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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초이 Feb 19. 2024

세 질의 전집에서 시작했지

그림책 읽는 어른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림책을 좋아했다.

말 그대로 그림책 좋아하는 '어른이'였다.


30대 초반, 성인이 되어 처음 접한 그림책은 내게 치유였고, 보석 같았다. 그림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들은 장이 예술품이었고, 안에 담긴 따듯한 이야기에 울고 웃었다.


존 버닝햄 작가의 '검피 아저씨와 뱃놀이'를 읽으며 따듯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리디아의 정원(데이비드 스몰/사라스튜어트)'을 읽으며 어떠한 순간에도 놓지 않을 내 정체성을 다졌다.




"역시 유니스님은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라셔서 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영어원서 읽기를 함께 하는 모임에서 멤버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세 질의 전집이 유일했다. 계몽사의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 [위인전기] 그리고 [백과사전].


온라인 서점도 없고, 대형서점도 많지 않은 데다 전집은 모두 '방문판매'를 하는 분들이 돌아다니며 팔던 시기였다. 책 파는 아주머니가 왔다 간 어느 날, 이 세 질의 전집이 우리 집에 자리했다.

여유롭지 않게 삼 남매를 키우던 엄마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큰 마음먹고 사 주신 책들이었다.


'15소년표류기'를 읽으며 미지의 세계를 여행했고,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조악한 소설을 썼다. 엄마에게 심하게 혼난 날이면 내가 '소공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 앞 작은 마당에 동네 동생들을 모아 '백과사전'을 펴 들고 선생님 놀이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돌이켜보니, 내 동생을 비롯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내 가르침을 들어준 동네 동생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 세 질의 전집을 얼마나 닳고 닳도록 읽었던지. 당시의 열심을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대변했다. 동생들도 모두 자라 전집을 처분해야 할 시점이 왔을 때도, 몇 권의 책들은 버리지 못해 대학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책 읽기가 큰 자양분이 되어준 덕인지 대학 때도 중년에 접어든 지금도 나는 책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는 그림책 사랑도 더해져 우리 집 책장에는 이런저런 책들이 3줄, 4줄로 둘러싸여 있을 정도다.


그림책을 접한 건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였다.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림책 테라피'가 한국에선 막 알려질 즈음이었다. 상담심리사 분들이 치유의 도구로 '그림책'을 사용하는 걸 경험하며 그림책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아이를 임신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장에 그림책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땐 '민들레는 민들레'와 '꽃이 핀다' 같은 그림책들을 읽어주며 아이의 태명을 부르고, 꽃처럼 환하게 피어날 아이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책 태교를 셈이다.


아이를 책과 함께 키우고, 나도 책과 함께 자랐다.


책의 힘을 깨닫고, 독서논술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새로운 업의 여정을 걷게 되기까지.


이 모든 여정은 8살에 엄마가 사주신 세 질의 전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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