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공원에 벚꽃이 피어 있었을까 1

by 마정열

사월 초의 날씨가 제법 덥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고 양복을 벗어 어깨에 걸친다. 경복궁을 지나치니 사직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종묘에서부터 걸었으니 한참을 걸어온 셈이다. 사직공원에서 조금 쉬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실로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였다. 집에서 독서로 소일하든가 아니면 집 주위의 중랑천을 산책하던 것이 주 일과였는데 며칠 전 이력서를 제출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회사는 동대문에 위치해 있었다.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폐업하고 일정한 일자리 없이 지낸 것이 육 개월이 넘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모색 끝에 택시 기사를 한번 해 보기로 결심하고 교육을 수료하고 택시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했다. 옷장에서 깨끗한 와이셔츠를 꺼내 다림질을 했다. 그리고 양복을 꺼내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서 낯선 사람이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맞이한다. 그도 손을 든다.

넥타이를 할까 하고 몇 초간 고민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방안을 대충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전철역을 향해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빌라가 다른 빌라와 뒤섞여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의정부시 xx동.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 벌써 삼 년이 넘었다.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지 실질적으로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사다, 자격증 취득, 사무실 개업 등 일여 년의 준비 끝에 부동산 중개소 사무실을 열었다. 그때 서울을 떠나 여기로 이사를 왔다. 방 하나에 주방 겸 거실이 있으니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아내 없이 산 지도 십 년 가까이 된다. 무엇 때문에 이혼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 당시는 아내를 원망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내 잘못이다. 건설회사의 업무 특성상 지방 근무가 잦았다. 술자리 끝에 여자랑 어울려 밤을 새우던 일이 종종 있었다. 아내가 질투할 만한 여자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맘이 상했나 보다. 몇 번 모른 척하고 넘어가던 아내가 그 일을 끄집어냈다.


더러워, 내 곁에 오지 마.


이렇게 시작된 싸움은 서로의 상처를 기억해 내고 그것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당신과 살기 싫어.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내는 삼 년 후 자살을 했다.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나는 몰랐다.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 한동안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듯한 청년에서 초로의 사내까지 뒤섞여 면접장은 부산스러웠다. 면접은 간단히 끝났다.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나는 열심히 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한 면접관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 봅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기분이 좋게 면접장을 나설 수 있었다.

건물을 나온 나는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서울 거리를 거닐어 보기로 작정한다. 종로로 방향을 잡아 천천히 걸어 종묘까지 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장기판을 벌이는 사람이며, 둥글게 모여 정치 토론을 하는 사람이며 실로 오랜만에 보는 사람의 홍수다. 조상님들의 잠자리가 너무 소란스럽다는 생각을 잠시하고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눈을 돌려 길 건너를 바라보았다. 세운상가다. 그곳의 일부는 헐리고, 또 재생사업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났다. 눈앞이 조금 흐려진다. 누런 기억이 건물을 덮었다.


‘세운상가 키즈’


어디에서 들어본 단어이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세운상가 키즈였던 거 같다. 고등학교가 퇴계로 5가에 있었던 관계로 세운상가는 익숙한 곳이었다. 그곳은 청소년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공간이었다. 외국의 도색잡지며 조잡하고 음란하기 짝이 없는 만화를 구입하는 장소였다. 잡지랑 만화를 보며 밤새 수음하던 기억이 떠올라 낯이 붉어졌다.


장기판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그것마저 시들해진 나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검색하다 한 전화번호를 찾아 연결을 시도했다. 몇 차례의 통화연결음 끝에 사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웬일이냐?

서울에 나왔다가 그냥 걸어봤다. 뭐 하냐?

뭐 하긴, 이제 슬슬 장사 준비해야지. 요즘 한가하다. 놀러 와라.


나는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해는 아직 중천이다. 무악재까지 걷기로 하고 벤치에서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친구는 무악재, 정확히 이야기하면 현저동에서 장사를 한다. 그는 군에서 전역하여 이 사업 저 사업 손을 대다 최근에 치킨집을 열었다. 벌이는 신통치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는 연금을 받으니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돈벌이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와 만나면 편했다. 그리고 우리가 또 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집안 이야기, 특히 아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도 이혼을 했다.

그가 군에 있을 때,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 그는 가정을 지키고자 끈질기게 아내를 설득하였지만, 아내는 뒤늦게 찾은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를 떠났다. 주변에서 대충 들은 이혼의 사정 이야기다.


사직공원으로 들어섰다.

사직공원의 위쪽에 도서관이 있다. 내가 처음 가본 도서관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누이를 따라 도서관에 왔다. 공부는 안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누이와 함께 홍은동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누이는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집에 가까이 오자 나는 누이가 들었던 내 가방을 가로채 들었다. 철이 없어 즐거운 시절이었다.

봄이었다. 그때 사직공원에 벚꽃이 피어 있었을까?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누이는 회사 경리를 하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상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매형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누이는 경제적으로 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미안했는지 누이는 매형에게 늘 죄지은 사람처럼 기죽어 지냈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리고 매형은 돈 많은 사람의 행세를 하듯 우리에게 무례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지금 매형은 뇌졸중으로 요양병원에 있다.


나는 그늘 쪽의 벤치를 찾아 앉았다. 와이셔츠의 윗단추를 풀고 손수건으로 가슴팍의 땀을 닦았다.

사직단이 보인다. 나라의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 사람들의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단 하나씩은 품고 산다.


잘 돼야 해, 잘 될 거야.


그리고 기도를 한다. 도와달라고 이번 건만 잘 되면 착하게 잘 살겠노라고. 기대는 배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사직단을 허물지는 못한다. 그것마저 없으면 버틸 수가 없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가는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은 눈가루처럼 공중에서 군무를 추다가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계절은 무르익어가고 꽃은 제 수명을 다하고 사라진다.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수는 없다. 바람이 아니라도 꽃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