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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유 Aug 18. 2024

[인터뷰] 삶의 레퍼런스를 찾아서(10)

밀양 밀라님

가치쓰제이협동조합 | 제로웨이스트 | 등대
인스타그램 @gachiss_j

 ‘밀라(밀양 라이프의 준말)’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며 자신을 밀양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생명체라 소개하는 이가 있다. 12년째 밀양에서 자신과 자연에 대한 연결과 탐구를 지속하며 주변을 조금씩 변화, 확장 시켜나가는 다정한 이웃이자 연결자, 가치쓰제이협동조합의 배정희 대표. 오늘도 그는 밀양에서 지속가능하고 무해한 즐거움을 상상하며 ‘밀양 라이프’를 실현해 간다.



밀라님은 밀양에 산 지 얼마나 되셨나요

제가 밀양에 2011년 8월에 왔으니까 이제 꼬박 12년 됐어요. 가족의 직장을 따라서 여기로 이사를 온 것도 있지만 그것 또한 선택이거든요. 서울에서 부부간에 회의를 거쳐 밀양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했을 때 저는 좋겠다고 했어요. 밀양에 연고가 있지는 않고 일단은 ‘서울을 떠날 수 있으면 어디든지 좋다.’ 그런 마음가짐이 다소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으로 젊었기 때문에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삶을 개척하는 것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었거든요. 


다소 이른 나이에 서울을 떠나셨네요.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대학 진학과 함께 스무 살에 서울 생활을 시작했거든요. 20대 때는 대도시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며 즐겁게 누렸어요. 서울 구석구석 많이 다녔고 제가 했던 일 자체도 곳곳을 탐사하는 일이었기에 서울에서 제가 필요한 경험은 집약적으로 충분히 한 것 같아요. 저는 대도시보다는 밀도가 낮고 자연이 풍부한 곳이 더 좋았고 그것이 저희 가족에게 맞는 것 같아서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떠나왔어요.      


막상 밀양에 와서 살아보니 어떠신가요.

저란 사람한테는 이 정도 규모의 도시가 딱 맞는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마당을 맨발로 거닐거나 자전거를 타고 밀양 강변을 달리면 기쁨이 충만함을 느끼거든요. 밀양강이든, 솔숲이든, 언제, 어디서든 자연이 눈에 보이고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쉽게 갈 수 있는 점이 되게 좋고요. 최근 생태 공부 모임을 시작하면서 밀양의 자연에 조금 더 깊이 있게 다가가다 보니 훨씬 다양하고 깊은 자연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원래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데 서툰 사람이라서 그런지 소도시라도 크게 불편함도 못 느끼고요.      


원래부터 환경이나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저는 훈련 받은 사람이에요. 대학에서 관련 공부를 하고 결혼 전까지 7년 정도 연구실에서 생태 환경 조사랑 계획 분야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기초 지식을 쌓아왔죠. 그리고 스무 살 때 우연히 서울광장에서 환경단체 부스를 지나다가 후원하게 되면서 꾸준히 거기서 나오는 소식지를 읽고 학습하다 보니 누적이 된 것 같아요.


학생 때부터 관련 공부와 연구를 해오셨으면 현장에서 문제들을 접할 기회가 많으셨겠어요

학부 1학년 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난지도 매립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이 진행되는 중에 국제 컨퍼런스가 있었어요. 그때 저희 과에서 같이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매립지 안정화 공사를 하는 곳을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게 됐는데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일단 악취가 너무 심했고 꼭대기에 올라가면 쓰레기가 썩으면서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거기 불이 붙어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장면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이후에 김포의 수도권매립지 생태계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도시라는 화려한 곳의 다른 한쪽에는 이렇게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거죠. 제가 그 두 가지 일을 진행하면서 쓰레기에 대해서, 문명의 이면에 대해서, 소비의 이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모멘텀이 되었던 것이 안산 공단 지역에 완충 녹지 조성 용역 연구를 했을 때였어요. 공단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어디에서 악취가 나는지, 기존 어디에 녹지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조사하러 다니는데 공단 내에 악취가 정말 심한 곳이 있었어요. 구토가 나올 정도로 악취가 심해서 도대체 무얼 만드는 공장인가 봤더니 수도꼭지를 만드는 곳이더라고요. 내가 하는 소비가 눈에 보이지 않고 맡지 못할 뿐이지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악취를 내뿜고 오염시키겠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매립지에서 본 거는 폐기 즉, 소비 이후의 문제였고, 공단에서 본 거는 소비 이전의 문제였죠. 그때 20대 초중반부터 어떤 물건의 생산과 소비와 폐기에 관한 시스템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주로 먹거리 위주로 생각하게 됐고 다른 환경오염 문제와 일상간의 관계에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되었죠.      

그래도 머리로 아는 걸 실천하고 전파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만약에 내가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고 하고, 적어도 나한테 오는 오염을 줄이려고 해도 나 혼자만의 어떤 노력이나 변화는 큰 의미가 없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활동했던 것 같아요. 특히 큰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다 보니 세상을 보는 방식이 엄마로서 가족 중심으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그전에 배웠던 전문적인 지식을 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게 된 것 같아요.       



