 나를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버리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가 사고 쳐 놓고 나에게 뒷수습을 넘기는 무책임한 이들도 있다. 

나의 당연한 권리를 찾고 나도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려면 '분노'는 필요한 도구 같아 보인다. 물리지 않으려면 나도 이를 들어내고 으르렁 거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체는 여전히 '나'이다. 문제 해결의 원동력은 정신 바짝 안 차리면 코베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다면 내 코를 베어가려고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분노할 일이 없다. 오히려 두려움과 욕심에 매여 서로에게 으르렁 거리는 그들의 삶이 애틋하고 긍휼히 보일 뿐이다. 


분노와 불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하고 있다면,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지 못한다.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 하라


이 점을 걱정하신 예수님은 형제와 화목하고, 너를 고발하는 사람과 사화 하라고 알려주신다. 

사람이 사람과 화목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사람과 화목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가능한 까닭이며, 내 삶이 천국의 삶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또 너희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너희 동족에게 앙심을 품지 말며 너희 이웃을 너희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다.(레위기 19:18)


사람이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이 '멋지고 스마트해 보이는' 시대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보같이 화목하라'라고 말씀해 주심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험한 세상에 원수와 화목과 peace maker를 꿈꿀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저를 용서하시고, 가시 돋친 사람들을 향해 갑옷을 벗고 힘껏 껴안을 수 있는 저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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