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과 경칩

by 마정열

1. 삼월의 눈

이렇게 눈이 한바탕 쏟아져야 삼월답다

봄을 낳기 위한 마지막 진통

그냥 슬며시 오는 봄에서는

봄내음이 나지 않는다

손등에 떨어지는 서늘함

아직 우리의 시절은 멀어나, 하는 아득함에

힘없는 내딛는 발걸음

순간 뽀드득, 눈 부서지는 소리

언 발아래에서 가느다랗게 들리는 아우성 소리

겨울의 살을 찢고 틔어 나오는 봄의 진군 함성 소리



2. 경칩

3월이다.

공식적으로 봄의 출발이다. 여전히 쌀쌀하다. 그러나 다음 주부터는 추위가 풀려 온화한 날이 지속되리라 한다.


힘을 내자, 봄의 시작이다.

우리 일꾼들도 바빠졌다. 묵은 풀들을 정리하고 새롭고 돋아날 싹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 주는 경칩(驚蟄)이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깨어난다는 절기가 경칩(驚蟄)이다. 놀랄 경(驚)에 숨을 칩(蟄)이니 겨울잠을 자며 숨어 있던 동물과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나오는 때이다. 원래는 ‘열다’, ‘일깨우다’는 의미의 계(啓)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 했다. 하지만 한무제(漢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하기 위해 놀랄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때가 되면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고, 따뜻하고 성장하는 기운이 찾아온다. 초목에 싹이 돋아나듯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동면에서 깨어난다. 그래서 경칩은 부활의 날이기도 하다.


이날 옛 위정자들은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방면하였고, 죄수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풀어주었으며, 볼기를 치는 형벌을 사용하지 않고 송사를 금지시켰다. 또한 어린아이를 돌보아 주고, 고아나 자식 없는 노인을 보살핌으로써 ‘구부러진 어린싹들’이 잘 자라나게 하며, 길일을 택하여 백성이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 봄을 맞이하는 축일(祝日)이 경칩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날이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초콜릿과 사탕이 없던 시기 우리의 조상들은 가을에 주운 은행을 이날까지 간직했다가 함께 까서 먹고 은행나무 주변에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 봐야 열매를 맺는 ‘사랑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칩은 사랑의 날이기도 했다.


또한 조정에서는 이날을 전후에 불을 피우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렸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때는 건조기이다. 산불은 봄을 기다리는 초목에게도, 힘든 겨울을 지낸 동물에게도 희망을 앗아가고 암담한 봄을 안겨준다. 금령(禁令)은 이제 갓 잠에서 깨어난 동물이나 벌레들은 물론 이제 막 싹이 나오려고 하는 풀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선조의 마음이 새삼 느껴진다.


봄은 약동하는 생명의 계절이다. 봄은 소중한 언약을 기억하며 내일을 약속하는 사랑의 계절이다.

이 봄날, 사랑이 가득한 나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