10여 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나 제로웨이스트 같은 개념들이 생소하지 않았나요

밀양에 와서는 커뮤니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게 된 것이 한살림 자원 활동이에요. 저는 조합원이었는데 밀양에 매장이 없던 시절 배달이 오는 걸 보고 여기도 조합원이 있을 것 같아서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밀양의 조합원들과 6년 정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매장도 유치 하게 됐죠. 그런 와중에 저는 조금 더 로컬에 가까운 활동을 하고 싶은 갈증이 계속 남았어요.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뭔가 소소한 것들을 해 보고 싶었어요. 지역에서 쓰레기 없이 즐겁게 살 수 있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거쳐 가치쓰제이까지 만들게 되셨군요가치쓰제이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가치쓰제이는 6명의 조합원이 모여 협동조합이라는 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희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파는 거고, 다른 하나는 휴게 음식점 즉, 카페 운영이 있고, 나머지 환경교육이 있어요. 저희는 물품 안에도 철학을 담고 왜 이 물품을 사야 하는지 사람들이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그 지점을 건드리려고 해요. 그리고 음식은 생활과 밀접해 있으니 조금 더 편안하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건강한 먹거리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하죠. 밀양은 지역이 작다 보니까 우리쌀, 우리밀로 만들어진 먹거리를 찾기 어렵고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거의 없거든요. 이 소비를 통해서 농부가 농사를 짓는 힘을 얻기도 하고, 미래 식량의 자급률도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해봅니다. 



지난 7월 8일에는 첫 번째 ,랑마켓이라는 장터도 이 공간에서 열렸죠.

단순하지만 사람들이 쓰레기 없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 있었어요.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마켓을 열어서 이곳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게 일상 속에 문화로 스며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막연하게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최근 소통협력센터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것들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해 내면서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막상 열어보니 어떠셨나요참여하신 분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첫 장터이다 보니 걱정 반 기대 반 하면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처음이고 계절 특성상 먹거리를 많이 준비하지는 못해서 아쉬움도 있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 하다’는 옛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다음번에는 인력의 배치나 시간의 배분 같은 것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면 먹거리가 풍성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주변에서 참여하신 분들도 만족스러워하셨고, 방문해 주신 주민들께서도 밀양에 이런 게 없었는데 너무 재미있다는 의견들을 주셨어요. 

이 안에서 우리가 즐겁고 재미난 것들을 만들어 내고 상상하다 보면 웃음소리가 퍼져나가듯이 언젠가는 밀양 안팎의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서 지나가다 들러볼 수도 있고 조금씩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를 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밀양에서 환경 활동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밀양에 와서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서울에서는 만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대도시 어떤 지역 한 귀퉁이에 살 때는 내가 다 찾아다녀야 했거든요. 서울 반대편 한 시간 거리에 지하철을 타고 가서는 겨우겨우 만나도 일회성에 그치고 일대 다일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그 사람과 내가 어떤 연결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는 좀 어렵잖아요. 반면, 밀양에서는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요. 어떤 사람이 정말 궁금하면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일대일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나 나와 만나는 접점이 어딘가에는 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나 혼자 끙끙 싸매고 있을 때는 몰랐던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하고 어떤 문제 해결의 방식이 떠오를 수도 있어요. 

또 의외로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분 중에서도 생태 환경이든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찾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마켓이 중요해요. 저희 안에서 가치쓰제이가 아무리 큰소리를 내고 계속 이렇게 활동한다고 해도 우리 안에 닫혀 있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관계는 한계가 있거든요. 정말로 의지가 있어서 용기를 내어 저 문을 열고 와선 나 이런 거 하고 싶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근데 이제 마켓을 열면 관심 있던 분들이 쉽게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죠.      


앞으로 밀양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시도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가치쓰제이라는 게 어떤 절대적인 핵심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점(node)라고 봐요. 주변에 시립 도서관과 여성회관, 청소년 수련관, 종합사회복지관 등 지역 기관들이 많이 있는데 그 공간을 활용해서 장터를 좀 더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밀양에서 환경 실천과 환경교육에 대해 필요하거나 궁금한 상황이 생겼을 때 가치쓰제이를 떠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는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고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실천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고 거기에 조금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최근 밀양시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서 다양한 봉사단체와 개인 봉사자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거든요. 이번 교육을 통해서 이후에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활동을 기획할 때 쓰레기를 줄이거나 활동 자체가 자원 재활용 또는 지역의 환경 활동과 연결될 수 있도록 제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활동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가슴에 묻어둔 단어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등대’에요. 아주 밝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어둠이 깊을수록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등대가 될 수 있기를 저 스스로에게 되새겨봅니다.      


*해당 인터뷰는 2023.8.31에 발행된 뉴스레터 <먼슬리밀양>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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