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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그들이 나와 대체 뭐가 다른데

내 팬은 내가 만든다

by 잇문학도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업로드해

매년 초가 되면 한국에서는 의례 진행하는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바로 학생들의 장래희망인데요. 희망직업을 조사하는 이유는 유행하는 직업의 흐름이 아주 명확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인기가 급부상하다가 순위권에서 사라져 버린 '공무원'도 이러한 흐름에 포착돼죠.


오래전부터 어린이들에게 연예인은 미래에 되고 싶은 선망 직업이었습니다. TV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노래가 있을 정도니까요.


의사나 교사는 항상 상위권에서 벗어나질 않는군요


'TV에 내가 나왔으면'은 '구글에 검색했을 때 내가 나왔으면'으로 변화했습니다. 어느새 유명인의 자리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가 차지했습니다. 쇼츠와 유튜브 세상이 오고, TV는 뒷방 노인이 되었죠.


어른들은 연예인을 '딴따라'라며 비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명해지면 어디서 굵어죽지는 않고 평생 먹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연예인은 예전만 못합니다. 유명인의 한 부류일 뿐이죠. 이제는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거든요.



삼손이라는 초인적인 괴력을 가진 인물이 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인물인데요. 삼손은 머리카락이 힘의 원천입니다. 머리카락이 잘려버리자 모든 힘을 잃고 말죠. 연예인들은 팬이 바로 힘의 원천입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 즉 팬덤이 중요하죠.


한 명의 연예인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재능 있는 사람을 캐스팅하고 훈련시키는 기획사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중들에게 노출시키는 TV라는 매체가 필요했고, 아이디어 넘치는 PD들이 방송국에서 TV 콘텐츠를 만들었죠. 연예인 한 명의 노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팬덤이었고 대체할 수 없는 거대 권력이었습니다.


기획사(인재)-TV(플랫폼)-방송국(콘텐츠) 삼위일체는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콘텐츠 플랫폼과 스마트폰이라는 일진이 등장해 이들의 연대를 마구 두들겨 팼거든요.


이제는 한 명의 개인이 스마트폰만 있다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거나 유통시킬 수 있습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만들어낸 사람들이죠. 초창기에 이러한 사람들은 아쉽게도 방구석 연예인 정도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마리텔'이라는 프로그램이 이러한 영상 플랫폼을 컨셉으로 방송을 제작했고요. 하나의 유행 정도로 치부되었습니다.



마침내 방구석 연예인의 영상은 플랫폼을 타고 전국으로, 심지어 글로벌로 퍼졌습니다. 마침내 타지 먼 곳에 있는 아프리카 친구가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 영상을 볼 수 있죠.


이제는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가 아니라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업로드해"가 되었습니다.


스타가 아니라 당신과 비슷한 유명인일 뿐이랍니다

방구석 연예인은 이제 '인플루언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명세와 팬덤으로 수익을 얻는, 연예인에 꿀리지 않는 슈퍼개인이 되었습니다. 기획사와 방송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도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인기와 영향력을 얻었기에 누구보다도 선망의 대상이 도었습니다. 연예인보다 구독자와 팔로워가 많은 이들도 있죠.


우리는 이들에게 열광했습니다. 연예인들에게만 붙였던 '스타'라는 수식어도 나눠줬습니다. 유튜브 스타, 틱톡 스타, 인스타 스타. 이렇게 말이죠. 그들은 플랫폼을 상징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등장하자 우리 개인들은 연예인에게도 이처럼 친근하고 현실적인 매력을 요구했습니다. 과도한 표장이나 뻔한 언행은 거부했죠. '가짜'가 없는 날 것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고요.


결국 연예인들은 슈퍼개인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에 도전장을 내밀 수밖에 없었습니다. 틱톡과 유튜브에 슬슬 TV스타, 무비스타들이 등장했죠. 이제 거의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인플루언서들과 콜라보 채널을 운영합니다. 우리는 스타가 아니라 그저 팬들과 똑같은 조금 더 유명한 사람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인플루언서들처럼요.


EXO 백현, 뉴진스 같은 가수들 뿐만 아니라 강동원이나 신계경 같은 연기자들도 일상을 대중과 공유합니다. 개그맨들은 내친김에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요. 먹방 콘텐츠를 올리는 가수 성시경이나 최자 같은 케이스도 있습니다. 아, 격투가 추성훈 선수도 빼놓을 수 없군요.


무엇을 해도 기대 이상을 해주는 추성훈 유튜브


유명해지고 싶니?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들라

이전에는 방송에 한 번 더 나가려면 방송국에 요청을 하거나 홍보를 해야 했습니다. 유명해진 다음에도 어린 PD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토크쇼 단골소재죠. PD들이 대중이 무엇을 볼 지, 누구를 볼 지 결정했습니다.


플랫폼에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리즘이 정합니다. 연예인이든 인플루언서든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야 노출되니까요. 선택만 받는다면 플랫폼 가장 앞에 등장합니다. 폭발적인 노출과 인기는 순식간이고 자고 일어나면 스타가 되죠.


