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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Nov 28. 2023

사랑받는 게 어색했던 어린 날이었다

상담치료 2일 차

처음 상담을 하고 3일이 지나, 2차 상담을 위해 센터에 갔다.

어색한 웃음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틀동안 상담치료를 지속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갈등이 계속 있다. 

선생님을 보니 막막했다. 정확한 느낌은 숨이 막히는 듯, 조금 답답했다.

선생님이 지난주 첫 상담이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었던 경험도 처음이고, 뭔가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그렇다고 후련한 것도 아니었고요"


다시 혼자서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던 얘기를 했다.

"8살에 입학식에 혼자 갔던 걸,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부모님은 그러셨을 거예요. 20대까지는 그 이야기를 재밌다고 생각하고 웃으면서 말했었어요. 그만큼 나는 자립심이 강했고, 자주적인 아이였다면서요. 혼자서 뭐든지 잘 해내는 아이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돌아보니까 이해가 더 안됐어요. 어떻게 초등학교 입학식에 8살짜리를 애를

혼자 보낼 수 있었지? 

사실, 첫 상담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나는 선생님이 내 말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굳이 상담내용의 기억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다시 말하는 나를 보고, 나도 놀란 부분이었다.



"큰 언니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고, 작은 언니는 성악이나 연극처럼 활동적인 걸 좋아했아요. 저는 중학교 때 무용선생님이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서, 무용을 시켜보자고 했었는데 아빠의 대답은 늘 같았어요. 

예체능은 3살 때부터 재능이 보인다고... 아빠는 지금도 여전히 일관적이세요. 재능에 대한 칭찬이나 격려에 

인색하시고, 객관적으로만 판단하시는 편이에요"


"아버님의 이상이 높으셨군요."

"그런 건가요? 아빠는 제가 고3 때, 간호학과에 진학하라고 하셨어요. 여자는 살다가 이혼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일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좋은 일은 약사나 선생님 같은 전문직이 좋은데, 너는 공부를 못하니까 간호학과에 가라고 하셨어요"

"완전히 틀린 말씀도 아니에요.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건 맞아요"


"지금 말씀드리면서 생각해 보니까, 왜 저는 당시에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작은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상도 많이 받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잘하는 게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칭찬을 하신 적이 없어요. 대학생 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인사를 드린다고 만나적이 있었는데, 쟤는 널 뭘 보고 좋아하냐고 하셨거든요. 서울에 대형병원에 취직을 했을 때도, 몇달을 밤새 공부한 저에게 운이 좋은 애라고 하셨어요. 직장을 그만둘 때도, 얼마나 힘들어서 사직을 하는 건지 물어보시지 않고, 그저 대형병원에 아는 사람이 한 명 없어지는 거에 아쉬워만 하셨던 것 같아요"


"23살에 서울에 혼자 왔는데, 매일매일 울었고 힘들었어요. 그냥 견뎌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병원에서 선배들이 혼내도 울지 않았어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퇴근 후에 자취방에 가서 울다가 잠들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어요.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러고보니, 8살짜리가 혼자서 입학식에 갔을때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늘 혼자서 해결해야 했었네요.

대신 병원에서 좋은 선배들을 만났어요. 제가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한다고 모두 나를 좋아해줬어요.

실제로 그랬어요. 

저는 다른 동기들보다 적응이 빨랐고, 실수를 한 적도 없었어요.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수가 있었어요.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모두 다 나를 좋아하는 거요. 그래서 몸은 힘들지만 행복했고, 즐거웠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 정말 행복했네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또 이상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거요. 심지어,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도 생겼어요. 하지만 믿을 수 없었어요. 어색했고, 이상했고, 나를 사랑한다는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내가 일을 잘하기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었어요.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그냥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밀어냈어요.

나도 같은 마음이면서도 그 사람들의 진심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 이후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선생님이 어떤 말로 답을 하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다음엔 꿈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아마도 반복되는 꿈들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더 자주 상담을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이틀 후에 다시 상담일을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상담하다가 깨달은 게 있었다. 여지껏 나는 취업을 하고 일했던 나의 초년생 시절을 늘 힘들었다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육체적으로 지치고 버티기만 했었던 20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선생님과 상담하다가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하고,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인해 새로운 내가 만들어졌고, 사랑받았고, 이후의 삶을 덕분에 잘 살아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를 조금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삶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 오면, 시작은 늘 23살로 돌아가 후회하며 거기서부터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잃어버린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곳은 내가 '나다움'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었다.

그때는 그걸 몰랐기에 충분히 즐기지 못했었고, 다음 단계도 몰랐고, 실수를 반복했고,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다.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어색하다 보니, 그게 사랑인지도 몰랐던거다.



집에 오자마자 20여 년 전, 나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던 선배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10년이 넘도록 연락을 내가 거절했었다.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아파왔다. 연락처도 내가 삭제해 버려서 없었다. 왜 그런 방법으로 살아온 건지, 내가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랑을 받는 법도 몰랐고, 그래서 주는 법도 몰라 그저 흘려보낸 '나의 시간들'이 가여웠다.

마냥 나에게 사랑만 주었던 선배에게 연락하지 못하고 지낸 미안함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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