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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나 Jan 18. 2022

결혼에 대한 단상


굳이 이런 생각들을 글로 남겨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예전처럼 와인 한 잔 기울이며 친구들과 대화할 수도 없으니 나의 생각을 이런 식으로라도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또 30대 중후반의 내가 30대 초반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았으면 좋겠기 때문에 글로 남겨 본다.

쉬는 . 그간 쉰다고 하고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주간의 고민거리들을 놓지 못하는 스스로를 봐왔던 터라 오늘만큼은 공부, 학위, 박사에 대한 어떤 생각도 일체 하지 않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의 생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혼이었다. ​


1. 얼마 전 박사과정 중인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없고 싱글이라고 하자 선배가 말했다. "그럼 결혼해서 박사 와야겠네." 이 말을 듣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2. 유부녀 친구들과 아침부터 통화하다가 결혼을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못하는 것과 안하는   사이 어디려나.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던 때도 있었다  열렬한 감정이 휘몰아칠  누구나 하는 덧없는 말이지만 . 그런데  때도 크게 내키지는 않았다.  친구가 여러 현실적인 확신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같다. 어쨌든  때는 1)사랑이라는 감정  2)그것을 지속하고자 하는 열정 3)법적 계약과 동거를 통한 감정의 완성이 결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적 단계처럼 보였지만, 30 초입의 지금은 결혼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1)결혼을 하고싶다는 목표를 세운  2)여러 조건들의 부합여부 확인 이후에서야 비로소 3)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한 합의 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같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결혼을 위한 결혼이랄까. 나의 경우는 두번째 단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느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해지지 않는 거주지, 안정되지 않은 학생 신분, 해외살이 등이  이유가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자가 배움의 끈이 길어질수록 결혼이  어려워지는  맞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도 여러 근거와 그간 삶을 통해 파악해온 경험 등이 있지만 적지 않기로 한다. ​


3.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이미 감정만 가지고 결혼하는 논리적 단계에서는 벗어났고,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는 솔직히 달콤하고, 혼자 있는 것이 때로는 즐겁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so badly 아기를 키우고 싶다. 그래서 자꾸 1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나는 요리와 살림을 하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고 싶고, 그를 먹이고 싶고, 우리를 위해 집안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가 동의한다면 나를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 굉장히 구식의 여성관처럼 들린다.  그런 일들을 정말 즐기지만, '현모양처'성의 여성혐오 재생산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남자와 그런 목표를 가지고 결혼하고 싶지 않다. ​


4. 하지만   나의 그런 열정이 결혼이라는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일까? 나는 사실 지금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경민이. (물론 경민이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도 있다) 경민이랑은 이미  년간 같이 살아보기도 했고, 밤새워 이야기할  있는   되는 친구고, 내가 기쁨으로 집안일과 요리를 해줄  있는 친구다. 그리고 내가 아는 최고의 DJ이기도 하고. 만일 이런 식으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있다면,  이런 관계들은 가족으로 여겨질  없는 걸까? 재생산이  돼서? ​


5. 한편으론 결혼이라는 관계 자체가 주는 다른 멋진 점들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번은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배우자를 따라 다녀야 하게 되는데 거기서 오는 어려움이   같다' 이야기했는데 인상깊은 답변을 들었다. 그것이 오히려 삶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성과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속박으로 보이는 것이 어떻게 보면 즐거운 것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같다. (  대답을 했던 사람이 남자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다른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가족은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쉽다고. 물론 결혼관계에 한정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사실 그게 가족이 필요한 이유지. ​


6. 헤어진 사람과 헤어지기 전에 했던 크고 작은 다툼들은 원래 기억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한가지 뚜렷하게 기억하는  싸움의 장면이 있다.  친구는 당시  정규직 자리와 다른 비정규직 자리에 모두 합격하고서 비정규직을 선택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여러모로 그가 하려던 일과도 다르고 내가 보기에는 충동적으로 보이는 고민이었다.  반대 의견에 대한 그의 불만으로 다툼이 시작되었는데 싸움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쯤 내가 '이해가 안된다'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자 그가 소리쳤다. "나도 너처럼 유학 나가려는 애들 정말 이해 안돼." 그의 입장에선 나의 비정규직 반대나 그의 유학 반대나 비슷하다고 여겼기에 나온 말이었겠지만 유학을 누구보다 응원해 주던 그가 사실은 홧김에 본심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자 그가 해외 생활은 별로 하고싶지 않다고 심심찮게 말했었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그것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정규직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얼마   헤어졌다. 종종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그때  친구 말고 다른 친구와 연애했으면 지금 나는 결혼해서 함께 미국에 나왔을까? ​


7. 나는 예전부터 입양에 대한 꿈이 있었다.  세상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고,    사람에게라도 실질적인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혼 여성에게는 입양이  허가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고, 제대로  가족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4번으로 돌아가서, 내가  친구와 함께 누군가에게 가족이 되어 준다면, 그건 가족이 아닌 건가? ​


8. 단상이니까,  글에는 결론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남자로 태어나서 사제관에 사는 신부님이 되거나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했으면  좋았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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