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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eul Jan 09. 2024

결혼 10년 만에 독립했습니다.

결혼했지만 독립은지 못했습니다.

2013년 우리는 5년 연애 끝에 가족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만나 20대 중반에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독립은 하지 못했다. 모아둔 돈은 2천만 원이 전부였고, 그 돈은 결혼식 비용 및 혼수 준비로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린 시댁살이를 결정했고, 가정은 만들어졌지만 독립은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낡은 시댁집을 고칠 돈으로 그냥 월세 살이를 시작했어도 되었을 것을 우린 월세 살이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내 경험상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는 게 맞았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겁이 났고, 도전보다는 안정감을 선호했으며, 나는 새로운 가족과 잘 지내리라는 자부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나의 자만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았다. 불규칙한 홀시어머니와의 생활은 결혼 반년만에 새 생명을 잉태한 나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갱년기와 알코올의존증, 우울증을 앓고 있던 (다 나의 추측이지만 돌이켜 보면 거의 맞다고 볼 수 있다.) 시어머니는 임신소식에 시큰둥했고, 첫 손주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는  사돈처녀인 나의 동생 앞에서 산모 수첩을 던지는 악행을 저질렀다. 나는 서운해서 눈물을 흘리고 동생은 분노했으며, 남편은 그저 힘없이 네가 이해하라는 식이였다.


당장이라도 이 집을 나가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모아둔 2천만 원은 전부 결혼식과 신혼여행, 그리고 이 낡은 집을 고치는 데 사용했다. 그렇기에 단 무일푼인 우린 나가지도 못했다.

문제는 악몽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였다. 곧 시작된 입덧은 나를 지옥으로 이끌었는데, 시어머니의 불규칙한 생활이 여기서 정점을 맞이했다.

입덧이 조금 가라앉아 새벽에 잠이라도 청하려면 갖은 고기와 만두 등으로 술안주를 만드는 어머니 때문에 나는 다시 입덧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어느새 몸무게가 36kg까지 빠지고,  연애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문제로 트러블이 생기면서 나는 결국 조산의 위험을 안게 되었다. 대학병원에 입원을 함과 동시에 우리는 처음으로 빚이라는 걸 지게 되었다.


그때는 정부 지원이 되지 않았던 터라 고위험 산모는 그대로 모든 병원비를 떠안아야 했고, 산모에게 투약하는 대부분의 약은 비급여 항목의 약들이었다.

나는 돈걱정에 제발 급여 항목약품에 부작용이 없길 바랐지만, 신은 여전히 내편이 아니었다. 36주, 안정기가 되어 퇴원한 나는 몇 달간의 입원으로 몇 천만 원이 넘는 빚이 생기고 퇴원한 다음 날 양수가 터짐과 동시에 출산을 했다.


출산을 한 당일은 그래도 행복했다. 온 가족의 축복 속에 아이는 태어났다. 그때만큼은 어머님도 기뻐하셨다. 그렇게 모든 게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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