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족이 되어 간다
여보, 다온이 밥 먹이다가 의자에서 떨어졌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한 시간 정도 아침 운동을 다녀온 사이 한바탕 야단이 났던 모양이다. 베이비 타임(아이의 밥과 배변과 잠을 기록하는 육아 기록 앱)에 아이가 낮잠 자는 중이란 기록을 확인 후 귀가하면서 잘 먹이고 잠까지 재우다니 대단하다고 신랑에게 엄지 척을 날릴 참이었는데, 그새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다니. 마루도 아닌 타일로 시공된 바닥이라 늘 걱정스러웠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을 아이 생각에 미간부터 찌푸려지며 “어쩌다가!”라는 말이 툭 불거져 나오고 말았다. 그래도 조심성이 있는 편이라 넘어지려는 쪽 팔에 잔뜩 힘을 줘서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차분히 설명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이 잔뜩 묻어나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가 느끼는 물리적 아픔보다 본인 때문에 아이가 다쳤다는 생각으로 더 크게 마음 아파하며 아이를 보듬었을 남편의 마음을 먼저 헤아렸어야 했다.
여보가 많이 놀랐겠다. 많이 안 다쳤으면 됐지. 돌 다 되도록 어디 부딪히는 데 하나 없이 키우는 집 별로 없어. 우리 이 정도면 엄청 조심조심 잘 키우고 있는 거야.
내 말을 듣자마자, 사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이가 우는 것보다 더 크게 울었다고 실토하면서 남편은 눈물을 글썽였다. 애는 잘 봐야 본전이고 애 본 공은 없단 말을 참 싫어하게 된 내가 혼자 고군분투하며 아이에게 온 에너지를 쏟은 남편에게 할 타박은 아니었는데. 한 시간이든 하루 종일이든 최선을 다해 나와 아이에게 전념하는 남편 덕에 난 공동 육아 중이라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남편은 가족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출근이 비교적 늦어 오전 시간에 함께 육아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퇴근이 늦는 바람에 아이의 밤잠을 책임질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아이가 몇 시에 깨든 벌떡 일어나 첫 분유를 타 주고 내가 분유를 먹이고 나면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아이의 부족한 잠을 채워준다. 밤새 보초 서느라 깊은 잠을 못 잔 나를 위한 그의 배려 덕에 난 그렇게 한두 시간 단잠을 잘 수 있다. 아이가 완전히 기상하고 나면 우리 가족은 진짜 아침을 시작하는데 오전 내내 아이를 놀아주는 것도 목욕을 시키는 것도 모두 남편 차지다. 그 사이 나는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고 우리의 아점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아이와 놀아주며 틈틈이 설거지와 빨래, 청소까지 부지런히 해내는 남편의 행동엔 빈틈이 없다. 늦게 퇴근해 씻고 자기 바쁠 텐데 게으름 피우는 법 없이 가족을 돌보느라 오전을 다 보내는 게 안쓰러울 만큼 남편은 늘 부지런하다. 그런 아빠의 정성을 아이가 모를 리 없다. 낯을 가리기 시작하는 요즘, 부쩍 아빠에게 매미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 충분히 잘 해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보기에 신랑의 좋은 아빠 점수는 차고 넘친다.
나 오늘 다온이 안고 울었어.
왜? 다온이가 속상하게 했어?
요즘, 열한 시가 다 되어 퇴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를 다독이는 것으로 신랑의 하루도 마무리되곤 한다. 일명 ‘밥태기’가 찾아온 건지 아이를 쫓아다니면서 어르고 달래 가며 먹이다 지친 난 조바심이 나고 속상해지는 날이 잦아졌다. 입을 꾹 다물고 외면하거나 전전긍긍하다 겨우 먹인 걸 도로 뱉어내는 아이를 보며,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수고로움을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건 아닌지 점검하고 반성하지만 초라하게 식어버린 이유식만큼이나 내 마음도 초라해져 아이에게 자주 토라지곤 한다. 결국 남은 이유식을 버린 후 상한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아이를 외면한 채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며 마음을 달래곤 하는데, 눈치 빠른 아이는 엄마가 가는 곳마다 안아달라 쫓아다니며 울며 보챈다. 결국 숨 넘어가게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나도 엉엉 울어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울어 젖힌 후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곤히 잠이 들었고, 속상한 마음을 눈물로 쏟아내고 지쳐 잠드는 것까지 나를 쏙 빼닮았음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그러나 곧, 졸린 애를 붙잡고 뭘 한 건지, 돌도 안 된 아이와 감정 씨름을 한 내가 엄마가 맞긴 한 건지 엄마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던 아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에게도 그 나름의 흐름이란 게 있는데 내가 정해놓은 성장 공식대로 움직이길 바란 건 아니었나 반성까지 더해 마음은 더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오늘도 괜찮은 엄마였고, 아빠였다. 이 말 참 좋지 않아?
나이 먹고 낳은 귀한 아이에게 별 거 아닌 일로 참을성 없이, 어른답지 못하게 처신한 것만 같아 부끄러워 자책하던 마음은 남편의 따스한 경청과 우연히 발견한 문구 하나로 차분해졌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다.
서로의 노고를 다독여주고, 자다 깨 졸린 눈 비비며 엄마 아빠 품에 파고들어 채 마르지도 않은 눈물을 닦아내고 밝게 웃어주는 아이의 미소로 위로받는 우린 오늘도 충분히 괜찮은 엄마였고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