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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초이 Mar 28. 2018

취미는 퇴사 특기는 취업

오해에 대한 나름의 해명

한 직장을 10년씩 오래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만한 여러 사정들은 있었지만, 나는 이직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자주 이직한 사람을 반기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취업시장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바늘구멍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우리나라도 이미 잃어버린 10년 어느 지점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직장을 잘 옮기는 내게 친구들은 '취미는 퇴사고, 특기는 취업'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었는데, 매번 구구절절 말하기 힘든 오해였다. 나도 한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었는데 여의치가 않았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은 죽음의 사막을 통과해 겨우 만난 오아시스처럼 매번 힘들었으니까. 이직은 절대 취미나 특기가 아니었다.

직장을 옮기면서 가장 힘든 점은 커리어의 중단? 단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


회사를 다니며 이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우는 해외를 다녀오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또 어느 조직이든 연차가 쌓여야 할 수 있는 업무들, 조직과 아이템을 잘 알고 사람들과 협업이 돼야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는데, 나는 그런 일을 맡을 즈음 퇴사를 한 경우도 있었다. 해외영업이라는 업무의 줄기는 늘 나와 함께했지만, 업종이 달라졌기에 늘 신입의 자세로 업무를 익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참고로 경력이라도 3개월은 업무 파악 시간이려니~ 해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걸 즐기려 애쓰긴 했지만, 압박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나의 강점이 길러졌다. 바로, 업무 파악 속도가 남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몇 차례의 이직을 하며, '핵심'을 간파하는 속도가 붙었다. 일단, 처음이지만 처음 같지 않은 노련미로 초반 적응을 재빨리 해서 한 사람 몫을 하게 되면, 조직 또한 그만큼 나를 빨리 받아들여준다. 또 다른 장점은, 여러 회사를 다니다 보니 조직과 사람을 잘 본다는 것이다.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보면, 이 회사에 입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면접에서부터 감이 온다. 더불어 다양한 산업군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가게 하기 위해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일을 하는 업체들이 존재하며, 이 세상의 다른 곳에는 우리가 오래전에 잊어버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써봐야지+_+)

벌써 10년이 지난 신년인사지만, 나는 직장과 일을 고무공에 비유했던 전 코카콜라 사 회장의 메시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가족, 나 자신, 인간관계는 유리공과 같아서 한번 깨져버린 것들, 상처 난 것들을 치료하기 어렵기에 끝까지 죽기까지 노력해야 하지만, 직장/일은 고무공과 같아서 깨지지 않는다는 것.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해도 다시 튀어 오른 다는 것.


직장 문제/일의 영역에 있어서, 아닌 건 그만둘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커리어가 바닥을 쳤다 해도 찾고 찾는다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격려가 있다면, 나 자신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좋은 곳, 괜찮은 곳을 분명 찾을 수 있다. 고무공이 튀어 오르듯 다시 기회가 오는 것이 일의 영역이고, 이건 여러 번의 퇴사에도 매번 괜찮은 직장을 얻었던 나의 개인적 경험이기도 하다.

언젠간 행복해질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현재의 직장생활을 고난의 행군처럼 버틴다고, 후에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내 회사가 아니라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참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다쳐버리면 다시 일어서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거나 일어설 수 없게 된다. 꿈을 향해 가는 '과정' 또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맞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슈가 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생각난다. 대학시절에 '영화평론'에 관련한 교양 수업을 들었었다. 강사도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고(이름은 전혀 생각 안남), 시험 부담이 없어서 학생들에게 늘 인기 있는 수업이었다. 과제는 학기말에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영화감독 4인 중 1명을 골라 그에 대한 리포트를 쓰는 것과 그 사람의 영화 한 편을 보고 촬영기법에 대해 분석하는 것 1가지였다. 이때 나는 '나쁜 남자'라는 영화를 선택했고, 요즘 난리인 그 감독에 대한 리포트를 써서 냈었다. 리포트는 전 학기에 수업을 들은 선배들이 몰아준 리포트를 참조해서 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그나마 이게 내가 볼 수 있는 수위였기 때문이다. 그 외 다른 영화들은 도저히 내용조차 듣고 있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영화를 보겠나 싶어서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수업은 재미가 1도 없었다.


국제적인 상을 탄 감독들의 영화들은 재미는커녕, 공감도 되지 않았다. 영화의 소재들이 다 불륜, 폭행, 강간, 매춘과 같은 것들이었기 때문에 수업이 아니라면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김 감독의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아니 나는 왜 그런 것들을 보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하는지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론 수업을 들으며 나는, '아니 대체 이 영화들을 어떻게 찍은 걸까, 도저히 끔찍해서 찍을 수가 없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과 '영화든 글이든 그 사람의 생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건데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마지막으로 '대체 여자 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지? 유명한 감독과 작업했는데 남자 주인공 빼고는 왜 아무도 뜨지를 못했을까'였다. 이번 사건들을 보면서 지난 1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이 의문들이 풀렸다.


인간은 참 강하고 그와 동시에 참 약하다.


인간의 정신은 모든 우주를 품을 만큼 넓고 극심한 고통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만, 한번 무너지고 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을 만큼 약하다. 꿈을 위해, 일을 위해 우리의 영혼이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참아선 안된다.

나 자신은 유리공이요 일은 고무공이란 묘사는 사실이다. 나 자신이 깨져버리면, 우리는 커다란 상처 가운데 힘든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그 일이 아니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많다.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보다 소중하진 않다.


가능한 과정도 행복한 일을 선택하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의 자리가 그런 자리가 아니라면, 우리는 기꺼이 퇴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 여긴 아니네?'라고 곧바로 포기하기 전에 내가 뭔가를 '먼저' 해볼 순 없을까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알고 있다, 권력의 무게에 짓눌려 그냥 모른척할 수밖에 없는 곳이 있다는 것.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나'보다는 하찮은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보다는 하찮은 것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일적인/직업적인 성공'이 무너지는 것이 '나의 인격'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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