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돈콩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알버트 아저씨
2014년 2월 19일 - 3월 3일, 비엔티안-방비엥-루앙프라방-치앙마이-방콕
4천 개의 섬이라고 불리는 돈콩으로 향했다. 팍세에서 돈콩까지는 버스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버스는 역시나 협소했다. 발이 닿는 곳까지 쌓여 있는 짐들 위를 걸어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사람들은 간이 의자, 짐 위에도 앉아 있었다. 그대로 3시간을 달리면 돈콩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구멍가게 하나가 전부인 휴게소 같은 곳에서 잠시 버스가 선다. 닭꼬치, 망고 등 각종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들이 창문 앞으로 다가와 장사를 한다. 덜 익은 망고 한 봉지를 사서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여기는 망고를 빨간 소금에 찍어먹는다. 이상할 것 같지만 소금 때문에 망고가 훨씬 달다. 버스 차장 같은 아저씨가 먹어보라며 배처럼 먹는 무를 주셨다. '컵짜이(감사합니다) 샙라이(맛있어요)'라고 하니 활짝 웃는다.
내 옆에는 영어도 잘하고 참 잘생긴 라오스 청년이 앉아있었다. 그는 수도 비엔티안에 사는데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자리를 잡을 때, 망고를 살 때도 그는 친절히 통역을 해주었다.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얼레리 꼴레리하며 우리 둘을 놀리기도 했다. 선착장에 같이 내릴 줄 알았는데 그는 더 가야 한단다. 만난 지 몇 시간 됐다고 아쉬워서 괜히 어색하고 긴 인사를 했다.
버스 안에 외국인은 나와 알버트 아저씨 둘 뿐이었다. 우리는 선착장에 내려서 자연스럽게 같이 배를 타러 갔다. 직업을 물어보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한참 동안 물어보지 않았더니 자기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냐며 예의를 차리고 있는 거라면 물어봐도 된다고 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온 정신과 의사였다. 여행사진전도 한번 열었으니 자신은 여행사진작가라고도 했다.
그에게 여행은 유희나 휴식 이상을 의미했다. 직업 특성상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매일 만나기 때문에 자신은 여행으로 마음을 치유한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돈콩의 일출이 잘 보이는 강변에 숙소를 잡고 그를 다시 만났다. 숙소 주인이 운영하는 음식점 테라스에 앉아 각종 야채와 땅콩이 듬뿍 들어있는 2천원짜리 팟타이를 먹었다. 식사 후 그는 담배를 권유했다. 손으로 톡 터뜨리면 민트향이 나는 담배였다. 몇 개비 남지 않았지만 특별히 나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이미 태국에서 담배를 배우고 온 터라 한 번만 거절하고 받았다. 터져나오는 기침을 억지로 누르며 몇 모금을 마시니 괜히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모차르트의 나라에서 온 그는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클래식을 듣냐며, 한국의 음악은 어떤지 궁금하다며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줄 수 없느냐기에 보내줄 수 있다고, 지금 당장 불러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리랑을 불렀다. 노래를 마치니 당황스럽게 그의 눈가가 촉촉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 최고의 순간이라는 말까지 했다. 새까만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강변에서 아리랑은 참 잘어울렸다.
다음날 우리는 일출 사진을 찍고 알맞은 작별인사도 없이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