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사는 오지 않았다. 올 리가 만무했다. 자줏빛 외투의 여인이 기다리던 병사도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가 일어나 면회소를 나섰다. 상우도 일어났다. 상우가 면회소를 나섰을 때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대의 긴 담을 끼고 걸었을 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같은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여자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상우의 앞을 지나쳐 철원군청 쪽으로 걸어갔다. 상우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모퉁이를 돌아섰는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우는 대합실 의자에 잠시 망연하게 앉아 있었다. 십 년 만에 철원을 찾았다. 허나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다시 철원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상우는 허망함을 느꼈다.
상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별로 멀지 않은 삼부연 폭포나 한번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철원군청 앞길은 신철원에서 가장 사람의 왕래가 많은 도로이지만, 지금은 얼굴까지 꽁꽁 동여맨 한두 사람만이 종종걸음으로 상우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적막감이 흐르는 겨울길을 상우는 걸었다. 바람이 귓불을 얼렸다. 괜한 걸음을 했구나 하는 후회가 들 즈음에 눈앞에 폭포가 나타났다.
그리고 낯익은 모습. 자줏빛 외투의 여인이 폭포 앞, 도로변에 세워 놓은 폭포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상우도 여자의 옆에 서서 안내문을 읽었다.
명성산 심산유곡에서 발원한 맑고 깨끗한 계곡수가 20M 높이의 기암절벽 사이로 세 번 꺾어지며 떨어져 장관을 이루는 삼부연 폭포는 신비한 전설과 함께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승지로 철원 팔경의 하나이다.
궁예가 철원의 풍천원에 도읍을 정할 당시 이곳에서 도를 닦던 4마리(두 쌍)의 이무기 가운데 3마리만 폭포의 기암을 각각 뚫고 용으로 승천하였으며 그때 생긴 혈현(血淵)이 가마솥 모양 같다 하여 삼부연(三釜淵)이라 명명되었고 그 후 마을 이름도 용화동(龍華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때 시기를 놓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심술을 부려 비를 못 오게 한다 하여 가뭄이 심할 때는 이 삼부연 폭포 밑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고 대풍을 기원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참 친절하지 못한 전설이네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우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여자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상우가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왜 한 마리는 승천하지 않고 남았을까요?”
여자는 안내문을 응시한 채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했다.
“이 땅에 무슨 미련이 있었을까요?”
상우가 되물었다.
“미련이라...”
여자가 말끝을 흐렸다.
여자가 안내문 앞을 떠나 난간에 몸을 기대고 폭포를 바라보았다.
폭포는 바위틈을 가르고 그 사이로 거대한 물길을 내었다. 폭포의 낙하는 얼음의 표피를 두르고 그 속으로 물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낙하물을 받아들이는 소는 새파란 물색이 드러나 있었다.
“한 마리 남은 이무기는 아직도 여기에 있을까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물색으로 보아서는 충분히 이무기가 살 만한 곳이라 느껴졌다.
“아마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을 거예요.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상우는 상대가 없는 대화를 혼자서 이어갔다.
“지금도 그 연인의 곁을 지키고 있을 거예요.”
명성산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여자에게 다가가 기어이 그녀를 산그늘 속으로 가두었다.
*
여자는 작년에 무엇에 이끌리듯 이곳을 찾아왔는데 올해도 오늘, 면회를 오고 말았다. 면회소에 앉아 여자는 출입구로 들어오는 병사들을 하나씩 눈여겨보았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면회소 안은 거의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탁자 위에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곳은 대개가 가족이 면회를 온 경우이고, 음료수를 사이에 두고 바짝 붙어 앉은 경우는 연인들이었다. 병사들은 그들에게서 세상의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여자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세시가 조금 넘었다. 이곳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넘었다. 여자는 일어설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여자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이별을 알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고2 때 만났으니, 너무 오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훈련소 앞에서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웃었다.
“야, 이 년은 금방 간다. 재미있게 놀고 있어라.”