특이점이 와버린 유튜브 알고리즘


사람들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을 연예인들만큼 인정하고 응원합니다. 보통사람들의 진검승부처럼 보이기 때문인데요. 어떠한 로비나 권력도 없이 오로지 대중들의 반응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때, 연예인들의 유튜브 진출을 ‘반칙’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예인들조차 플랫폼에서는 선택받지 못하곤 했거든요.


이제는 플랫폼에서는 오디션 한 번 없이 알고리즘으로 발굴되는 유명인들도 생깁니다. 글로벌 슈퍼스타인 '미스터비스트'도 그중 하나고요. '피식대학'과 '너덜트' 같은 개그 채널은 TV에 나갈 기회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신인 개그맨들이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학벌이나 경력이 없어도 자신의 투자 수익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람들은 제2의 워런버핏이 되었고요. 투자 강사가 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바로 화장법을 보여주는 레오제이 같은 인플루언서들은 뷰티 산업의 핵심이죠.


콘텐츠와 재능, 알고리즘의 선택만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우리는 연예인들을 예전처럼 대단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묻습니다. 왜 우리가 당신을 플랫폼에서조차 선택해야 하는지 말이죠.


슈퍼맨에서 어벤저스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 성시원은 1세대 아이돌 HOT의 광팬입니다. 그중에서도 '토니 안'을 좋아하죠. 성시원은 친구가 젝스키스 팬으로 변절하자 인연을 끊을 각오도 합니다. 오래전만 해도 저는 HOT편인지 잭키편인지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둘 다‘는 선택지가 아니었죠.


‘둘 다’를 넘어 '모두 다’의 시대가 왔습니다. 단 한 명의 스타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여럿 인플루언서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셈인데요. 여전히 “난 영원히 당신의 팬!”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야별로 "요즘 OO 유튜버가 제일 좋더라"로 바뀐 경우가 많죠.


그렇게 팬덤은 다양해지고 아주 개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구독하는 인플루언서가 다양한 만큼 우리의 취향도 다양해집니다. 슈퍼맨이 아니라 어벤저스를 꾸리는 겪이고요. 어벤저스는 때로는 퇴출되거나 은퇴하고 새롭게 영입도 됩니다. 어떤 어벤저스를 마음속에 꾸리고 있는지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취향과 팬덤은 더욱 다양해집니다.


물론 야구팬들은 이런 이야기에서 예외입니다. 그들은 대체, 왜..


예전에는 팬이 무작정 스타를 믿어주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상한 스타를 좋아하는 건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플랫폼을 통해 '좋아요'와 '구독'으로 무명인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본 경험은 개인들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동의 없이 천상계에 있을 수 없음을 알았죠. 그러니 팬이었다고 해도 스타들의 이슈에는 중립기어를 두고 지켜보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연예인도 공인이라는 주장보다 평범한 개인이라는 의견이 상식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행 예능을 보면서 "연예인들은 놀러 다니면서 돈 버니까 꿀 빨아서 좋겠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들이 꿀 빨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겠냐"면서 감정이입하는 여론도 형성됩니다. 여기에 "사실 연예인이 꿀입니다. 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연예인은 찬사까지 받습니다.


햄버거 가게 그만하시고 빨리 돌아오세요


인플루언서 > 연예인? 새로운 '계급 역전' 현상

성공과 부의 아이콘은 이제 연예인이 아니라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들입니다. 원래 나와 닮은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법이니까요. 인플루언서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도 혹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적어도 나와 크게 다른 사람은 아니구나" 위로와 기대와 동경의 감정을 가집니다. 이들이 연예인들보다 더 돈도 더 잘 버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보다 사회적 영향력까지 더 큰 것은 사실입니다.


인플루언서들의 특징은 자신이 브랜딩 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즉, 게임하면 겜브링, 패션하면 미지우, 먹방하면 쯔양, 하는 식인 거죠. 개인 브랜딩이 잘 되어 있다는 건 광고주들에게도 매력적입니다. 기존 연예인들도 결국 ‘개인 브랜드’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브랜딩과 함께 인플루언서들은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합니다. 경제적인 권력과 함께 발언의 권력도 가지죠. 그들에게는 채널이 있거든요.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무너뜨린 그들은 자신의 채널로 누구에게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권력이 방송국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갔거든요.


권력이란?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들도 많습니다. 아예 정치적 채널을 시작으로 커지는 인플루언서들도 있고요. 사람들은 과거 연예인의 발언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이런 '슈퍼 개인'의 발언에 반응하고 움직입니다.


사회적 발언력까지 가진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연예인을 뛰어넘습니다. "연예계에만 있던 사람이 뭘 알겠어"는 여전하지만 "자기 분야를 스스로 일꾼 유튜브 말은 한 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은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인플루언서들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스로 성공을 거둔', '하지만 내가 선택한' 유명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요.


작은 개인이 슈퍼 개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은 너무나 좋습니다. 기존의 권력을 깨고 있으니까요. 이제 이들은 연예인들의 자리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자리까지 꿰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랫폼이 방송국을 넘어 언론사 역할도 점점 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분명 예전보다 더 자유로워진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데요? 3줄 요약

연예인의 특별함은 사라지고, 누구나 콘텐츠를 올려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닮고 싶은 우상'보다 '닮을 수 있는 사람'에게 열광하고, 그 결과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미디어 권력을 재편하며, 인플루언서들이 연예인을 넘어서는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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