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위로 2
우리 집 마당에는 큰 살구나무가 있다. 십여 년쯤 전, 텅 비어 휑하던 마당에 부모님이 심으신 적당한 크기의 살구나무가 이제는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처음부터 열매나 그런 부산물을 원해서 심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무는 기특하게도 매년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려주고 햇빛이 뜨거워지면 주황빛 열매를 주렁주렁 달아 주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마다 꽃잎이 흩날리는 장관을 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노오랗고 새콤달콤한 열매라니. 우리 가족은 나무가 축 처지도록 무겁게 달린 열매를 볼 때마다 즐거웠다.
보는 것까지는 정말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열매가 열려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는데, 이번 초여름이 그랬다. 달콤한 살구가 후두둑 떨어지니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얼른 주워주지 않으면 열매가 물러져서 열심히 가꾼 마당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 가족은 과수원이라도 차린 듯 매일 마당에서 열심히 살구를 모았다. 그렇게 주운 살구를 쉴 새 없이 먹고, 살구청을 만들고, 살구잼을 만들고,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살구는 여전히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빠는 그런 살구나무가 예뻤는지 가지를 다듬어 주고, 영양제를 주기도 하며 살뜰히 보살폈다.
점점 더워지던 어느 날 엄마는 마당에 나갔다가 살구나무 가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지를 다듬어 준 건가 싶어 아빠에게 묻자 아빠는 내가 왜 그랬겠냐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자세히 떨어진 가지를 살펴보자 거칠게 부러진 자국이 보였다. 아마도 열매들이 너무 많이 맺힌 까닭에 무거워서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져 버린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은 놀랐고 그 후로 더 열심히 살구나무 열매를 정리해 주었다. 떨어지지 않은 열매도 열심히 따고 나뭇가지를 다듬어 주자 나무는 기지개를 펴듯 휘어있던 가지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 전까지는 살구나무에게 고마운 마음만 있었다. 뭔가 눈에 보이는 풍성한 결과를 내어 주던 것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살구나무’이니까, 살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무에게 마음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너의 이름에 걸맞게 사는 것, 그러니까 네 본분을 잊지 않는 것이 아주 보기 좋다고. 그렇게 더 열심히 해 내라고. 나는 아마 나무에게 그렇게 말해오지 않았을까. 정작 살구나무는 본분에 맞게 살구를 열심히 더 매달다가 자신의 한 쪽 팔이 부러져 버렸는데 말이다.
한 번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그 한 번을 제외하고는 다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다들 좀 더 열심히 뭔가를 해내야만 한다고 부추겼다. TV에서도, SNS에서도 늘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방법, 지금이라도 뭔가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 했다. 어떤 이들은 누구는 내 나이에 뭘 더 해냈고, 무엇이 되었더라고 굳이 다가와 들려주었다. 나는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했으면 된 거야!’ 실패한 나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 속에도 늘 열심이 전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열심히 해냈을 때의 무섭도록 잔인한 결과는 알려주지 않았다.
너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를 부러뜨린다. 가지가 부러지는 것은 나무를 죽이는 것이다. 분명 나무가 죽기 위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닐 텐데, 우리는 다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만 이상한 것을 우선순위에 둔다. 우리의 열매를 향한 집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살구나무들이 그 가지를 잃었을까. 내가 살구나무에게 했어야 하는 말은 살구를 많이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도, 살구나무라는 이름답게 살구를 만들어내라는 말도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살구를 그렇게 많이 맺지 않아도, 아니, 살구 열매를 단 하나도 만들지 못하더라도 넌 살구나무야. 그러니 죽도록 열심히 열매를 만들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