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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Mar 17. 2021

EP32. 아이들이 꿈이 뭐냐고 물었다

 휴직한 지 보름째, 학교에 머무는 꿈을 자주 꿨다. 평소 같으면 개학이라 너무 바쁜 3월인데 나만 지나치게 한가한 요즘, (물리적으로) 배가 부른 채 배부른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한편으론 그만큼 사랑하는 일을 택해서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였나, 오래전 함께 일하던 동료 교사에게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7년 만에 걸려온 전화라 당황스럽고 낯설었으나 혹여 좋은 소식을 알리려나 싶은 생각에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7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 친구의 목소리는 그대로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안 좋은 일이라는 걸 직감하며 혹시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다. 얼마 전 치른 임용고사에서 아깝게 떨어졌다며 기간제 교사 생활을 계속해도 될지 앞이 캄캄하다고 안부를 전했다. 많이 뽑지도 않는 과목을 가르치는 친구라 정말 오랜만에 난 교사 TO에 아이들 가르치며 최선을 다해 1년을 보냈는데, 허무하게 낙방한 결과 앞에 참담한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아는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나보다 네 살이 어린 그 친구의 교사 연차도 어느덧 8년째 접어들어, 연애도 결혼도 모두 뒤로 한 채 맹목적으로 달린 1년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도 지나온 시간이었으니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정말 너무 허무하지. 잘 알아요, 그 마음. 그런데 쌤 학교 너무 좋아하지 않아요?


 이미 오래전,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한 차례 한 직후 이직을 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 친구의 지난 시간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받았다. 그 친구가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고 학교라는 공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기에 정해진 답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란 것도 물론.


 “좋아하죠. 맞아요. 그런데 결혼도 안 하고 연애도 안 한 지 오래됐고, 이대로는 뭔가 불안하고 자꾸 초조해요. 이게 맞는 걸까요?”


 그렇지.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난제는 고용 불안정과 함께 늘 공존했다. 한 해 두 해 나이는 먹어가고, 비정규직으로 미혼인 채 삼십 대를 보내는 게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안정적이지 않으니 결혼이라는 울타리라도 가져야 조금은 상쇄된다고 여기는 이상한 논리 앞에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채 기약할 수 없는 임용고사에 일희일비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다. 생업을 등진 채 공부에만 매진해도 될까 말까 한 시험을 학교 일과 병행하며 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으나, 어쩐지 서운하다. 마냥 흐르는 시간도 야속하고, 학교에 대한 설레는 마음 또한 변치 않아 서러워지기 일쑤니까.


 “그런데 쌤, 결혼이 하고 싶어요?”


 얼마 전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영 이상하다 여기겠지만 삼십 대 후반이 돼서야 결혼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놓아버릴 줄 알게 되었기에 영 생뚱맞은 것도 아니었다. 아직 놓아버리지 못한 사람에겐 세상 가장 무거운 책무라는 걸 잘 아니까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네, 미치도록 하고 싶죠.”

 

 울먹일 정도로 무겁던 그 친구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생기가 돌았다. 특유의 장난기 어린 밝은 어투도 오랜만이었다. 워낙에 씩씩하고 밝은 친구라 결혼이 그렇게 미치도록 하고 싶은 줄은 몰랐다. 그 친구와 함께 근무하던 때의 내 마음이 딱 그랬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 대답이 곧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 미치도록 하고 싶다는 그 마음으로 미친 듯이 맹목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니던 내 지난 시간들도 함께 떠올랐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초조했다고 하기보다는 결혼을 하면 출산을 해야 하고 노산이 되어 가는 내 나이 앞에 당당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오는 소개팅을 마다하지 않으며 전부 소화해내던 난 도장 깨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버텼다. 그래서 결국, 얻은 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놓아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시간도 감정도 큰 소모였지만, 그만하면 헛되지 않았다. 결혼 앞에 산전수전 다 겪은 후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꽂혀서 적당히 괜찮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쪽을 택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고 그 친구도 그 말에 동의하며 결혼에 대한 설왕설래를 마무리했다.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버린 현재가 더 힘들다는 그 친구의 말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곤, 그럴수록 자신에게 집중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는 말뿐이었으나 어쨌든 우리의 결론은 나름 희망적이었다.


 “쌤, 아이들 좋아하고 지금 하는 일이 다른 일보다 좋은 건 변치 않잖아요. 그러면, 남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그거 하나만 보고 해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때가 있지만 그 ‘때’라는 건 정해진 정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흔에 결혼해서 마흔하나에 아이 낳을 준비하는 나를 보며 위안을 얻어요.”





 쌤은 꿈이 뭐예요?


 실용 국어 시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하면서 꿈과 진로에 대해 생각해 봐야  때라고 이야기했더니, 되려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나이 마흔에 꿈이 뭐냐고 묻는 녀석들의 저의야 수업을 조금이라도  하겠다는 꿍꿍이가 크겠으나    꿈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내 꿈? 일단 학교에서 너희들을 가르치겠다는 일차적인 꿈은 이뤘고, 너희들이 사회에 나가서 부당한 대우받지 않고 자기 역할 톡톡히 하면서 각자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내 꿈이지.”


 교과서적인 답변에 아이들은 야유했고, 믿든 말든 내 진심이라고 말하며 수업을 마쳤다. 학원 강사를 오래 하면서 스스로 만족할 만큼 돈을 벌 정도로 안정이 되어 갈 무렵,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학교로 가겠다는 내게 굳이 학교로 가려는 이유가 뭐냐 묻는 이에게 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교직이 제 꿈이라서요.”


 뜬구름 같은 대답만 남기고 학교로 온 지 12년째. 자신의 직업을 천직이라고 여기면서 만족하고 푹 빠져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꿈을 좇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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