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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eul Jan 10. 2024

독립의 시작. 무일푼으로 독립하기.

우리에겐 천만 원이 전부였다.

산후조리원과 친정에서의 산후조리가 끝나고 다시 어머님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우린 다시 부딪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강아지였고, 두 번째는 육아였다.

정말 사소한 일들이 수없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문제는 남편의 태도였다. 남편은 중간에서 중재를 잘하지 못했고 우왕좌왕하며 어머님 편을 들기 일쑤였다.

형님네와 이미 사이가 벌어진 어머님이 안쓰러운 건지, 남은 게 자신 밖에 없다고 믿었던 건지, 뭐가 되었든 나는 남편이 나와 아이보단 어머님이 우선이라고 느껴졌다.


결혼 4년, 우리의 갈등의 골은 깊어질 때로 깊어졌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친정으로 건너온 나는 남편과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고, 동생이게 모든 치부를 보이며 집 나가는 결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며 나는 강가를 보며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늘 자신 있었는데, 그래서 시모와 못 지내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그 일이 나의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5년을 사랑해 결혼한 남편이 이렇게 바보 같은지도 몰랐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모아둔 돈은 없고, 시어머니는 문자로 TV나 맘카페에서 보던 흔해 빠진 악담을 보냈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마음 한편에 이혼하면 아이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아마 그날 밤 남편이 울면서 빌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형의 도움으로 제정신을 차린 남편은 어머님보단 나와 아이를 택했고, 우린 그날로 독립을 결정했다.

하지만 우린 무일푼에 오히려 빚만 있었다. 친정도 여유롭지 않기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다고 어머님은 집을 고치는데 들었던 천만 원을 내어 주며 독립을 허락했다.


우린 천만 원으로 10평대 방 두 개짜리 작은 빌라에 월세로 작은 보금자리를 얻었다. 1000에 35만 원. 그게 첫 독립의 시작이었다.


월세 살이는 쉽지 않았지만, 아이의 어린이집을 집 근처로 알아보고 나는 곧바로 맞벌이를 시작했다. 

시댁살이 할 때도 간간히 알바를 했지만 이렇게 정식 취업을 한건 결혼 후 처음이었기에 내심 설렘을 가지고 시작했다. 나의 일터는 백화점 부매니저로 그동안의 알바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우린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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