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의 상징적 인물을 꼽으라면 대부분은 유관순 열사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3.1 운동을 촉발시킨 인물들은 민족대표 33인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생각나는 인물이래야 손병희, 한용운 정도이고 그들마저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리 친숙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야 모두의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이지만, 대중의 친숙도와 인물이 이룩한 성취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 아니겠는가?
유관순은 1902년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유관순이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다. 일제는 1919년 3월 10일에 전국 모든 학교들에 강제로 휴교령을 내렸고, 유관순은 함께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언니 유예도와 함께 고향 천안으로 귀향해 '천안 아우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만세 운동 중 유관순은 체포되었다. 이후 재판을 거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뒤 옥중에서도 일제에 대한 항거를 멈추지 않았고 그에 따른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향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옥사했다.
익히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다. 이 짧고도 고귀한 유관순 열사의 전기를 다룬 책의 제목이 ‘한련화(손승휘/황금책방)’이다.
왜 책의 제목을 ‘한련화’라 했을까?
그것은 한련화의 꽃말이 ‘승리, 애국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른땅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을 가진 한련화(旱蓮花). 이름대로 거친 땅 기름진 땅 가리지 않고, 마른땅에서 잘 핀다. 마른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한련화는 힘든 상황에서 자기 것을 지키려는 ‘애국의 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유럽에서 이 꽃은 승전화(勝戰花)로 불린다. 이 꽃의 속명 Tropaedum은 트로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Tropaion에서 나왔다. 한련화의 잎은 방패를 닮았고, 꽃은 투구를 닮았다. 그래서 한련화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사가 흘린 피에서 피어난 승리의 꽃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한련화는 봄꽃은 아니다. 한련화는 6월부터 피기 시작해 첫서리가 내릴 상강까지, 150일에서 180일 동안 쉼 없이 피고 지면서 붉은색, 노란색의 화려한 색감으로 세상을 수놓는 뭍의 연꽃이다. 뜨거운 여름 태양과 차가운 가을바람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당당한 꽃이다.
마치 애국은 이래야 한다고 웅변하는 듯하다.
난 대한의 딸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 죄가 될 이유가 있느냐!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유관순 열사의 절절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옥중서신
어머니,
지금쯤 집 뒤란에 개나리꽃이 지천이겠지요.
겨우내 마른 가지 어루만지며 꽃봉우리 틔우길 얼마나 빌었는지요?
지난 겨울은 혹독했습니다.
문풍지 울리는 높바람이 불면 어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심장의 고른 박동과 온기로 떨리던 가슴 진정시키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민들레꽃 가득한 봄을 이야기하셨지요.
꽁꽁 언 땅속에서도 죽지 않고 민들레는 굳은 대지를 뚫고 나와 꽃을 피우고
자운영, 장다리꽃과 어깨를 걸고 따뜻한 바람을 온 대지로 퍼 나른다고 하셨지요.
아, 그런 날이 얼마나 보고 싶던지요.
어두운 골방에서 우리는 봄을 이야기하였지요.
산천은 봄이 왔건만
주림과 폭정은 여전히 차더이다.
동무들은 봄을 찾으러 가자고 외쳤지요.
갈라진 손에 태극기를 움켜쥐고 꽃피는 봄날을 외쳤어요.
진달래꽃 산천에 가득하고, 제비꽃, 금잔화,
나비와 춤추는 봄날을 그리며 마른 대지 위를 맨발로 내닫았지요.
앞서 가던 동무의 외침은 민들레 꽃씨 되어 천지를 뒤덮었고,
흰 옷 적시는 붉은 선혈을 내뿜으며 쓰러진 동무는 빨간 진달래가 되었어요.
그렇게 그날 이 땅은 수천, 수만의 꽃들이 피어난 꽃밭이었어요.
우리 앞을 막아선 왜군의 총칼 따위는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는 산맥을 넘어오는 거대한 바람이었고
무쇠를 녹이는 불덩이의 파도였지요.
어머니,
여기 컴컴한 옥방은 여전히 겨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봄을 부르는 힘이 있음을 확인했으니까요.
잎이 죽고, 줄기가 죽어 온 힘을 뿌리에 모아
추위와 최후의 일전을 벌여 당당히 이겨내야 꽃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마른 몸은 이제 뿌리가 되려고 합니다.
남은 온 힘이 모아 꽃을 피우려 합니다.
푸른 하늘 아래 꽃 피워
날아오는 벌, 나비와 따뜻한 바람 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까 즐거이 이야기 나누렵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봄을 맞이한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