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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지나 Jan 08. 2016

우리를 상처 나게 했던 것들

시작과 끝이 다른 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구입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는지, 이따금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30분 정도 일찍 나가 근처 대형 서점을 돌아 보고 고르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고 표지를 들추어 보는지, 모른다. 


나는 꼭 직접 책을 보고 고르는데, 매대 위에 올려진 추천하는 책들도 그렇고 구석진 선반 맨 아래 칸에 있는 책도 손이 가는 대로 꺼내 들추어 보며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추려 담는다. 그 간의 독서 경험으로 ‘믿고 사는’ 작가들도 있고, 마음속으로 언젠간 꼭 읽어 보겠다 여러 번 다짐한 양서와 고전도 있지만 전혀 모르는 책을 고를 때에는 표지나 제목보다는 손에 집히는 페이지를 열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고 결정한다. 운이 좋아 마음에 쏙 드는 한 권을 바로 찾게될 때도 있고, 막상 읽어 보니 서점에서 우연히 읽었던 그 구절 말고는 전부 그냥 그랬던 책을 살 때도 있다. 



우리를 상처 나게 했던 것들은 다 우리가 원했던 것이다. – 김재진, <시간여행>



우연히 눈에 닿은 한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다.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빼앗기는 편은 아닌데, 그리고 쉽게 빼앗기지 않으려 나름의 방어기제를 잘 구축하고 살고 있는데, 책과 음악, 영화에는 언제나 온 마음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어 이런 순간은 드물지 않게 찾아온다. 무척 행복한 순간이다. 아- 하고 너무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만 감탄사를 내뱉으며, 책을 든 손아귀에 힘을 주어 ‘내 책이구나’ 하며 꼭 쥐게 되는 그러한 순간들. 


오랜 시간이 지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처도 있고, 출혈이 너무 커 흉은 남지 않았으나 기억은 생생한 상처도 있다. 또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처도, 어느 날 유독 잘 보이는 상처도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차라리 없었던 일이었으면 하는 기억과 상처들은 이 구절을 읽고 나니 그래, 내가 무척이나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것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 거두게 되었다. 


원하는 것이 참 많아 그 흔적도 많이 남은. 

바라는 것 하나 없이 맹물처럼 사는 것보다는 상처투성이로 매일 빨간약을 바르면서 또 원하고 다시 또 욕망하는 그런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에 상처 위에 덧바르는 붉은 색의 채도가, 농도가 점점 더 짙어 가는 하루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서점에서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며 스스로와 조금씩 더 친해진다. 

일이 바쁘고 나보다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느라 나 자신과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느껴지면, 외투를 들고 얼른 집을 나서 책방으로 향한다. 올 겨울엔 책방을 참 자주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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