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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an 07. 2021

EP31. 우울할 땐 새우버거가 먹고 싶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기사 속 어제의 퇴근 길

 

 어제는 폭설이 내렸고, 일요일까지 이어질 한파에 길가는 꽁꽁 얼어붙었다. 날은 좀 추워도 마음만 먹으면 집 앞이라도 걸을 수 있었는데, 그것마저 어려워 이틀 연속으로 바깥공기는 구경조차 못 했다. 나이 든 임산부라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넘어지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는 신랑은 내 몫까지 분주하다. 살뜰히 마음 쓰는 신랑에, 딱 맞춘 방학까지 감사할 일 투성이지만 천성이 방랑이라 영 답답해서 오랜만에 마음이 축 가라앉았다. 출근하는 신랑에게 늘 밝은 얼굴로 배웅하고 싶은데 오늘은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나의 소울푸드, 새우버거


 이렇게 한없이 가라앉을 때 난 늘 햄버거가 먹고 싶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던 말에 빗댄다면 나의 소울푸드는 햄버거일 것이다(정확히 말하자면 롯데리아 새우버거). 오늘도 영락없이 난 새우버거를 먹어야 했다. 집에서 2km 떨어진 그곳까지 산책하듯 걸어서 다녀오든, 최소금액을 채워 배달을 시키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추운 날씨 눈까지 내린 길은 빙판일 게 뻔하니 걸어가는 건 엄두도 안 나고, 얼마 전 배달 앱을 통해 4회 주문하면 만 원을 환급해 주겠다는 정부 발표도 있었으니 마침 잘 됐다. 배달 앱을 켜고 롯데리아를 클릭했다. ‘배달 준비 중’이란다. 설레던 마음에 찬바람이 훅 끼쳤다.


 한 시간을 기다리며 새우버거가 먹고 싶단 욕망이 잠잠해지길 바랐다. 한 번 꽂히면 사그라들긴커녕 더 확고해지는 몹쓸 집착이 시작됐다. 여전히 ‘배달 준비 중’이다.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집에 있는 걸로 대충 허기를 달래긴 싫고 다른 햄버거집을 검색하니 최소금액과 배달비가 지나치게 비싸다. 그러다 결국, 난 주문을 포기했다.


 최소 주문 금액 15,000원에 배달비 3,000원이면 18,000원의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한다. 혼자 하는 식사비로는 지출이 과하다. 내가 배달 음식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늘 내 욕망에 제동을 건다. 그런데 그 제동에 완벽한 브레이크가 걸린 이유가 평소와는 좀 달랐다. 어제의 폭설이 주문을 포기한 결정적 이유였으니 말이다.


나도 나서기 귀찮고 험난한 길인데,
배달하는 분들은 오죽할까.



 궂은 날씨, 외출이 어려우니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당연한 공식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원래 배달 음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나치게 고생하거나 오늘처럼 기분이 울적한 날이면 나에게 주는 선물이랍시고 과한 식사비와 열량을 기분 좋게 허락하곤 했는데, 나만 편하자고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


집에서 만들어 본 햄버거 대신 샌드위치


 결국 ‘이가 없으면 잇몸’이니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햄버거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버거용 빵은 없지만 냉동실에 두 장씩 소분해 둔 식빵으로 대신하고, 햄버거 패티 대신 떡갈비, 양상추 대신 샐러드 야채, 치즈 한 장, 계란 하나, 베이컨 약간, 토마토 하나를 넣고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마요네즈, 피클을 넣어 만든 수제소스를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리니 나름 근사한 한 끼 식사가 완성되었다. 수제 버거에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우리나라의 배달 문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어디 배달뿐이랴. 외국만 나갔다 오면 우리나라의 극진한 서비스가 눈물 나도록 감사해서, 없던 애국심까지 샘솟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감정 노동과 노고가 존재한다. 우린 그걸 자주 잊고 당연한 듯 소비한다. 눈길을 뚫고 위험한 배달을 감행하는 분들의 인증샷 속, 어깨 위 하얗게 쌓인 눈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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