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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Nov 05. 2023

낯선 사람 앞에서 울었다.

상담치료 1일 차


정신건강의학과를 가야 할까?
심리상담센터를 가야 할까?



심리상담을 전공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올해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갈등을 러프하게 이해하고 있는 동생이다.

내가 '상담'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나의 느낌이지만 안도하고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내가 위험하다고 느낀 건 이십 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다.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함수그래프처럼 불안정한 감정들이 최고와 최저를 반복하고 나면 탈진된 기분이었다.

그대로 젊은 날에는 견딜만했었다. 내 안에 쌓아두고, 덮어둘 공간이 있었던 것 같다.


21년 가을부터 시작된 우울감은,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사십 대 후반에 들어 호르몬의 불균형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생리학적 변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몸이 아팠다. 살이 빠지고, 여기저기 아프기를 시작했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들에게, 몸도 마음도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나 :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네언니(A) : 누구야, 너는 자아가 있다. ㅋㅋ

동네언니(B) : 너는 생각이 너무 많더라. 먹고살만하니까, 그런 고민하는 거야.

동네언니(C) : 운동을 해. 그래서 내가 줌바하는 거잖아. 

몇 번의 이런 대화들을 통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보통의 갱년기라고 하는 게, 사춘기의 아이들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비슷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22년, 봄부터 우울은 본격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시작되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들은 짧아졌고,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강박이 나를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점점 더 불안해지고 예민해졌다.  

불면증은 수면제를 먹었다.

심계항진(가슴 두근거림)은 인데랄을 먹었다.

화가 나는 날은 술을 먹었다.

답답한 날에는 타투를 하거나,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도저히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날은, 요가도 했고 러닝머신도 뛰었다.

이것저것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에, 브런치 작가도 신청하고 글을 쓰기도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차가 많이 막히던 어느 늦은 오후, 운전 중에 지하터널을 들어가면서 공황이 왔다.

119를 부르고 싶었다. 무서웠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약을 먹어볼까?

상담치료를 받아볼까? 

그렇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동생에게 물어 그 주에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어두운 상담실에는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 혼자 계셨다.

선생님은 <대상관계 정신분석 이론>에 기초한 상담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었다.

인사를 하고, 낡은 패브릭 소파에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선생님과 나의 사이에는 작은 협탁이 있었고, 티슈가 한통 있었다.

'나는 저 휴지를 절대 쓰지 않을 거야' 

순간이었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 주소는 어떻게 되세요?

나 : 제가 어디 사는지까지 말씀드려야 하나요?

나도 순간, 왜 이렇게 대답이 나오는지 당황스러웠다.


선생님 : 아,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어떻게 상담을 오시게 되셨나요?

나 : 이게.... 혼자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병원 가서 약을 먹으면 빨리 해결될 거 같은데, 그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상담을 먼저 해보는 게 나은건지, 병행하는 게 좋을지 여쭤보고 싶어요.


순서도 없이 혼자서 50분을 뒤죽박죽 떠들었다. 

혼자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나와 선생님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순간 오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한 현타와 몇 초씩 오는 정적들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나 : 내성적이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잘 우는 아이였어요. 늘 언니가 울보라고 놀렸거든요. 초등학교 입학식을 혼자서 갔어요. 장면으로 기억이 되는데 흑백은 아니에요. 어른들의 허리만 보이고, 운동장은 흙바닥이었어요. 조금 쌀쌀한 날씨였고, 사람들의 소리가 웅성웅성 들리고, 사람이 많았어요. 그냥 서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손을 잡았고, 어떤 할머니 선생님이 제 이름을 물어봤어요. 그날의 기억은 그게 다예요.

이 이야기가 살면서 어느 때는 대견스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어요. 나는 초등학교도 혼자 입학할 정도록 독립적인 아이였다... 머 이렇게요. 스물세 살에 서울에 취업이 돼서 처음 왔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도 혼자였네요.

계약서를 쓰던 날만 부모님이 왔다 가셨고 이후로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어요. 


몇 년 된 일인데, 장마철이었어요. 엄마의 심부름을 해야 했는데, 비가 많이 많이 와서 내려가기가 좀 내키지가 않는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엄마가 오다 죽더라도 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감정이 좀 힘들었는데 거절을 하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못 간다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요?

같은 해 가을이었어요. 엄마가 김장을 하신다고 내려와서, 김장을 갖고 가서 언니들한테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그 일을 저는 직장을 관두고 주부가 되면서 매해, 몇 년 동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말씀하신 그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엄마께 제 생일인데, 김장 심부름 하는 거 너무 하지 않냐고 웃으면서 말했어요. 엄마는 "너 생일이 중요한 게 아니고"라고 말씀하셨어요. 생일이니까 와서 엄마랑 같이 밥 먹자 그러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제가 김장보다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그러면서도 더 속상했던 건, 내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고 있다는 거였다.

너무 짜증이 났다.


나 : 당시에 너무 화가 났고, 저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더 이상 그런 심부름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이상한 애, 못된 애가 되었어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일부러 제가 연락을 드리는 일도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거나 원망하는 게 아니에요. 그분들도 나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신 게 그렇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엄마가 되고 보니, 저의 어린 날이 가엽게 여겨지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힘든 건, 이런 일들이 왜 잊히지 않을까 하는 걸까요?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로 아직도 나를 힘들어하고 있다는 게 한심해요.

아직도 내 인생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제가 병에 걸려서 그런 걸까요?




선생님 : 앞으로는 진짜 본인 이야기를 하셔야 해요. 그게 쉽지 않으실 거예요. 하지만 하셔야 해요.

수치스러울 수도 있고, 조금 더 조심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어요.

잠깐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나 : 그런데, 제가 선생님을 어떻게 믿죠? 사실은 그게 자신이 없어요. 제가 그게 가능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아요. 그런데, 살면서 누군가에게 내가 힘든 부분을 말해본 적이 없어요.

     

다음 상담일을 약속하고 나와, 차에 시동을 걸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한테 내 이야기를 순서도 없이 떠들어 대다가 울고 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랬다.

나는 사람들에게 진짜 내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나는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자주 울었다. 왜 우는지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고. 속상하냐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속상하고 힘든 감정은 말할 필요가 없이, 그냥 견뎌야 하는 걸로 익혔다. 

이후에 내가 참을 수 없는 선을 넘으면, 곧바로 분노했고 공격했고 단절했다.

친구나 연인들에게 웃고 있는 즐거운 '나'만 보여줬고, 속상하고 슬픈 마음은 숨기고 누르다가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그들을 버렸다.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그게 내가 습득한 방법이었고, 편한 방식이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머릿속의 회로를 거꾸로 돌려서, 내가 달라지고 싶은 간절함에 상담센터를 찾아간 것 같다.

다음 상담까지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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