남자의 말대로 여자는 재미있게 놀았다. 남자가 없어도 불편하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가슴에 사무친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남자가 입대한 지 일 년이 되어갔다. 다른 남자를 만났다.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날 때마다 드는 죄책감 같은 찝찝한 감정이 싫었다.
편지를 썼다. 한 면도 채우지 못한 짧은 편지였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다는 글귀로 편지를 마쳤다.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여자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밤, 오빠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거실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골목 앞에 웬 군인이 서성거리던데 혹시 군대 갔다던 니 친구 아냐?”
여자는 창문을 열고 골목 어귀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여자는 꿈을 꾸었다. 두서없이 이어진 꿈 속에서 그녀는 남자를 본 듯했다. 남자의 표정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가 힘겹게 입을 벌려 한 말을 그녀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여자는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어젯밤에 진짜 군인 봤어?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는 니 친군가 했지.”
여자는 찜찜한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여자가 남자의 죽음을 안 것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너 그거 아니? 예전에 너랑 사궜던 그 애. 걔 죽었대. 아마 자살이라지. 군대생활 부적응이라나.”
그녀의 친구는 남자를 알고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조잘거렸다.
오빠가 골목 어귀에서 군인을 본 날이 남자가 죽은 날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 군인이 죽은 남자라고 믿었다. 여자는 두렵기보다는 죽어서라도 먼 길을 온 그에게 한 마디도 못 한 그것이 미안했다.
이듬해 겨울, 추위 속에서 떨고 있던 군인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꿈에 나타난 그가 하고 싶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여자는 면회를 갔다.
아직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 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연례행사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아직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으리라고 여겼다. 단지 여자가 너무 미안해할까 봐 아직 여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
왜 그랬어요?
상우가 푸른 옷의 군인에게 묻는다.
글쎄, 왜 그랬지? 아마 같이 있고 싶었겠지.
푸른 옷의 군인이 대답한다.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하면 어떡해?
여자의 목소리가 떨린다.
미안해. 다른 방법이 생각이 안 났어.
푸른 옷의 군인이 진정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
묻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상우가 말한다.
한탄강의 그 기사, 김중사님이 아니죠? 김중사님 살아있죠?
푸른 옷의 군인은 답이 없다.
그때 골목에 있던 게 너야? 맞아? 아니지. 아니지?
여자의 목소리는 이제 애원조다.
푸른 옷의 군인은 답이 없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상우가 말한다.
바보야,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런 짓을 해.
여자가 울부짖듯 말한다.
여자의 울음은 여울이 되어 황혼의 그늘 속을 떠다닌다.
*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오는 동안 둘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여자가 앞장서 걸어갔고, 남자가 2~3미터 뒤에서 걸었다.
삼부연 폭포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30분 정도의 거리이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상우는 대합실 좌석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녁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여자가 시계를 보더니 일어섰다.
“뭐 드시겠어요?”
“맛있는 거 사 주세요.”
건조한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상우가 앞장서 터미널 옆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부대찌개가 맛있는 음식인지는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부대찌개 어떠세요?”
하고 물었을 때 여자는
“좋아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술을 시켰다.
술이 먼저 나왔다. 상우는 여자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여자가 상우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여자가 물었다.
“면회온 사람 못 만났나 봐요?”
“네, 훈련 나갔대요. 항시 바쁜 사람이라...”
“나도 그런대...”
여자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만나러 온 사람이 애인이에요?”
상우가 물었다.
“애인이요? 네 맞아요. 나를 사랑한 애인.”
“그쪽은요? 그쪽은 사랑했어요?”
“나요? 그건 몰라요. 나는 아직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어요.”
여자가 다시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음식이 나왔다.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굶었다. 상우는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여자도 접시에 음식을 덜어서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수저질을 했다.
“그쪽은 누구 면회 왔어요?”
어느 정도 먹었는지 여자가 수저를 놓더니 상우에게 물었다.
“철원에 항상 남아 있는 사람이에요. 결코 떠날 수 없는.”
