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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Apr 14. 2021

10. 금요일 밤, 난 어김없이 울었다

 


 

 아이의 존재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시작한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빼놓지 않고 본방으로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금쪽같은 내 새끼’다.



 세상에 수많은 케이스의 부모와 아이들이 있고 문제점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처음 아이들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았을 때, 같은 어른의 입장에서 부모가 가엽다는 마음으로 관망하듯 상황을 관찰하였다. 이유 없이 끝을 모르고 울거나 떼쓰는 아이, 부모에게 삿대질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 언행이 선을 넘는 아이, 학교나 유치원에서 관계를 거부하는 아이 등 말 그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이 불편해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금쪽이는 어떤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하기 전, 프로그램의 주 패널인 오은영 박사님은 부모에게 본인의 자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난감해하는 부모에게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면서 “저는 아이가 왜 그러는지 너무 이해가 되는데요?” 혹은 “금쪽이는 문제가 없는 아이예요.” 등의 말로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희망을 준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도통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답답한데 문제가 없거나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니. 솔루션을 떠나 아이의 속마음 인터뷰를 듣기 전까지 나의 감정과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요.”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슬픈 거라 엄마한테 미안해요.”
“잘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안 돼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철이 없어 자기만 알고 부모의 속을 썩이는 아이들이라고만 여겼던 내 생각은 편협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어른의 잣대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보통의 상식으로 아이들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급급했던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엄한 부모님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혼자 울던 때가 있었는데 어른이 돼서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가 되기 이전에 좋은 어른이고 싶다고 매년 다짐하며 살아온 게 부끄러워질 만큼 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꾸밈없이 솔직한 아이들의 진심 앞에 울고, 지난 어린 시절이 떠올라 또 울고, 아이의 마음 앞에 눈물 흘리는 아이 부모의 모습에 우리 부모님이 떠올라 또 울었다. 부모 자식 간이라는 게 너무 당연한 관계라서 쉽게 무심해지고 이렇게 대뜸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미어지듯 애틋해질 수 있다는 걸 놓치고 살기도 한다.


 결국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라고 여기는 부분에 정작 문제는 없었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라서 낯설고 어렵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스스로를 채근하다 아이를 다그치고, 아이도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만난 세상이 부모라서 그게 전부인 현실 앞에 고군분투한다. 그 모습은 전부 다르지만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한결같다.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의 설레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행여나 잘못될까 조심스러워 노심초사하고, 아이의 첫 심장 소리와 태동에 뭉클하고, 처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바라던 부모의 벅찬 마음은 어느새 사그라든 채 현실 육아 앞에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잠 못 드는 날이 쌓여갈수록 육체는 점점 지쳐간다. 허나 동시에 아이가 처음 뒤집는 순간, 걷는 순간, 엄마 혹은 아빠라고 첫 입을 뗀 순간에 감격스럽고 매 순간 아이의 웃음에 녹아내리는 게 또 부모의 마음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고 복잡다단한 게 부모 자식 간이다.



 오늘 아침, 신랑과 밥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엄마를 기쁘게 할 마음으로 선물을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엄마의 시큰둥한 반응에 다투고 서먹해졌다는 남자 고등학생의 사연을 접했다. 방송을 통해 엄마와의 통화로 무례했던 자신의 태도에 대해 사과할 시간을 주겠다는 진행자의 말에 쭈뼛대며 꺼낸 아이의 투박한 말 몇 마디가 진심이라 참 예뻤다. 그리고, 그 말 끝에 한참을 망설이다 꺼낸 사랑한다는 말과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또, 모른 척했지만 어머님한테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냐는 내 물음에 약간 눈시울이 붉어진 신랑의 얼굴 또한 놓칠 수 없는 순간이 되어 먹먹해졌다(먹던 찌개가 매워 흘린 눈물을 내 감성대로 착각한 건 아니겠지?).




 또 하나의 새 생명이 내게로 오고 있고, 당연한 듯 맺어질 엄마와 딸의 인연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아직은 미지수라 설레면서도 두렵다. 내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오늘도 우렁차게 노크해대는 너의 존재 앞에 감사한 이 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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