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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Dec 10. 2023

역술인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침에 눈을 떴다. 창문을 보니, 온통 희뿌연 것이 미세먼지 탓인 것 같다.

이틀 전부터 침대 속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지인에게 받았던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오늘 상담 가능할까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께서 내 질문에 대답을 하셨다.

"네, 오후에 오세요"


급속 충전이 된 핸드폰처럼 갑자기 힘이 솟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편으론 그런 나의 모습이 우스웠고, 어리석음도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내 인생을 물어보겠다니..

한심한데, 기운이 나는 이 상황이 뭐지?'


12월,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의 삼청동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미술관 나들이를 나온 청춘들이 눈에 담긴다.

그 속에서, 역술인을 찾아온 나도 보인다.




어둡고 침침한 구옥의 역술가 집은 춥지 않았다.

신점을 보는 무속인인지, 사주를 보는 역술가인지, 전화번호 외에는 정보가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나이가 많이 보이시는 할머니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상당히 격조가 있어보이고품위 있는 인상이시네요"

"왜 찾아오셨습니까?"

짧은 커트 머리의 할머니는 풍채가 좋아서 인자하거나 따뜻한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고 마른, 시니컬한 느낌이었다.

"이것저것 답답해서 왔어요. 제 생일은요. 남편 생일과 아이 생일은요..."

주절주절 태어난 일과 시를 말하고,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아이를 아주 잘 키우셨어요. 성품이 아주 바르고, 훌륭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이제부터는 아이의 인생은 아이에게 맡기시고, 본인의 마음만 잘 다스리세요"

"마음이 아프면, 몸도 계속 아플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을, 본인은 다 신경 쓰고 살아요."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줄여보면 이랬다.

재수한 아들을 둔,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엄마에게 굳이 역술가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해 줄 수 있는 말들이었다. 내년까지 나와 남편은 용띠, 아이는 잔나비띠라서 세 명이 다 삼재(三災)라고 했다.

삼재....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원래 이런 걸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사람들이 점을 보는 이유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서다.
다가올 미래, 특정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될 수 있고,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될 수도 있다.
궁금증은 ‘불안’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있을 때 궁금해하는 동시에 불안해한다. 점을 보고 궁금증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 역시 불안함·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안심과 확신을 얻으려는 심리로 볼 수 있다. 특히 불안함·불확실성이 클수록 점에 의존하고 빠지기 쉽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인간은 불안하고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의 말을 참고하거나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자 한다”며 “점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은 현재 심적으로 불안하고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출처 : https://health.chosun.com)



할머니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시선은 눈앞에 흔들이는 촛불에 멍하니 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불안과 현재의 상황들이 겹쳐지면서, 힘든 올해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 스스로도 '내가 문젠데, 내 마음과 생각을 단순하고 편하게 하면 되는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날씨 같은 인생'이라 흐린 날 뒤에 맑은 날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정한 감정을 느껴야만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쓸데없는 것들에 에너지가 소비되어 방전되고, 힘들다고 칭얼거리고 있다.

처음 보는 할머니 앞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내 인생을 물어보고 앉아있는 내가 얼마나 약해져 있는지가 보였다.



답답하고, 힘들었구나


더 이상 다른 것들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신발을 신고 있는 나의 뒤통수에 대고, 할머니는 따라 나오며 말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내가 원했던 답을 들은 것도 아니고,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역술가를 찾아갈 정도로, 나는 내 삶을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거였다.

불완전함에 대한 불안을 넘는 공포, 불확실함에 대한 걱정을 넘는 망상, 불신에 대한 원망을 넘는 분노 등을

안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리석은 내가 가여우면서 애틋해진 하루다.




[ 그렇게 살아가는 것, 허회경 ]

https://youtu.be/hmOOkmynj4A?si=pL_cCbdJStl226q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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