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나무가 연한 초록에서 녹색으로 짙어지는 계절이 되면 시청 앞 미니 정원에도 하얀 찔레꽃이 지천이다.
장미가 황홀한 자태를 뽐내고, 아까시나무가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려 진한 향을 진동하며 튀밥 같은 꽃을 터뜨릴 무렵 찔레꽃도 보란 듯이 다섯 장의 꽃잎을 펼쳐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요즘 주말마다 내리는 비에 사람들은 짜증을 낸다. 그러나 이때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못 하게 된다. 예전 이 땅의 농부들은 이맘때가 되면 이 땅의 농부들은 누구보다도 간절히 비를 바랐다. 비가 안 오면 그 애타는 마음을 드러낸 어휘가 ‘찔레꽃가뭄’이다. 이 말속에는 당시를 살아가던 우리의 아픈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보릿고개는 천형처럼 우리를 억누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찔레꽃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꽃이다. 식량이 떨어졌던 보릿고개를 견디게 해 준 것이 찔레순이었으며, 가난한 시절 시골 어린이들이 간식처럼 따먹은 것이 찔레꽃이었다. 그래서 보리 수확 전에 쌀이 떨어지면 먹을거리를 찾아 온산을 뒤져야 했고, 그렇게 찾은 것 중 하나가 찔레순이었다.
그 덕에 생긴 속담에 “찔레꽃 필 무렵에는 딸 집에도 안 간다.”는 말이 있다. 춘궁기 사돈 손님도 부담스러웠을 정도로 우리 삶이 팍팍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그만큼 찔레꽃은 민중적이다.
찔레꽃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이연실의 ‘찔레꽃’이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으로 시작하는 ‘찔레꽃’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을 먹거리였다. 그리고 이 노래는 1930년 일제강점기에 ‘신소년’에 이원수 작가가 발표한 ‘찔레꽃’을 원형으로 삼고 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 돌 깨는 누나 맞으려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먹었다오
누나 누나 기다리며 따먹었다오.
찔레꽃을 따서 맛을 본다. 단맛을 느낄 수 없다. 대신 아픈 시대를 살았던 부모님의 고단한 삶의 냄새를 가만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