상우가 대답했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같네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말을 들으니 김중사가 정말로 승천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한 마리 이무기처럼 느껴졌다.
“남아 있는 이무기 이야기해 주세요.”
“네?”
“아까 그랬잖아요.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 떠나지 못했을 거라고요.”
“아, 네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대부분 전설 속의 이야기가 그렇잖아요. 결정적 성공의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주저하고 그러다가 죽고 그래서 안타깝고 애틋하고...”
“전설만 그러한가요. 현실도 그렇죠.”
여자의 술잔은 비어 있었다. 상우가 여자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여자가 채워지는 술잔을 응시했다.
“잔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 꼭 눈물 같네요.”
여자의 말이 넋두리처럼 들렸다.
“남자가 있었어요. 그냥 이무기라고 할게요.”
술병을 탁자에 놓으며 상우는 말을 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하늘의 문이 열려 승천을 할 수 있지요. 이무기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어요. 이무기는 그 여인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늘나라도 함께 가고 싶어했죠. 그녀가 없는 하늘나라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이무기는 고민하다가 같이 공부하던 이무기의 승천 옷을 훔쳤어요. 하지만 그것은 곧 발각이 되었지요.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어요. 감히 승천 옷을 훔치다니... 노한 이무기들은 지하의 사신에게 그 여인을 잡아 가두도록 부탁을 했지요. 여인은 구천의 땅 밑으로 끌려 들어갔지요. 자신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그녀가 자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무기는 미칠 것만 같았어요. 승천의 날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이무기는 그녀를 구하러 지하세계로 들어갔지요.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도 이무기는 가야만 했어요. 그러나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아마 지금도 저 깊은 지하세계에서 그녀를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지 않을까요?”
상우는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 말을 하고 나니 그 이야기는 김중사와 신동호의 이야기가 기묘하게 합쳐진 이야기 같았다.
“무슨 신화 같네요.”
“그러게요. 아까 그랬잖아요, 우리 사는 현실이 전설이고, 신화 같다고.”
“이무기는 아직까지 못 만났겠죠? 그녀를.”
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못 만나겠죠.”
여자의 목소리에서 축축한 술기운이 전해졌다.
상우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는 상우의 시선을 외면하고 초점 없는 눈길로 창문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상우는 여자의 사연이 궁금했다. 면회 온 남자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부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의 사연이 나의 사연이나 무엇이 다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창문을 울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인 듯했다.
식당의 한구석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는 인파로 넘실대는 도심의 연말 정경을 내보내고 있었다. 건너편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서 식당 문을 나섰다.
식당 안의 손님은 상우와 여자뿐이었다. 상우가 술잔을 들자 여자도 잔을 들었다. 잔을 놓고 그들은 메마른 안주를 뒤척였다.
구석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푸짐한 몸집의 식당 여주인이 곁눈으로 그들을 훔쳐보았다. 그 눈길에서 어서 나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상우는 느낄 수 있었다.
철원의 하루는 일찍 끝난다. 인적이 끊긴 거리를 걸어 그들은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 매표소의 창구는 닫혀 있었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9시가 막차였다. 막차가 떠난 지 한참 되었다.
“어떡하죠?”
불 꺼진 창구 앞에서 상우가 걱정스레 말했다.
“걱정 말아요.”
여자가 돌아서서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저녁 고마웠어요.”
잠시 돌아서 인사를 하고 여자는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우는 여자를 잡지 않았다. 잡지 말라고 여자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상우는 어두운 터미널 매표소 안에 멍하니 서 있었다. 또 혼자였다. 제대를 하던 그날처럼 철원을 떠나던 때는 늘 혼자였다. 심한 외로움인지 추위인지 몸이 으스스 떨렸다.
잠시 눈길을 밖으로 돌렸다.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 그녀도 철원을 떠나지 못하는 이무기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상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리저리 훑어보아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상우는 어둠을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하세계에 갇힌 여자를 구하러 가는 한 마리의 이무기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