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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an 13. 2023

내가 가끔 코믹 드라마 속
탤런트 같기도 하다

자신이 주로 어떤 ‘생각의 틀’ 속에 들어있는지 아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당신이 군인이라면, 군인과 민간인이 다투는 것을 발견했을 때 군인의 입장에서 그 상황에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당신 가족이 동료 군인과 다투고 있다면? 모르긴 해도 당신은 자기 가족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이유? 그런 걸 왜 물어? 내 가족이니까 당연하지. ‘생각의 틀’은 이렇게 ‘당연한 것’에서 작동한다. 

      

자신을 옥수수라고 믿고 살다가 정신병원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가 있다. 의사에게서 퇴원 허락을 받은 환자는 며칠 가지 않아 허겁지겁 정신과 주치의를 다시 찾아왔다. ‘닭들이 자신을 자꾸만 쫓아다닌다’는 게 이유였다. 주치의는 환자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환자가 말했다.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2012 이상문학상작품집, 김영하 <옥수수와 나>에서)     


나는 군인이라는 정체성, 나는 가족이 우선이라는 신념, 나는 코알라 같아,라는 생각, 닭들이 쫓아다니니 분명히 나는 옥수수일 거라는 믿음. 짧거나 길거나 이런 벽돌처럼 굳은 ‘생각의 틀(프레임)은 여러 유형의 단어들로 표현된다. 생각은 ’ 신념, 기억, 판단, 믿음, 단정, 확신, 사실’ 등의 단어로 표현된다.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되다 보니 그 내부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생각’ 임을 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당신도 벽돌처럼 단단한 생각의 틀이 많을지도 모른다. 건물 벽채의 벽돌들이 그러하듯 이것들은 밖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고, 시멘트나 색깔 페인트 속에서 없는 것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의 틀은 마치 풀숲에 숨어 있다가 고개를 세워 상대를 공격하는 독사처럼 순식간에 발동한다.   

   

가정폭력 가해자 집단원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이들이 교육 이수를 해야 하는 배경에는 그의 ‘생각’이 폭력적 언행으로 표출된 사건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 신념이나 생각을 움켜쥐고 있다. ‘여자는 어떤 경우에도 집안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거나, ‘여자는 혼자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등 여러 ‘생각의 틀’을 강하게 쥐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은 다양한 어휘와 의미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정체성, 신념, 철학, 가치관, 믿음, 소신 따위의 언어로 포장되어 사회적 생명력을 얻는다. 살아가면서 어떤 이는 자기 ‘생각의 틀’을 더 굳건히 구축해 간다. 반면에 스스로 의심하면서 자기 응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자신의 국가관, 사회관, 가정관, 부부관, 교우관 혹은, 위에서 나열한 여러 ‘생각의 틀’을 끄집어내어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사실, 이런 정신적 작업은 쉽지 않다. 가령, 당신이 ‘요즘 젊은이는 너무 유치해’라는 ‘생각의 틀’을 갖고 있다고 하자. 당신이 이 ‘생각의 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다. 같은 동년배 중에서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꽤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구나, 하고 아는 순간 당신의 그 ‘생각’은 가벼워지고 본인 ‘생각의 틀’을 객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보나 마나 내 동년배들은 나 같은 생각일 거야, 틀림없어!’라고 단정 짓는다면, ‘요즘 젊은이는 너무 유치해’라는 생각의 틀에서 빠져나와야 할 이유 또한 찾지 못한다.     


낮에 나에게 짜증을 낸 후배 직원에 대해 분노 감정 외에 좋은 감정 한 가닥 찾아내기 어려운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선배’라는 ‘생각의 틀’ 속에 들어있는 게 익숙하거나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나는 평생 ‘생각’이라는 철창에 갇혀 살 것만 같다. 아니다. 더 가기 전에 인생 전체를 한 번은 대청소해봐야겠어. 그리하여, 이 모든 ‘생각의 틀’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말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그 생각만으로도 심리적 유연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왕도는 없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 마음공부 또한 그것들을 하나하나 드러내어 타파해가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종의 티핑 포인트를 경험하게 되리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차리는 즉시 내 ‘생각의 틀’이 선명하게 알아지는 의식의 포인트, 말이다.   

   

당신은 그 과녁을 응시하면 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정 틀이 보이거나, 어느 한 시절에 대한 ‘생각의 틀’, 내 인연에 대한 ‘생각의 틀’ 따위가 잘 알아지기 시작하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당신은 차츰 말수가 줄고, 언행이 고요해지면서, 자신이 가끔 코믹 드라마 속 탤런트 같기도 할 것이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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