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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란시스 프로젝트 Jan 15. 2021

반려동물을 사랑할 자격에 대하여.

강아지를 떠나보낸 지 4년이 되었다. 




우리 집 강아지 워루가 아팠을 즈음의 당혹스러움을 기억한다. 

'왜 하필 지금 이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상사의 갑질을 못 이기고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 백수생활을 한 지 거의 7개월이 넘어, 나는 겨우겨우 취업에 성공했다. 인턴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씌운 계약직이었다. 그래도 몇 백대 1의 서류전형과 세 번의 면접 거기에 과제까지 제출해서 겨우 얻은 일자리였다.  '너 하는 거 봐서 6개월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줄게.'  나는 그들에게 당장에 확신을 주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약자였다. 게다가 해가 바뀌어 나이는 서른이 넘었다. 여기가 아니면 안 됐다. 누구보다 성실한 모습을 보여줘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그런데 입사 한 지 일주일째 됐을쯤이었나. 입사 전부터 몇 주간 내내 아팠던 워루가 더 이상 버티질 못하는 것이었다. 진즉 여러 병원을 들고 뛰어다니며 수술과 수혈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정말이지 곧 죽을 것 같았다.  오늘 강아지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출근을 반복하던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병원에 두고 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몇 백을 썼기에 수중에 돈은 없었다. 


 그러던 중, 직감적으로 오늘은 강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이었다. 어거지로 출근했지만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오후가 되자 직감이 더욱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점점 패닉에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강아지가 아파서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이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간 직원들이 내가 나도 모르게 울상을 짓고 한숨을 쉬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저희 집 강아지가 많이 아프고 오늘 죽을 거 같아요. 집에 아무도 없는데... "  그러자 직원들은 편을 들어줬다. "그냥 말하고 집에 가세요.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정이 생겼다고 대충 메신저에 글을 남겨 놓고 인사도 없이 회사를 뛰쳐나왔다. 강남에서 U시까지,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상황은 예상대로였다. 워루는 바닥에 축 쳐져있었고, 겨우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눈을 맞추고 엎드려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날 밤 워루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도움을 받고 싶었다. 백수인 내가 겨우 모아놓은 돈을 몇 백만 원을 쓰게 하지 말고, 엄마랑 아빠랑 언니가 병원비를 도와주길 바랬다. 강남에서 일하는 나보다, 집과 더 가까운 데서 일하는 가족들이 워루를 조금이라도 빨리 손써주길 바랬다. 적어도 나만큼만 슬퍼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시골출신인 엄마와 아빠는 내내 무지했다. 펫 샵에서 강아지를 사 와 얼결에 가족들의 손에 맡긴 언니는 미치도록 무책임했다. 하지만 그들은 강아지의 죽음앞에, 스스로 무지했다는, 또는 무책임하다는 인지조차 없었다. 같이 산 정이 있으니, 그저 바보같이 슬퍼할 뿐이었다. 모든 게 아직까지 원망스럽다. 


하지만 나라고 다를까. 

'내가 데려온 개도 아닌데...?' 

'왜 하필 지금 이래...?'

나 역시 먹고살아야 된다는, 절박한 상황을 핑계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바보같이 사랑만 주고 간 아이. 나는 워루, 가족들은 초코라고 불렀다. 



워루가 떠나고 난 후, 사랑의 자격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워루에게 보였던 나의 애정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애정은 그 아이가 준 사랑에 비하면 너무도 얄팍했다. 나와 우리 가족들은 모두 그 아이를, 그리고 그 어떤 반려동물을,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 가는 길을 마중 나온다던데. 나는 워루가 나를 마중 나오지 않아도 할 말이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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