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은 중사, 그는 일 중대 삼 소대의 선임하사다.
고향이 문경이라 했다. 공고를 졸업하고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다 입대한 그는 재워주고 먹여주고 게다가 월급까지 주는 군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좀처럼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갈 생각도 않고 부대에 남아 소일을 했다.
상우의 눈에 비친 김중사는 좀처럼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며칠 동안 땡볕에서 웃통을 벗고 대패질과 망치질을 하던 그는 소대의 총기 거치대를 만들어냈다. 고물상에서 주워온 몇 개의 파이프는 그의 손을 거치자 텔레비전대로 변신했다.
상우와 동호가 소대로 전입하던 날, 김중사는 둘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다.
“조금 고생은 될 거다. 부모님 생각하며 견뎌라. 그렇게 조금만 세월을 보내면 이곳 생활이 몸에 익을 거다. 그러면 곧 제대할 날이 온다.”
검은 피부에 흰 이를 드러내고 김중사가 말했다. 잔잔히 웃음을 지을 때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삼 소대 소대장은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ROTC출신의 중위였다. 그는 소대 일의 대부분을 김중사에게 맡겼다.
김중사는 소대장의 지시를 무리 없이 수행했다. 오히려 소대장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대를 이끌었다. 소대원들은 소대장보다는 김중사와 더 친밀감이 높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엄한 아버지이자 다정한 친구였다.
상우가 일병 진급을 앞둔 어느 날, 김중사가 소대의 선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선임하사라는 직책은 참 애매한 직책이야. 처음 군에 들어온 졸병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그 병사가 군 생활에 적응이 되어 제대할 무렵이면 친한 친구가 되거든. 그러면 그 친구는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맞아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지.”
상우도 이 과정을 그대로 거쳤다. 상우는 상병 때 분대장 교육을 들어갔다. 4주간의 교육을 받고 하사 계급장을 달고 돌아온 상우는 초록색의 견장을 하고 분대장 역할을 수행했다.
김중사와 상우의 관계는 상우가 일반병이었을 때보다 더욱 가까워졌다. 휴일이면 김중사는 상우와 함께 종종 외출을 하곤 했다.
그때 상우는 알았다. 김중사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다방 종업원이었다. 김중사가 그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이야기해 주지 않아 알 수는 없었으나, 전방 부대 인근에 있는 다방 종업원의 신산한 인생 역정은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겉모습에서 그러한 고생의 흔적은 쉽게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쾌활한 여자였다. 가슴속의 상처를 숨기려는 과장된 행동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녀는 작은 일에도 소리를 내어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웃음이었다. 여자가 웃으면 김중사는 그녀를 보고 연신 싱글거렸다. 그럴 때의 김중사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무렵, 일 소대의 선임하사인 안중사가 결혼을 했다. 안중사의 결혼식에 다녀온 김중사는 상우에게 그녀와의 결혼 계획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군인은 결혼하는데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결혼식이야 군인회관에서 하면 되고 예복이야 군정복을 입으면 된다. 초대해야 할 가족도 그리 많지 않아 걱정이 없다고 김중사는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결혼 후 생활할 군인아파트 입주신청서를 보여 주었다.
상우는 행복해하는 김중사를 보며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런 김중사의 모습은 며칠을 가지 못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전과 달리 축 처진 모습을 보였고,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소대원들은 그런 김중사를 보며 불안해했고, 상우 역시 김중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부대가 소란스러웠다. 헌병차가 부대로 들이닥쳤고, 헌병들이 중대 본부를 차지했다.
사태의 전말은 곧 밝혀졌다. 김중사가 민가에서 소를 훔치다 잡혔다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김중사가 소를 훔치려다 발각이 되었고, 도망가다가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히었고, 경찰을 거쳐 헌병대에 인계되었다.
그리고 김중사의 고민도 알려졌다. 김중사의 애인에게 빚이 있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그녀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울며 김중사에게 다방 주인에게 진 빚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김중사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돈이 필요한 것도 안다. 간절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소를 훔치다니. 그것도 술을 마시고서.
상우는 안타까웠다. 김중사가 비록 술을 마셨지만 그렇게 사리판단도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김중사를 만나 도대체 왜 그랬냐고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었다.
헌병 지프차를 타고 김중사는 부대를 떠났다. 그날 이후 상우는 김중사를 본 적이 없었다.
김중사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상우가 제대를 한 이후였다. 휴가 나온 군 후배들에게 김중사의 소식을 들었다. 김중사는 군사재판에 넘겨졌고, 1년의 징역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김중사가 없다고 부대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단지 김중사의 생각에 며칠 우울한 나날을 보냈을 뿐이었다. 새로운 선임하사가 부임했다. 처음에 그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곧 그의 스타일에 젖어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제대를 2개월 앞두고 또 한 사건이 상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우의 분대가 후방 매복을 나갔다. 매복지는 민통선 후방, 산에서 민가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매복은 분대원들이 매복지에서 은신한 채, 밤새 거동 수상자가 있나 감시하다가 날이 밝기 전에 매복지에서 빠져나와 부대로 복귀하면 되는 것이었다.
