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성인이 되어 처음 접한 그림책은 내게 치유였고, 보석 같았다. 그림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들은 한 장 한 장이 예술품이었고, 그 안에 담긴 따듯한 이야기에 울고 웃었다.
존 버닝햄 작가의 '검피 아저씨와 뱃놀이'를 읽으며 따듯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리디아의 정원(데이비드 스몰/사라스튜어트)'을 읽으며 어떠한 순간에도 놓지 않을 내 정체성을 다졌다.
"역시 유니스님은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라셔서 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영어원서 읽기를 함께 하는 모임에서 멤버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우리 집에는 세 질의 전집이 유일했다. 계몽사의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 [위인전기] 그리고 [백과사전].
온라인 서점도 없고, 대형서점도 많지 않은 데다 전집은 모두 '방문판매'를 하는 분들이 돌아다니며 팔던 시기였다. 책 파는 아주머니가 왔다 간 어느 날, 이 세 질의 전집이 우리 집에 자리했다.
여유롭지 않게 삼 남매를 키우던 엄마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큰 마음먹고 사 주신 책들이었다.
'15소년표류기'를 읽으며 미지의 세계를 여행했고,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조악한 소설을 썼다. 엄마에게 심하게 혼난 날이면 내가 '소공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 앞 작은 마당에 동네 동생들을 모아 '백과사전'을 펴 들고선생님 놀이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돌이켜보니, 내 동생을 비롯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내 가르침을 들어준 동네 동생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 세 질의 전집을 얼마나 닳고 닳도록 읽었던지. 당시의 열심을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대변했다. 동생들도 모두 자라 전집을 처분해야 할 시점이 왔을 때도, 몇 권의 책들은 버리지 못해 대학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책 읽기가 큰 자양분이 되어준 덕인지 대학 때도 중년에 접어든 지금도 나는 책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는 그림책 사랑도 더해져 우리 집 책장에는 이런저런 책들이 3줄, 4줄로 둘러싸여 있을 정도다.
그림책을 접한 건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였다.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림책 테라피'가 한국에선 막 알려질 즈음이었다. 상담심리사 분들이 치유의 도구로 '그림책'을 사용하는 걸 경험하며 그림책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아이를 임신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장에 그림책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땐 '민들레는 민들레'와 '꽃이 핀다' 같은 그림책들을 읽어주며 아이의 태명을 부르고, 꽃처럼 환하게 피어날 아이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책 태교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