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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화자 Dec 22. 2019

주 6일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시절, 금요일 오후 사내 메신저로 흔히 하던 인사말은 "불금되세요!"였다. 불타는 금요일. 억겁과도 같은 5일을 견뎌내고 맞는 금요일의 오후는 퇴근 후 약속의 설렘과 오늘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미드를 정주행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2012년 인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주 5일제는 숨 쉬는 공기처럼 너무 당연했다. 사실 주 5일제를 타이핑하며 적어보거나 입을 열어 발음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플랜트 업계로 일을 옮기고 나서부터 불금은 사실상 없어졌다. 내가 '불금'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은 토요일 출근이 없다는 말인데 그 말인즉슨 회사가 일로 바쁘지 않다거나 일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몸에 각인된 '불금'을 누리고 싶지만 '불금'을 누린다면 사실 좀 불안한 역설적 상황이다.


사무실을 벗어나 산업현장으로 보이니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불타는 금요일. 지금은 당연한 대명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금은 존재하지 않는 타인들의 축제 같은 것이다. 공장은 대부분 교대 근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월화수목금토일이라는 요일제가 아니라 근무 스케줄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교대근무한테 주말은 없다. 오프가 있을 뿐이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이 요일까지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공장에 소속돼 스케줄 근무를 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 상황. 우리 회사는 공사가 있을 때만 일용직 근로자들을 고용(보통 플랜트 현장은 배관, 용접사, 조공 이렇게 3명이 한 팀을 구성한다. 이들은 대부분 한 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고 일이 있는 현장을 찾아다닌다. 개중에는 타지는 물론 해외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하는데 이들의 고용 상황은 일 년 내내 가변적이다. 평일, 주말의 구분보다 일을 하는 날과 일을 하지 않는 날 이 두 개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든 작업자들은 토요일 작업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본다. 토요일 작업이 없다고 하면 아예 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분들에겐 불금이란 것은 사치일 따름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주 6일제, 토요일 근무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군산 지역 플랜트 현장에서 주말과 공휴일의 작업시간은 8시부터 15시까지다. 총 7시간의 근로시간 중 점심시간 1시간과 휴식시간 30분을 빼고 나면 순수 근로시간은 5시간 정도가 되고 이 마저도 작업 준비와 정리 시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작업이 진행되는 시간 4시간. 거기에 근로자들마다 시간관념과 근로 태도가 달라 시간을 개중에는 밥을 먹으러 30분 일찍 나오기도 하고 퇴근 시간 30분 전에 퇴근해버리기도 한다. 이런저런 로스까지 따지면 순수 일이 진행되는 시간은 3시간 언저리로 줄어든다. 평일과 같은 일당을 주고 3~4시간 수준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인건비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손실이지만 공사 일정이 빠듯한 상황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토요일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토요일에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4시쯤이 된다. 밀려있는 집안 일과 이런저런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일들, 늦잠과 낮잠을 모두 누리기에 남아있는 저녁시간과 일요일 하루는 짧다. 그렇다 보니 하루 휴식은 꿀처럼 달다. 시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다. 주 5일제라면 토요일 하루를 잠과 휴식으로 보내더라도 일요일 하루가 더 남아 이런저런 스케줄을 소화하면 되겠지만 주 6일제는 일요일 하루를 압축적으로 보내야 한다.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수년간 주 5일제에 맞춰져 있던 몸뚱이는 여전히 금요일이라는 인식에 설렘과 안도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보면 문화와 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주 5일제를 넘어 주 52시간 근로가 법제화됐다. 아직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어쨌든 이것도 이렇든 저렇든 어떤 형태로든 자리 잡을 거라 본다. 어렸을 때라 정확히 기억이 남지 않지만 주 5일제가 시행되던 초기에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얼마고 파급효과가 뭐라는 둥의 뉴스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엔 이제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었고, 이제 주 52시간을 논하고 있지 않는가.


야속하게도 따박따박 돌아가는 주말의 초침이 아까워 책을 읽다 말고, 스타벅스에서 괜히 이런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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