매복지에 도착한 분대원들은 두 명씩 짝을 이루어 각자 정해진 곳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 갔다. 한참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상우의 매복지로 신동호 병장이 찾아왔다. 신병장은 상우의 분대원이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아프다고 연락이 왔는데, 아내의 근황이 염려된다고, 근처 가게에 가서 전화 좀 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매복에 있어 매복지 이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기인 신병장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 상우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신병장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매복지를 벗어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리고 밤하늘 별의 운행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신병장이 사색이 되어 상우의 매복지로 찾아왔다.
“어떡하지, 분대장?”
신병장은 숨을 헐떡이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상우도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 일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신병장의 표정으로 익히 알 수 있었다.
“가게 앞에서 이 소대장을 만났어. 그가 우리 분대가 매복 서는 것을 알고 있더라구. 내일 아침에 보자구 하고 갔는데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날 것 같아.”
신병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상우도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매복지 이탈은 최소가 영창이다.
“어쩔 수 없잖아, 될 대로 되겠지.”
상우는 신병장을 돌려보내고 밤새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 보았다. 한결같이 좋지 않은 그림만 그려졌다. 육사 출신의 이 소대장이 이 사건을 그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에게 규율이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켜야 될 절대 원칙이었다. 밤은 지루하게 길었다.
날이 밝아 부대로 복귀한 분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우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중대 본부 앞에 집합한 상우의 분대원들은 노기에 찬 중대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중대장은 그들에게 완전군장 구보를 명령했다. 상우의 분대원들은 완전군장으로 하루 종일 연병장을 돌았다.
이튿날 상우와 신병장은 대대 군기교육대로 보내졌다. 영창을 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그들은 군기교육대로 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소대장이 영창에 보내는 것을 반대했다 한다. 의외였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을 영창에 보내 그들의 군기록에 오점을 남기게 하지 말자고 중대장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중대장도 상우와 신병장이 군생활에 충실히 해 온 점을 고려해서 이 소대장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군기교육대의 하루는 길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체벌을 다 경험한 것 같았다. 군 생활 중 가장 가혹한 일주일이었다.
군기교육대에서나 그 이후 소대에서나 신병장은 상우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상우와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피할 정도였다. 상우는 그런 신병장이 도리어 안쓰러웠다.
“야, 신병장. 그러지 마라. 내가 더 미안해진다. 영창도 안 갔고, 모든 게 잘 끝났잖아.”
상우에게 신병장은 소중한 동기였다.
입대 전,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신동호는 친구의 소개로 한 여자를 만났다. 염색공장에서 사무를 보던 여자였다. 객지에서 살던 그들은 동거를 시작했고, 신동호가 입영통지서를 받고 그들은 혼인신고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상우는 그녀의 용기에 탄복했다. 그러나 상우는 신동호가 부럽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여인도 없거니와 결혼은 상우에게 아직 현실감 있게 단어가 아니었다.
입대 후, 딸아이가 태어났다. 신일병은 관물대에 딸애의 사진을 붙였다. 신상병, 신병장으로 신동호의 계급이 바뀌고 딸애의 사진도 배냇저고리를 입고 자고 있던 모습에서 유아복을 입고 배시시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슬픔은 파도처럼 겹쳐서 밀려오는 모양이다. 신병장 아내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병장에게 아내의 죽음 소식이 전해진 것은 군기교육대를 갔다 온 지 이 주일 후였다.
시뻘건 눈으로 총총히 부대 문을 나서던 신병장은 일주일 후에 말을 잊은 채 돌아왔다.
며칠 후 신병장은 의가사제대를 했다. 상우는 신병장의 손을 잡았다. 어떤 말을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뭇거린 후에 고작 한다는 말이 힘내, 또 만나자, 였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라고 신병장이 말을 받았다.
그렇게 신병장은 떠났다.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상우는 제대를 했다. 전역 신고를 마치고 그는 홀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왔다.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제대 군인들이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상우는 이곳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이 년 여의 시간 동안 상우가 이 터미널을 혼자의 몸으로 온 적은 거의 없었다. 입대 동기인 까닭에 정기 휴가는 늘 동호와 함께였다. 가족을 보러 간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푼 동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상우는 기분이 좋았다.
의가사제대를 했을 때, 혼자 이 터미널을 서성이며 신병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우는 혼자 터미널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갑자기 김중사가 보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버스가 왔다. 이제 사람은 없고, 신병장 그리고 김중사에 대한 기억만 간직한 채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 후, 신병장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간혹 만나는 군동기나 후배들은 신병장이 아이는 형님에게 맡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사장에서 일을 한다는 소식을 상우에게 전해주었다. 김중사의 징역 소식도 그때 알았다.
군대에서 맺어졌던 인연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모두 끊어졌다. 더 이상 신병장과 김중사의 소식도 알 수가 없었다.
상우는 대학에 복학을 했고, 군생활은 술자리의 이야깃거리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것마저 시들해질 즈음 상우는 대학을 졸업했다.
몇 년 후, 직장생활에 웬만큼 적응할 무렵에 상우는 신문에 실린 조그마한 기사를 보았다.
‘철원 한탄강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남녀의 변사체가 발견’
신문에서는 신원불명이라 하였다. 그러나 상우는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그들이 김중사와 그의 애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원의 군대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땡볕 아래에서 웃통을 벗고 바벨을 들고 있던 김중사가 떠올랐다. 그는 구릿빛 땀을 흘리고 흰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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